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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ug 01. 2020

자술 혹은 혼잣말


량치차오는 삼십자술三十自述이라는 글을 썼고 후스는 사십자술四十自述이라는 글을 썼다. 뭣도 모르고 옛사람을 선망하던 시절에는 나도 언젠가 저런 글을 쓰겠다 싶었다. 그러나 점점 그런 삶과는 동떨어져 버리는 것 같다. 뭔가 매듭짓고 기념할 만큼 삶이 여무는 게 아니라, 늘 흐물흐물 그작그작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이가 툭툭 목에 걸리곤 한다. 


며칠 전 한 친구를 만났다. 해마다 여름이면 냉면 한 그릇을 나누어 먹고 안부를 묻고는 한다. 올해는 좀 늦었다. 이제 이십 대 후반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나이가 많다고 투덜거린다. 네 나이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여전히 십 대 후반을 기억하며 놀라워하고 있다. 쌤은요? 하긴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다.


장르 소설을 쓰는 그는 이런저런 문학상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을 보면 자꾸 눈이 간단다. 한때 함께 공부하던 이들, 누구는 어깨너머로 얼굴이 익고 누구는 술잔을 나눈 친구이기도 하고. 그런 친구들이 등단하는 걸 보면 마음이 복잡하다. 이게 문학이다라며 떠드는 이들이 고깝기도 하지만, 문학이라는데 계속 마음이 쓰이는 까닭이다. 언제쯤 홀가분할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걸. 선망하던 세계에 내가 속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으니. 생각해보니 그 친구 나이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학자가 되어보겠다고 나름 용기를 내어 보았다.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 논리는 대단히 단순했는데,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니 몇 년 해보고 다른 길을 찾아도 된다는 거였다.  


몇 년 간 학교를 다니고, 다른 사람처럼 논문을 썼다. 벌써 10년이 넘어 무슨 내용을 어떻게 논문으로 써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이후 내 논문을 한 번도 읽어본 일이 없기 때문일 테다. 다만 심사교수에게 작은 케익을 하나 건넨 것이 기억에 남는다. 교수에게 이른바 거마비라도 줘야 하나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냥 무시해도 되었겠지만 그렇게 당당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했다. 조금은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돈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났으니 좀 진지하게 사람 구실을 해야 할 판이었다.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었다. 온통 시간을 쏟아야 할 텐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대학원을 다니며 본 학자들의 삶이 별로 끌리지 않았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설사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딴다 해도 크게 얻는 것이 없어 보였다.


결국 그때그때 되는대로 돈벌이를 하고, 손에 닿는 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 체계도 없고 성과도 없다. 그 친구가 이야기했던, ‘자격지심’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열등감과 선망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유학 간 이의 행보, 함께 대학원에 들어갔던 이의 소문, 이른바 학계 끄트머리에서라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누구누구의 모습이 여러 감정을 낳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들어 좀 시큰둥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아, 그렇지만 그들의 글을 꼼꼼히 챙겨 읽지는 않는다.


한 10년쯤 지나면 좀 나을 거야. 그 친구에게 그렇게 말하진 못하고 언젠가는 좀 나아지겠다 말해주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일러주었다. 그렇게 시큰둥해지면, 좀 초탈한 마음이 들면, 선망이 줄어들면 노력 열정도 자연스레 줄어든다고. 그들의 삶이 그렇게까지 대단치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일까. 학문이니 학자니 하는 것이 그렇게 선망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노력과 열정으로 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냥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 수 있겠다. 술을 많이 먹고 몸이 무거워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몸과 마음이 낡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한때는 부러움과 더불어 나에 대한 의구심에 시달렸다. 학교에 남아 있지 못했던 것은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 아닐까? 내가 능력이 있었다면 교수가 잡았겠지. 아니면 장학금이라도 타던가. 아니, 어디서 작가로 이름을 떨치던가. 그러나 요즘 깨닫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내 실력을 가늠해볼 수 없다는 점이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알려주는 데가 없더라. 나를 평가해 줄만큼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고.


어쨌든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흔한 말처럼 자격지심도 희미해진다. 문제는 대신 얼마간의 무기력을 선물로 얻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일에 뭉툭해져 간다는 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현장을 자꾸 주저하게 된다. 정의니 연대니 심판이니 하는 것들도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는 박모가 어땠느냐 물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실망도 분노도 별로 없었다고. 다만 ‘죽음’이라는 것에만 관심이 가더라고. 박모, 조모, 이모 등등에게서 한 시대의 퇴장을 읽는 사람이 있다. 누구는 퇴물을 본다고 할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과하게 말하면 죽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하겠다. 누구는 죽었고, 누구는 죽음을 부정하고 있을 뿐. 다만 감당한 일이 너무 크고, 엮인 인연이 너무 많다.


말 빚을 갚아야지. 내가 쓴 글 제목이 이렇다. ‘50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 그 글 탓인지 요즘 점점 그 생각이다. 몇 년 해보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했던 시간이 점점 미뤄지곤 했다. 언제는 35이었고, 언제는 40이었다. 이제 또 시간이 흘러 50이 되어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안정적인 돈벌이도 글렀고, 좋은 책을 쓰기도 글렀다. 학문적 성취와는 더더욱 멀어졌다. 언제든 지금 하고 있는 삶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늘 흐지부지 어영부영 똑같은 삶을 붙잡고 있다. 그때가 되면 좀 달라질까?


일도 많이 만들지 말고 인연도 많이 만들지 말아야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감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기쁨이건 슬픔이건 감정을 남기지 않았으면. 어느 날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묘비명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것도 나쁘지 않다.


참, ‘50이 되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글은 졸저 <경치는 소리>에 실려 있다. 정가는 11,000원. 그러나 늘 그렇듯 채 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http://aladin.kr/p/22X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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