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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20. 2019

맹자에 트집 잡고 정치인에게 잔소리하다

선농인문학서당 '솔연눈'의 글쓰기

틈틈이 인터넷 기사를 읽고 댓글로 여러 사람의 생각을 접하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나 아리송한 것, 이것이 정치이다. 자국민은 물론, 자국을 넘어 타국과 타국민까지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그만큼 정치에 영향을 받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정치의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에, 정치인의 어깨는 무겁다. 그렇다면 이처럼 무거운 책임을 진 정치인의 자질은 무엇인가?


맹자는 이익이 아니라 인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이익을 배척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나의 생각은 맹자와 크게 다르다. 그래서 지금부터 맹자에게 한판 대결을 신청하려 한다.


물론 인의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익이다. 맹자가 주장한 ‘항산’도 따지고 보면 이익이다. ‘항산’이 보장되어야 ‘항심’이 생긴다고 해놓고 이익을 배척하라는 것은 모순적이다. 게다가 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이 국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 위해 양국이 협정 내용을 조정하고 있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국민의 허리가 휜다. 외교에서 서로 상황을 고려하고 타협해야 하지만, 국익 또한 저버릴 수 없다. 자국민 중심주의로 빠지자는 말이 아니다. 인의만을 따를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익을 추구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강내유’, 이것이 정치인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그런데 잠깐. 맹자는 작은 나라의 차기 지도자인 ‘등문공’에게 현실이 아닌 이상을 보여줬다. 정치는 실전인데 그 실전에 참여해야 하는 정치인에게 이상만 보여 주는 것이 과연 인의일까? 맹자의 조언을 들은 등문공이 좋은 나라를 만들었든, 아니면 힘든 나라를 만들었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이상만 심어주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뜻이다.


정치인에게는 역지사지의 자질도 필요하다. 맹자는 지도자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업을 주장했다. 이 점은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지도자 또한 농민 또는 타 직업 종사자의 노고를 이해할 줄 아는 역지사지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지도자는 다른 직업의 종사자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것을 현대 사회로 가져와 생각해보자. <맹자>의 지도자는 현대 사회의 정치인과 같고 농민은 국민과 같다. 따라서 정치인은 국민의 노고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 종종 뉴스에서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는 암울한 소식을 접하곤 한다. ‘민본주의’의 주인공은 국민이다. 그런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이 국민을 무시한다면 그 자질을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다. 뉴스에서 만나는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꼴 보기 싫지 않은가? 사익을 위해 싸우는 것이 꼴 보기 싫은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인끼리의 의견 차이와 논쟁은 오히려 아주 건강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논쟁이란 어느 한쪽으로 권력이 기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 분립은 공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 형태와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 시대에는 ‘삼사’가 있었다. 이처럼 '정치인의 논쟁'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중요한 일이다. 정치인은 권력 분립을 위해,  공정한 사회를 위해 망설임 없이 논쟁해야 한다.


어떤가? 정치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은가? 어쩔 수 없다.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마냥 쉽기만 할까. 이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다. 


정치인에게 잔소리를 시작한 김에 쓴소리 좀 더 하려고 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몇몇 국민이 원망스러운가? 그렇다면 변화해라. 정치권에는 온갖 정치 용어가 난무한다. 물론 국민이 관심을 갖고 그 용어를 공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 노인까지 그것을 모두 공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치는 모두가 잘 사는 방법을 궁리하는 일인 만큼 더 많은 사람이 정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이 좀 더 소수자에게 눈높이를 맞춘 정치도 필요하다. 


선농인문학서당 '솔연눈'의 글쓰기




* 서울사대부고 선농인문학당에서 쓴 글입니다.

* <오늘을 읽는 맹자>를 읽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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