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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03. 2020

두 죽음 - 기억과 망각

1강 장자와 공자 #5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장자>에는 흥미롭게도 장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물론 이것은 장자 자신의 기록일 수 없고, 후대 사람들이 써넣은 것이다. 여기서 장자라는 인물이 추구했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장자가 바야흐로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이 후하게 장사지내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를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한쌍의 옥으로 알며, 볕을 구슬로 삼고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 장례식을 위한 도구는 갖추어지지 않은 게 없는데 무엇을 덧붙인단 말이냐?” 

제자가 “(아무렇게나 매장하면) 까마귀나 소리개가 선생님을 파먹을 일이 염려됩니다.”라고 하자 장자는 대답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되고 땅 밑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된다. 그것을 한 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에 주다니 어찌 편견이 아니겠느냐! 인지(人知)라는 불공평한 척도로 사물을 공평하게 하려는 이상 그 공평은 결코 참된 공평이 아니다. 자연스런 감응에 의하지 않고 인지의 마음으로 사물에 응하는 이상 그 감응은 참된 감응이 아니다. 명지(明知)를 지닌 사람은 외물에 사역되는 자에 지나지 않고 신지(神知)를 지닌 사람이야말로 사물에 감응할 수 있다. 대체 명지가 신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정해져 온 일인데도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견해를 믿고 인간사에 빠져 있다. 그 공적은 다만 외물에만 있(고 자기의 본성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

– 안동림 역, 현암사. 773쪽 <열어구>


장자는 삶 자체에 주목할 뿐 사후 세계를 생각하거나 고려하지 않았다. 그는 현세적인 삶 자체에 골몰했던 인물이다. 죽음이란 현세적인 삶의 끝이지만, 더 이상 삶이 아니므로 현세적 인간이 고민하거나 관여할 일이 아니다. 장자가 아내의 죽음에 장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죽음이란 현세적 삶이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자연스런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아쉬움도, 슬픔도 남을 이유가 없다.


현세적 삶에 주목했다는 점은 공자도 마찬가지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자로가 물었던 이 질문은 공자의 이런 입장을 잘 보여준다.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귀신은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사람도 섬길 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기랴?” 
“감히 여쭙건대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삶도 잘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랴?”

– 박성규 역, 소나무. 427쪽 <선진 12>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삶을 넘어선 질문에 대해서 공자는 대답을 피한다. 두 발을 딛고선 현세의 삶이 그의 관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현재에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던 인물이다. 과거에 대한 신뢰와 마찬가지로.


공자가 병이 나자, 자로가 문인을 가신으로 삼았다. 병이 좀 낫자, 공자가 말하였다. “오래구나! 자로의 거짓 꾸밈이. 가신이 없어야 하는데 가신을 두었으니! 내가 누구를 속이랴? 하늘을 속이랴? 또 내가 가신의 손에 죽을 바에야, 차라리 너희 손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또 내가 성대한 장례는 못할지언정, 길에서 죽기야 하겠느냐?

– 박성규 역, 소나무. 355쪽 <자한 12>


공자의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예기>에서 공자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죽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늘 현재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까닭이다. 과거 유가 사회에서는 지방의 향교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그는 죽었으나 하나의 상징으로, 성인의 표본으로 여전히 또 다른 지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공자는 죽음을 앞두고 작은 소망을 밝힌다. 바로 제자들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 실제로 공자의 제자들은 삼년상을 치렀다고 한다. 제자들에게는 스승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중요했다. 상례와 제례라는 의례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난다. 공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기억되고 있다. 성인 공자는 '만세사표萬世師表'가 되어 뭇사람들의 스승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장자가 선택한 길은 망각이었다. 봉분 따위를 만들지 말고 자신을 내버려두라는 말은 자신을 기억하고 추모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잊히는 길을 택했고, 실제로 그의 행적은 남지 않았다. 거꾸로 말하면 그는 자신의 삶이 기억되고 따라야 할 어떤 표본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공자가 <춘추>를 썼다고 전해진다.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썼기 때문에 난신적자가 두려워 떨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적 삶이 엄혹한 현실에 부정당하더라도 역사는 바르게 평가해주리라는 믿음이 그 속에 들어 있다. 이처럼 공자의 인간은 역사라는 이상 위에, 문명이라는 가치 위에,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 위에 있다. 공자의 이상은 이처럼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장자는 어떤 글을 썼다고 전해지지 않는다. <장자> 가운에 얼마나 많은 부분이 장자의 말일까. 그러아 이런 질문 자체가 장자에게는 별 의미 없는 물음에 불과하다. <장자>는 장자라는 역사적 인간의 입을 빌려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숱한 우화 가운데 장자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즉, 장자의 이야기조차도 하나의 우화일 수 있다.


우화라는 형식이 필요한 것은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혼란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방식을 부정해야 한다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알 수 있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면. 현실이란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의 한계를 일컫는 말이다.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말은 한계를 인식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장자는 늘 우리를 현실로, 현재적인 한계로 끌어내린다.  


그렇다고 그가 현재에 발 묶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커다란 앎, 대지大知의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학습學習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커다란 깨우침을 위해서는 과거의 지식을 파괴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떤 미래가 주어질 것인가? 접여의 말을 빌어 미래조차 기대할 것이 못된다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맞이해야 할 존재가 아닌가. 


道行之而成. 길은 다녀서 만들어진다는 말.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살아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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