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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09. 2020

전국戰國, 전란으로 물든 세상

2강 장자와 맹자 #1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일찍이 맹자는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말하였다. 치세治世, 평화기와 난세亂世, 혼란기가 번갈아 나타난다는 말이다. 공자는 주나라의 몰락을 보며 난세의 출현을 예감했고, 맹자는 난세의 중심에서 치세를 여는 길을 주장했다. 앞에서 보았듯 장자는 접여의 말을 빌려, '근면형언僅免刑焉' 겨우 형벌을 면할 뿐이라고 말했다. 천하무도天下無道, 어지러운 천하 속에 장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구분한다면 전국시대가 더 큰 혼란기였다. 전국戰國이라는 말처럼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기존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가치체계도 위기를 맞았다. 부국강병富国强兵이라는 목표, 약육강식弱肉强食이라는 현상이 자연스러운 시대의 모습이었다. 여러 소국들이 사라졌으며, 세력을 키운 나라들은 저마다 천하의 대권을 손에 넣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사마천은 장자가 양혜왕, 제선왕 시대를 살았다고 말한다. 양혜왕梁惠王은 BCE 370년에 왕위에 올라 BCE 335년에 세상을 떠났다. 제선왕齊宣王은 BCE 342년에 왕위에 올라 BCE 324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이를 참고하면 장자는 기원전 4세기경에 활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당시 가장 주목해볼만한 인물로 상앙(商鞅, BCE 395 ~ BCE 338)이 있다. 훗날 상군商君으로 불리는 그는 본래 위魏나라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출세를 위해 고향을 등지고 서쪽 진秦나라로 향한다. 진나라가 천하의 인재를 모은다는 소문을 들었던 까닭이다. 상앙은 진나라에서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였고, 훗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패업의 기틀을 닦는다. 


어째서 위나라는 이런 인재를 이웃나라에 빼앗기고 만 것일까? 사실 일찍이 위나라도 그를 등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군주였던 혜왕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출신도 변변치 않은데다 나이도 어렸기 때문이다. <사기>의 <상군열전>을 보면 당시 상황이 잘 기록되어 있다. 


상앙의 본래 이름은 공손앙으로 위나라의 재상 공숙좌의 가신家臣이었다. 공숙좌는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매우 아꼈다. 공숙좌가 병이 들자 혜왕이 문병을 왔다.


"그대의 병이 낫지 않으면 나랏일을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소?"

"신의 가신인 공손앙이 재주가 빼어나니, 그에게 나라를 맡기면 됩니다. 그를 들어 쓰셔야 하나, 혹여 그를 쓰지 않으시겠다면 그를 죽여 이웃나라로 넘어가지 않게 하여야합니다."


양혜왕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밖에 나와 탄식하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공숙좌의 병이 심하구나. 그런 햇병아리에게 나라를 맡기라니."


왕이 공손앙을 등용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공숙좌는 공손앙을 불러 서둘러 도망치라 일러준다. 등용하지 않으면 죽여서 후환을 없애라 이야기했다는 자신의 말을 전하면서. 병상에 누워 왕에게는 충언을, 가신에게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 공숙좌의 모습도 흥미롭지만 이에 답하는 공손앙의 말이 걸작이다.


"왕께서 그대의 말씀을 듣고도 저를 쓰지 않았는데, 또 어찌 그대의 말씀을 듣고 저를 죽이겠습니까."


공숙좌의 말대로 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손앙을 등용하지도, 그를 죽이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공숙좌의 전망은 틀리지 않았다. 진나라로 넘어간 공손앙은 재상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쳐들어 온다. 위나라에서 세운 공으로 상商 땅을 봉지로 받아 훗날 상앙商鞅이라 일컬어진다. 


위혜왕이 놓친 인물은 또 있다. 바로 손빈孫矉이다. 전쟁의 귀재, 손무孫武의 후손이었던 그 역시 병법에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 방연에게 모함을 받아 불구의 몸이 되어 버린다. '빈矉'이라는 이름은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는 불구가 된 몸을 이끌고 동쪽 제나라로 떠난다. 그 역시 제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에 쳐들어 온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위나라의 장군 방연을 죽여 통쾌한 복수를 이루면서 제나라에 큰 승리를 가져다준다. 이 내용은 <손자오기열전>에 실려 있다. 


서쪽 진나라의 상앙과 동쪽 제나라의 손빈. 위나라를 위태롭게 한 인물이 모두 위나라와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인재를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손실인지를. 이렇게 이웃나라에 공세를 받아 위나라는 수도를 옮겨야 했다. 본래 수도 안읍을 떠나 대량大梁으로 수도를 옮긴 까닭에 위魏는 양梁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맞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양혜왕이 바로 상앙과 손빈을 잃은 위혜왕이다. 따라서 양혜왕이라는 이름은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아 쇠락한 당시 현실을 반영한 이름이다. 


위혜왕, 즉 양혜왕은 인재를 등한시한 자신의 과오를 뒤늦게 깨닫고 말년에 여러 인물을 끌어모은다. 추연, 순우곤, 맹가 등이 양혜왕을 만났다. 이 가운데 맹가孟軻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맹자孟子이다. 하나 덧붙이면 양혜왕의 재상 가운데는 혜시라는 인물도 있었다. 바로 장자의 몇 안 되는 친구 가운데 하나였던 인물이다. 그러니까 양혜왕은 맹자와 장자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인물인 셈이다. 


<맹자>는 맹자와 양혜왕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내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주시겠지요?"

"어찌 왕께서는 꼭 그렇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만 있을 뿐입니다."


<맹자>는 단호한 호통에 이어 맹자의 일장 연설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뒤에 알아보고, 여기서는 <사기>에 기록된 부분을 잠깐 살펴보자. 양혜왕의 난감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다.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하자 혜왕은 예를 갖추고 예물을 마련하여 빼어난 인물을 불러 모았다. 추연, 순우곤, 맹가가 수도 대량에 이르렀다. 

양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못난 탓에, 세 번이나 전쟁에서 패하였습니다. 태자가 포로 잡혀갔고 상장군이 목숨을 잃어 나라가 텅 비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조상과 종묘사직에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누추한 이 나라의 조정에까지 이르셨으니, 이제 내 나라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시려나요?" 

맹자(맹자)가 말했다. "임금께서 이처럼 이익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군주가 이익을 바라면 그 아래의 대부도 이익을 바라고. 대부가 이익을 바라면 그 아래의 백성들도 이익을 바랍니다. 위아래가 이익을 두고 다투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군주가 되어 인의仁義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찌 이익을 바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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