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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얼마나...

by 기픈옹달

겨우 한 주 얼굴을 보지 않았을 뿐인데, 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듯하다. 매주 사건이 툭툭 터지는 바람에 그 짧은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자, 인사하고 다음 주에 봅시다. 여느 때 같으면 다들 인사를 하고 하나둘 자리를 떠날 텐데, 모두 멀뚱이며 스크린에 얼굴을 보이고 있다. 아쉬움 때문에 다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별의 상실을 느끼기는 싫다. 결국은 인사하고 끝내자는 말을 세 번이나 한 뒤에야 하나 둘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그것도 하나 둘 셋을 세고 함께 나가자고 다짐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10년 넘게 거의 매주 청소년들을 만났다. 서당이라는 이름으로 옛 글을 읽기도 하고, 고전을 공부하기도 하고, 영화나 시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코로나에는 장사가 없는 법. 2월 이후 영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득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온라인에서 만나기로 했다. 혼자 유튜브로 떠드는 것이 질려갈 때쯤이었다. 화상으로 만나니 그것대로 반갑고 소중하더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열었다. 매주 다른 책을 읽으며 진행하다 지난주에 한 주를 쉬었다.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모임을 끌고 나가야 할지가 막막한 게 문제였다. 다른 일로 시달린 바람에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금요일 저녁 뒤풀이 자리가 종종 있는데, 마음 놓고 참여하고 싶어서기도 했다.


A는 카톡으로 언제 모이느냐 거듭 물었다. '그럼 수업은 언제 다시 시작해요?' 그는 '수업'이라는데 사실 내 입장에서는 수업인지, 아니면 그냥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지 좀 모호하긴 하다. 뭘 가르치려니 방식이 여전히 낯설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수업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성인을 대상으로 세미나건 강의건 하는 건 그래도 좀 낫다. 그냥 내가 정리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청소년들과 하는 건 좀 다르다. 나쁜 버릇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 달, 12주 수업이라고 치면, 한 주 첫 시간을 통째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수업을 하면 30분 이상을 어떻게 지냈는지 일상을 공유하고 나누는 시간으로 쓴다.


무얼 배우는 것보다, 어떻게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관계를 쌓고 지식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능하면 일방적이지 않고 싶어서다. 헌데 온라인은 그게 힘들다. 아직 우리는 온라인으로 서로를 만나고 이야기하는데 서투르다.


A는 코로나 이후로 늘 집에 있는단다. 따지고 보면 가족 이외에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셈이다. B는 학교만 다니고 있단다. 학원도 다 안 가고 학교와 집을 오간다. 나름 우리가 함께 온라인에서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시간이 또 다른 소통의 창구가 되는 셈이다.


코로나는 강제적으로 많은 사회적 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게 중에는 단절이 반가운 관계도 있다. 잔소리를 덜 들어도 되고, 지겨운 회식자리를 불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 따분하고 지루한 회의 시간도 많이 사라졌다. 학생들에게는? 선생에게 꾸중받는 일도 없을 테고, 혹시라도 모르는 왕따 문제도 없을 테다. 사소한 친구들 간의 다툼도 없겠지.


그러나 우리가 관계를 통해 힘을 얻고 사람들을 통해 기운을 얻는다는 사실을 쉽게 까먹는다. 관계의 상실은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외로움을 남기곤 한다. 은근한 외로움.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상실과 단절은 그렇게 쓸쓸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우리는 얼마나 외로운 걸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계를 필요로 하는 걸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화를 원하는 걸까.


계속 금요일 저녁마다 책을 읽고 모이기로 했다. 그냥 붙여본 이름은 '방9(pm)석 북금북금' 금요일 9시마다 모이기로 해서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혼자 있는 시간이 늘 좋다. 더 혼자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홀로 식당을 찾아 혼밥을 즐겨도 좋고, 그냥 혼자 노래나 들으며 빈둥거려도 좋다. 혼자서 영화를 봐도 좋고, 쓸데없이 거리를 걸어도 좋다.


그러나 혼자라고 누구나 다 좋은 건 아닐 거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더더욱. 그러니 더 힘내어 모여보아야지. 가까이서 얼굴을 맞대고 모일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단말기 앞에서라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만나야지. 쓸데없는 잡담이라도 나누고, 흰소리라도 늘어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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