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옹앙대영과 인기지리무순
애태타라는 아주 못생긴 사람을 만났어.
만나보니 과연 세상을 깜짝 놀래킬 정도더군.
그러나 좀 마음이 끌리는 것이 좀 지켜보자 싶더라고,
일 년이 채 못되어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나라를 넘겨주고 싶더라니까.
나라를 넘겨주겠다 했는데도
영 반가운 기색이 없더니
어느 날 훌쩍 떠나버렸지.
… 그런 말을 하지 말지 말아야 했는데.
그를 잃고 세상을 잃은 것 같더라니까.
애태타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꽤 기이한 인물인데, 첫째 못생겼기 때문이다. 세상을 깜짝 놀래킬 정도라 하니 맘껏 상상해보자. 애태타는 아주 못생겼는데, 아주 인기가 많았단다. 어느 정도였냐면 남자와 여자를 모두 사로잡을 정도였단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푹 빠져 사랑하는 대상. 인기 만점의 추남.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존재다.
어쨌든 장자의 말을 따라 열심히 상상해보자. 상상할 수 없이 못생긴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이 커다란 인기를 얻는 모습을. 대관절 무엇이 그렇게 사람들을 붙잡아 끌었던 것일까. 노애공은 호기심 넘치는 인물이었다. 이 소문의 주인공 애태타를 만나보고자 했다. 어찌저찌하여 그를 만났는데, 첫인상에 화들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곁에 두기로 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조금씩 마음이 끌리기 시작하더니,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정겨운 사이가 되었다. 몇 달이 지나자 모든 것을 내어주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애공은 나라의 재상이 되어달라 부탁했다. 나라의 재상 자리도 애태타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좀 꺼려하는 눈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훌쩍 떠나버렸다. 사라진 그를 두고 노애공이 두고두고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
대관절 애태타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자는 그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며,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비록 보잘것없는 외모를 가졌더라도 돈이나 권력 혹은 재능이나 지식을 가지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태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끌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을까.
비슷한 이야기를 보자. 이번에는 옹앙대영甕㼜大癭이다. 옹앙대영이라는 기이한 이름은 그의 신체를 묘사하는 표현에서 나왔다. 옹앙이란 독이나 항아리를 가리키는 말이며, 대영이란 커다란 혹을 말한다. 커다란 혹이 달려 항아리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누자 제환공은 그만 홀딱 그에게 빠져버렸다. 그러고 딴 사람들을 보았더니 사람이 영 다르게 보이더라나. 사람이 왜 이렇게 호리호리하고 연약해 보이는지.
이번에는 인기 지리 무순闉跂支離無脤이라는 인물이다. 장황한 그의 이름은 그가 가진 복합적인 장애를 말한다. 우선 무순이란 입술이 없다는 뜻으로 아마도 언청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지리라는 표현은 앞 <인간세>에서 만난 지리소를 떠올리게 한다. 곱사등이였던 모양. 여기에 인기, 즉 절름발이라는 뜻이다. 언청이에 곱사등이 그리고 절름발이. 그러나 위령공도 그를 만나 그에게 홀딱 빠지고 말았다.
여기서 장자는 매우 중요한 말을 남긴다. 人不忘其所忘 而忘其所不忘 此謂誠忘, 사람들이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이를 성망誠忘, 참으로 잊어버림이라 한다. 여기서 ‘망忘’이란 기억과 반대되는 망각을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있다.
<장자>의 개념을 빌리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은 ‘형形’이며 보아야 할 것은 ‘덕德’이다. ‘형’은 일차적으로는 형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말한다. 장자가 여러 신체 불구자들을 등장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좀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못난 점에 주목하지 말라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누군가 단박에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겉모습이 중요한가 속마음이 중요하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장자가 말한 ‘덕’은 속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형’이란 겉모습뿐만 아니라 한 국가나 사회가 가치화할 수 있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이다. 애태타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수려한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지식, 권력, 화폐! 오늘날 여기에 다른 것을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팔로워 수, 구독자 수, 인기, 명성 등등.
