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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구를 가다

by 기픈옹달
옹달은 언제 또 중국에 가요?

올 추석에 가보려구요.

(달력 검색...)
올 추석이 10월 1일인데...

네?!!!!


방금 전에 있었던 대화이다. 2020년을 맞으며 나에게는 큰 계획이 있었다. 올해에는 란저우를 가야지. 그리고 황허석림도 보고, 막고굴과 가욕관을 가보고 와야지. 만약 생각대로 진행되었다면 지금 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있으리라. 그러나 '코로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언제 다시 중국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래도 추석 때에는 중국에 가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추석 즈음이면 코로나가 좀 나아지리라는 기대에. 더불어 추석 연휴에 중국 여행하기가 좋으니까.


그러나 아뿔싸. 날짜를 제대로 계산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이 추석이라니.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중국에 가기는 글렀다. 국경절은 춘절春节과 더불어 중국의 가장 큰 연휴 기간이니 말이다. 젠장. 내년 겨울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문득 약 20년 전, 국경절 연휴에 중국 대륙을 가로질렀던 여행이 기억났다. 당시 나는 란저우兰州에 있었는데, 국경절 연휴를 맞아 어디든 긴 여행을 하고 싶었다. 병마용으로 유명한 시안이 하나의 후보였고, 또 하나는 둔황석굴이 후보였다. 어디로 갈까 하다 구채구九寨沟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야 좀 유명하기는 한데, 그때만 하더라도 그리 유명하지 못했다. 영화 <영웅>의 촬영지로 그나마 좀 알려졌다고 할까?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곳이니 한번 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잘 아는 곳이 아니라 좀 다른 곳을 가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다.


20여 년이 지나, 지금 돌아보면 한 토족土族 친구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소수민족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게 중에는 토족 친구도 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토족은 옛 선비족의 후예라 한다. 그는 꽤 호탕한 성격이었는데, 멋진 노랫가락을 뽑아내기도 했다. 그가 불렀던 노래 가운데 '神奇的九寨', "신기한 구채구"라는 제목의 노래도 있었다.


https://youtu.be/LjYISbnFIKE


엄밀하게 말하면 이 노래는 장족藏族, 그러니까 티벳의 노래이다. 그러나 여러 소수 민족이 뒤섞여 사는 란저우에서는 이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 노랫가락을 멋들어지게 뽑아내곤 했다. 국경절 여행으로 구채구를 선택한 것은 이 노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6명이 함께 떠났다. 란저우에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저 멀리 션양沈阳에서 공부하는 친구도 하나 합류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무리이기도 하다. 션양에서 란저우까지 오다니... 여튼. 6명은 란저우에서 구채구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구채구를 가는 일반적인 방법은 란저우兰州에서 시안西安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시안西安에서 청두成都에서 다시 구채구九寨沟로 올라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호기에서인지 그 길 대신 란저우에서 구채구까지 가는 길을 따로 찾았다. 우선은 기차 값이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르긴 해도 꽤 많은 돈을 들여야 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험한 길을 선택했다. 침대 버스를 타고 20시가 넘게 달려 어느 소도시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사실 20여 년이 지나 정확한 경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끝없이 이어진 낯선 풍경들이 파편처럼 기억날 뿐이다. 란저우에서 구채구까지 가는 길은 꽤 험했는데, 침대 버스를 타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꽤 낯설었다. 험준한 계곡이며, 중간중간 보이는 군부대까지. 어느 작은 마을에 멈춰 버스 기사가 내려 자리를 바꾸었던 것도 기억나기도 한다.


사실 이렇게 몇 자 적는 것도 옛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버스를 몇 시간 탔고 다시 또 몇 시간을 택시를 타고 들어갔으며 하는 식으로 기억을 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20여 년 전이니 좀 잊는 것도 사리에 어긋나는 게 아니기는 하다. 또. 누구도 그 험한 길을 가지 않을 테니 어떻게 고증할 길도 별로 없겠지.


다행히 옛 사진이 남아 있어 날짜를 알려준다. 2002년 9월 30일 어느 작은 고을을 지나 10월 1일에 구채구 근처에 닿았다. 10월 2일 구채구를 돌아본 사진이 남아 있다. 10월 1일 국경절로 붐비는 그 작은 고을에서 맛나게 훠거를 먹었던 게 기억난다.


9(74).jpgfilename=9(74).jpeg
정말 하늘이 파랗다.jpeg


찾아보면 있겠지만, 구채구 사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보다 구채구는 더 아름다웠다. 맑은 물과, 푸른 하늘, 높은 원시림과 끝없이 이어진 숲까지. 단언할 수 있는 건, 사진보다 영상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돌아왔을까.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티엔쉐이天水를 거쳐 돌아왔다는 거다. 거기도 볼 게 많다는데, 피곤한 우리는 그냥 돌아오기 바빴다. 지금이라면 좀 시간을 내어서라도 다른 데를 보고 싶었을 텐데, 그때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언제 다시 구채구를 갈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건 단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더 보고 싶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시간이 나면 란저우를 다시 가야지. 황하석림도 보고, 시아허의 라블랑스도 가야지. 시간이 되면 허쩌우의 황하 계곡도 다시 둘러보아야지. 막고굴과 둔황석굴, 가욕관도....


무엇도 모르는 시절, 중국의 한 복판에서 나름 대륙을 가로지른 경험이 아쉬워 몇 자 적었다. 더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잊혀질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생각하면 개인의 기억을 보존해 두는 것이겠지만, 좀 더 크게 보면 내가 중국을 다르게 보는 입구를 하나씩 정리해 두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중국은 늘 복수(!)이다. 이는 란저우라는 소도시(!!)의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여러 소수 민족과 어울려 지냈던 그 시간. 중국의 하나의 얼굴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시간이 적잖이 소중하기 때문이라 하겠다.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겠다는 아쉬움을 좀 덜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 시절 뭣도 모르고 무작정 뛰어든 그 용맹함과 무대뽀 정신이 그리워지는 것인지도....


https://youtu.be/H2mvc0miJ-w

* 당시 즐겨 들었던 노래 가운데 하나를 이렇게 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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