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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무엇으로 먹고사는가, 아니 쓰는가

by 기픈옹달
그러니까 수입이 없으신 거죠?

아침에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긴급재난지원금 심사 때문이란다. 수입이 파악이 안 되어서 그렇다나. 출판이나 강의로 부정기적인 수입이 있다. 올해 와서는 별로 수입이 없다. 아, 그래도 얼마는 있을 텐데요. 혹시 증빙 서류가 필요한가요? 아니, 그 정도면 자격이 충분하니 증빙서류는 따로 필요하지 않단다. 소득분위표에서 어디쯤 있는지 계산할 필요도 없다는 모양.


새로 별명을 짓고 싶어서 골똘히 혼자 고민했다. 나름 권력 지향적이고 위엄 있는 걸 가져다 쓰면 좋겠는데 하면서 말이다. 누구는 총수니 공장장이니, 멘토니, 스승이니 하는 바람에 나도 허울 좋게 하나 직함을 만들어 쓰면 어떨까 싶었다. 사장은 너무 흔하니 버리고, 남산 자락에 사니 '남산의 부장'이라고 호칭을 쓸까 했는데, 코로나로 영화가 폭망 하는 바람에 그것도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


결국 생각한 직함은 '임금'. 임금賃金을 차곡차곡 받아보자는 생각에서 좋은 선택지라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글러버렸다. "저 임금이라 불러주세요" "이름 참 좋네 저임금이라니! ㅎ" "아, 고임금이어야 하는데 ㅠ" "그러니까 고씨가 좋다니까." 시작부터 위엄은 어디로 사라지고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는지...


해프닝은 그렇다 치고, 임금이라는 호칭이 힘을 잃은 데는 좀 다른 이유가 있다. 누군가 이름을 지으면 줄창 써야 한다던데, 임금이라는 이름을 쓰려해도 주머니에 들어온 돈이 없기 때문이다. 벌써 2020년이 거의 절반이 지났는데 거의 다달이 무임금이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3월 말 인세를 받았다. 25,080. 그러니까 2020년 태반은 무임금이고, 3월은 겨우 25,080 임금인 셈이다.


기왕 임금이라 했으니 매달 업데이트를 하면 좋겠는데 누계를 잡을 게 없으니 몇 달째 '이만오천팔십 임금'이다. 긴급재난 지원금을 받으면 이를 생활임금인 셈 치고 합계를 잡아도 되려나? 뭐, 내 마음이니 한번 생각해보자.


보통 작가는 인세를 받는다고 하는데, 인세로 밥벌이 하기는 참 힘들다. 나 같은 경우는 2020년 인세로 들어온 것이 25,080원, 이를 다음 인세는 6월 말에 받을 예정이니 6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4천원 꼴이다. 햄버거 하나도 사 먹기 버거운 수준이다. 정말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


사실 그 출판사의 책만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내놓은 다른 책도 있는데 헤아려보니 인세를 받은 것이 까마득히 옛날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판매 상황에 따라 일정 기간마다 인세를 계산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인쇄한 책을 모두 판매한 뒤에 정산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2쇄를 1,000부 찍었다면 1,000부를 다 판매하고 3쇄를 찍으면서 2쇄 분의 인세를 받는 식이다.


보통 계약금을 선인세로 받는 경우도 있다. 차후 받을 인세를 계약금 명목으로 미리 받는 식이다. 내 경우 어떤 책은 100만원을 받았는데, 그러면 초판본이 다 판매되고 나서 인세를 정산할 때 100만원을 제한다. 그런데 책 값이 그리 비싼 게 아니라 10,000원짜리 책을 1000부 찍으면 딱 선인세로 받은 계약금이 된다. 요즘은 출판 시장이 불황이라 1,000부가 아니라 500부를 찍기도 하니, 그러면 20,000원짜리 책을 500부를 찍어야 선인세로 받은 금액과 맞먹는다.