따라서 장자가 말한 ‘덕’이란 내면의 마음 씀씀이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는 현재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것, 주목하지 않고 있는 무엇을 가리킨다고 해야 한다. 우리가 꺼려하는 것들, 업신여기는 것들,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국가나 사회가 전혀 헤아리지 않는 예외적인 것들.
<덕충부>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비슷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 왕태와 신도가, 숙산무지는 모두 다리가 잘린 이들이다. 인기지리무순도 절름발이였다. 어째서 <장자>에는 이토록 절름발이, 외발이들이 많은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춘추전국시대의 형별을 이해해야 한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육형肉刑이라 하여 신체에 형벌을 받았다. 묵형은 죄형을 얼굴 등에 새기는 형벌이었고, 의형은 코를 베어버리는 형벌이었다. 이런 건 작은 형벌이었고 큰 죄는 더 큰 형벌을 받았다. 궁형은 생식기를 잘랐다. 죄가 크면 목이나 허리를 베어 버리기도 했다. 게 중에는 발을 베는 월형도 있었다. <장자>의 절름발이는 모두 형벌로 다리가 잘린 이들이다.
이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형벌을 받은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체에 아로새겨진 죄의 흔적이 평생토록 이들을 뒤따라 다녔다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딜 가나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았겠지. <장자>에서 이토록 빈번히 절름발이가 등장하는 것은 당시에 형벌이 빈번하게 자행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엄혹한 시대에는 평범한 삶도 죄인으로 낙인찍히곤 하는 법. 멀리 갈 것도 없이 70-80년대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자. 어쩌다 보니 빨간 줄을 긋게 된 이들.
형벌을 뜻하는 글자 형刑과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 형形의 한자가 유사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실제로 어떤 학자는 이 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형벌(刑)이란 칼(刀), 그러니까 국가의 통치 수단으로 개개인의 형태(形)를 다듬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국가는 형별을 통해 개개인의 삶을 구체적인 형태로 규범 속에 가두어 놓는다. 어쩌면 중고등학교 시절 머리를 빡빡 밀어야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 아닐까. 깎아 놓아야 하나하나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까닭에.
따라서 우리가 잊어야 할 것은, 주목해보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게 깎여진 모습이다. 그 모습이 드러내는 규범적인 삶, 틀, 형식, 법칙, 제도 등등. 이런 것들을 죄다 잊어버리고(忘) 다른 것을 보자. 그러나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쩌면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은 형벌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이미 잘려 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잘린 발은 무슨 모습이었을까. 국가의 칼날, 형벌을 받아 제거된 덕목이나 능력은 무엇이었을까. 거기에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한다. 국가가 보이지 않게 가려버린 것이 무엇인지.
장자는 도道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에게는 이치나 법칙이 먼저 있지 않다. 그런 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드는 것이다. ‘도’라는 이상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상도 사람들이 추구하며 차후에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그 길은 곧고 평탄하지 못하다. 이는 장자가 가진 독특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길을 걷는 존재에 아로새겨진 형벌의 상처 때문이기도 하다. 외발이가 걷는 길이 어찌 곧고 바른 길일 수 있을까. 구불구불 휘청휘청. 그래도 그렇게 가는 길에 주목해야 한다. 정말로 허깨비에 주목하지 않으려면, 성망誠忘 정말로 깜깜이가 되지 않으려면.
애태타, 이 판타지 스타는 그런 계기를 열어주는 기묘한 존재이다. 우리가 주목하여 보던 것이 영 쓸모없다는 사실을 발견케 하는 존재. 거꾸로 생각지 못한 기묘한 감각을 전달해주기도 하는 계기. 그러니 깜짝 놀라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어딘가 푹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도. 그렇게 새로운 걸 보게 되겠지. 추악하고 험악한 것이라 손가락질받던 것이 가진 그 무엇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