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기사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기술철학자 육휘에 따르면, 처음부터 자본주의는 인간과 기계 사이 사회심리적 관계를 무시한 채로 기계장치들을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고 이익을 증대하려는 흡혈 수단으로 기능을 축소했다고 평가한다." 내용은 차치하고 대체 육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구글은 "이것을 찾으셨나요? '육회'"를 던져주는데... 다행히 저자로 쓴 책이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중국학자란다. 항저우에서도 활동하고 있다니 '육손陸遜'의 먼 후예쯤 되는가 생각했다.
뭔 책을 썼나 찾아보다 다음과 같은 책을 찾았다. <중국에서의 기술에 관한 물음> 제목이 좋다. 헌데 표지에는 이름이 '허욱許煜'이란다. 이제 좀 알 것 같다. 중국어 발음 표기를 그냥 가져다 쓴 것이겠지.
그러나 한걸음 더 들어가니 복잡하다. 병음을 찾아보니 xŭyù 우리말로 옮기면 '쉬위'정도로 표기할 수 있으려나. 성과 이름을 거꾸로 쓰는 서양 전통을 따른다 해도. '위쉬'로 표기되어야 할 테다. 대관절 '허욱許煜'이 '육휘'가 되는 마법은 어디에 있는 걸까?
슬쩍 책 내용을 보니 허욱이라는 이름 옆에 'Yuk hui'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 아래 홍콩 출신이란다. 이제 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의 이름을 광둥어 병음으로 찾아보니 "heuiyuk"으로 표기한다. 휘육에 가까운 발음이니, 성과 이름을 바꿔 육휘가 되었겠지.
자, 이것이 허욱이 육휘가 되기까지의 마법이다. 누구는 이게 뭔 문제인가 하겠지만, 누군가의 이름을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이 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쉬이 지나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바그너와 와그너는 어떤가? 월터 벤자민과 발터 벤야민은?
https://www.amazon.com/Yuk-Hui/e/B019UFUCGW%3Fref=dbs_a_mng_rwt_scns_share
어찌보면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허욱이 되기도 하고, 쉬위가 되기도 하고, 휘육 혹은 육휘가 되기도 할 테다. 문제는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에 대해 한번쯤이라도 성찰이 있었는가 하는 점일 테다. 성찰이 없이 건너뛰면 이런 괴이한 일도 벌어지곤 한다. <진영첩의 주자강의>(윙칫찬, 표정훈 역) 아마 비슷한 제목을 또 지을 수도 있을 테다. <허욱의 기술철학>(육휘, 옹달 옮김)
이런 고급 뻘 소리도 가능하다. "저우수런이 지었다는 <노신의 야초>를 읽어보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