참, 이런 계산은 전부 인세를 10%으로 계산한 건데, 이보다 적은 경우도 있으니 그러면 몇 천 부 이상 팔린 뒤에야 계약금을 제한 첫 인세를 받는 일도 있다. 여기에 저자 증정본, 홍보용 도서 등등은 제하니 실상 인세로 받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출판도 시장이라 이른바 출판 이후 3개월 안에 쇼부를 보아야 한다나? 신간도서로 세상에 얼굴을 들이밀고도 별로 팔리지 않으면 악성 재고로 남을 뿐이다. 인세 지급은 끊임없이 미뤄질 뿐이고.


결론은 작가 입네 하면서도 인세로 먹고살기는 힘들다는 말씀. 인터넷을 보면 인세로 매달 억 이상을 벌어들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매우 소수의 일이고 그중 태반은 장르 소설 작가의 일이다. 인문출판 시장에서 일반 직장인 월급 정도 수준으로 인세를 받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도 "일억 삼천 임금입니다"라는 식으로 통장 내역을 까보이며 인증해보고 싶지만, 그런 일은 가 없이 먼 일이다.


그래도 책 써놓은 것이 영 쓸모없는 건 아닌 것이 책을 매개로 종종 강의가 들어오곤 한다는 점이다. 청소년 대상으로 책을 내놓을 터라 이곳저곳 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니 강사료 수입을 좀 얻을 수 있으니 다행이기는 하다. 올해도 일찌감치 경남 양산에 모 고등학교에 강의가 잡혔는데, 4월이 5월로 미뤄지더니 결국 5월 중순에서 5월 말로 또다시 미뤄졌다. 그나마 있던 강사료 수입도 코로나 사태로 씨가 마른 상황.


나야 강의로 벌어들이는 부대 수익이 있지만, 그건 운이 좋은 꼴이고 세상에 내놓아 빛도 보지 못하고 서점 서가 구석에, 태반은 창고에 머무는 책이 부지기수이다. 별로 좋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다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점에 깔리는 수많은 별 볼 일 없는 책을 보면 과연 팔리는 책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주변에 연예인 친구가 있다면 내 책을 며칠간이라도 몸에 붙이고 활동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기도 하다. 잘 보여야 잘 팔리는 책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인세는 한 없이 지연되고, 책 판매는 제자리걸음이니 글을 써서 책으로 엮는다는 것은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 일이다. 수익을 바라지 말고, 인세를 바라지 말고 그저 꾸준히 써내야 하는, 마치 수도자가 매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처럼. 그러다 잭팟이 터지면 좋은 일이고, 아니면 물량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옥타비아 버틀러는 영감을 믿지 말고 습관을 믿으라 말했다. 실제로 좋은 글은 영감에서 나오지 않고 습관에서 나온다 믿는다. 물론 이른바 신내림 받은 식의 영감을 가진 작가님들은 이야기에서 제외하도록 하자. 그럭저럭 책을 써내는, 가슴팍에 작가라는 명찰을 달랑달랑 겨우 차고 있는 사람에게는 글을 쓰고 책을 엮는데 습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문제는 습관이 결실을 맺는데 한참이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 아무리 습관이 들어도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도 부지기수라는 점. 그보다 그전에 습관이 되기도 전에 먹고사니즘에 치여 작가가 되지도 못하는 일도 많지. 하여 수행이라는 말도 좀 한가한 소리이기는 하다. 수행에 매진하는 사제들은 먹고사는 걱정이라도 없지.


그래서 가끔은 쓰는 만큼 먹고사는 게 아니라 먹고사는 만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작가의 먹고사니즘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는 퇴행을 낳곤 한다. 작가로 먹고살려면, 적당히 다른 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러면 작가로 먹고사는 일은 가 없이 멀어지고... 나아가 적당히 먹고사는 시간을 쪼개 쓰기에 매진한다 한들 쓰기가 먹고사니즘과 연결되는 일은 언제 오는가 하는 질문이 들러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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