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장자와 맹자 #2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불원천리不遠千里와 하필왈리何必曰利. 맹자를 펼치면 바로 나오는 유명한 표현이다. 양혜왕은 멀리서 온 유학자를 반기지만, 고집 센 이 유학자는 원칙만을 이야기한다. 오직 인의仁義! 그가 말하는 인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다만 이어지는 맹자의 일장연설을 통해 그가 진단한 당시 시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두고 다투기 때문에 천하가 어지럽게 되었다고 말한다.
왕은 백성의 것을 빼앗고, 아래 귀족과 백성들은 왕의 것을 빼앗으려 하니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맹자의 진단에 양혜왕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의 할아버지 위문후魏文侯는 본디, 진晉나라의 귀족 가운데 하나였다. 한씨韓氏, 조씨趙氏 가문과 함께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각기 나라를 세웠다. 반란으로 나라를 세운 셈. 맹자의 말을 빌리면 아래가 위를 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천하를 어지럽힌 장본인이 자신의 집안이라니, 양혜왕이 맹자의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하다.
반란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다면 어떤가. 어쨌든 현재 여러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천하의 제후 가운데 하나이니 깐깐한 맹자 선생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그냥 흘려듣도록 하자. 문제는 이웃나라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이다. 서쪽 진나라는 법가法家 상앙을 등용하여 나라를 개혁했고, 동쪽 제나라는 병법가兵法家 손빈의 전략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 서로가 다투는 이런 상황에서 맹자 선생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 것일까?
사마천은 <맹자순경열전>에서 맹자의 일대기를 아주 짧게 전하고 있다. 그 전문을 아래에 소개한다.
태사공(사마천)은 말한다. "<맹자>를 읽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내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주시겠지요?' 하는 구절에 이를 때마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이익 때문에 혼란하게 되었구나'하며 탄식하곤 하였다. 공자는 이익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는데, 이는 혼란을 근본적으로 막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하셨다. 천자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병폐가 어찌 이와 다르겠는가."
맹가孟軻는 추騶 사람이다. 그는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의 제자에게 배웠다. 학문이 무르익자 맹자는 제선왕을 섬기고자 했다. 그러나 제선왕이 자신의 주장을 실행하지 않으므로 양나라로 갔다. 양혜왕도 입으로는 환영하면서도 실제로 맹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맹자가 현실과 영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바람에 실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당시 진나라는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였고,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를 등용하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제나라는 위왕와 선왕 시기에 손빈과 전기 같은 사람을 등용하여 세력을 넓혔다. 제후들이 동쪽 제나라에 조공을 바치기까지 하였다. 바야흐로 천하는 합종연횡에 힘을 기울이고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정벌하여 땅을 넓히는 것을 좋다고 여는 시대였다.
이런데도 맹자는 요순시대, 하은주의 옛 임금들의 덕치를 주장하여 가는 곳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년에 맹자는 제자 만장의 무리와 <시경>과 <서경>을 정리하고,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맹자> 일곱 편을 썼다.
맹자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도 매우 간략하다. 본명은 맹가, 공자의 먼 제자 가운데 하나였으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왕들을 만났다. 그러나 하나같이 맹자의 주장을 반기지 않았는데, 그의 주장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맹자와 동시대 인물의 면모를 보자. 앞에서 소개한 상앙과 손빈뿐만 아니라 오기와 전기 같이 병법에 능한 사람들도 있었다. 합종연횡 즉, 여러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는 소진, 장의와 같은 외교 로비스트도 있었다. 서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며 호시탐탐 이웃나라를 노리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인의만을 외친다니! 사마천은 그를 두고 '우활迂闊(迂遠而闊於事情)', 현실성 없이 이상적인 말만 늘어놓는 인물이라 평한다.
여기 맹자에 못지않은 이상주의자가 또 있다. 바로 장자이다. 그의 친구 혜시가 장자를 두고 평하는 말을 들어보자.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이 나에게 큰 박씨를 주길래 그것을 심었지. 어찌나 크게 자라는지 5석이나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박이 열리더군. 그런데 그렇게 큰 박을 쓸 데가 있어야지. 물을 담자니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고, 쪼개서 바가지로 쓰자니 또 너무 납작하지 않겠나. 크기만 하고 아무 쓸모가 없어 그냥 다 부숴버리고 말았네."
장자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큰 것을 쓰는데 매우 서투르시군요. 송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대대로 솜을 빨아 생계를 삼았기 때문이지요.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이들의 재주를 알고는 백금을 줄 테니 약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국은 가족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솜 빠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고생하지만, 약 만드는 법을 팔면 백금을 얻을 수 있으니 팔아버리자 하며 그 나그네에게 비법을 넘겼지요.
그 나그네는 오나라에 가서 장수가 되었습니다. 마침 한겨울 월나라가 오나라에 쳐들어왔는데 오나라는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 덕분에 수전에서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나라 왕은 그 나그네의 공을 치하하여 봉지를 내려주었답니다.
똑같이 손 트지 않게 하는 비법이라 하더라도 누구는 봉지를 받고, 누구는 평생 솜빠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게 관건이었던 셈입니다. 지금 선생께 커다란 박이 있다니 그것을 배로 삼아 강이나 호수에 띄워놓고 여유를 즐겨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크고 쓸모없다며 탓하시기만 하니 선생께서는 꽉 막힌 생각만 가지고 계십니다.
혜시와 장자가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혜시의 말이나 장자의 말도 하나의 우화이다. 이를 조금씩 살펴보자. 혜시는 위왕에게 커다란 박씨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 위왕은 당연히 양혜왕을 떠올리게 한다. 위왕에게 받은 씨앗 하나, 나중에 터무니없이 커다란 열매를 맺는 이것은 장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었을까. 위왕, 양혜왕의 소개로 너를 만났는데 쓸데없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도무지 쓸데가 없다. 쓸 곳을 찾지 못하겠으니 이제 버려야겠다는 말. 장자를 곁에 두지 않고 내쫓겠다는 선언 아니었을지.
장자는 혜시의 우화를 다른 우화를 들어 받아친다. 바로 송나라 사람 이야기. 참고로 송나라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대명사로 많이 소개되곤 했다. 예를 들어 한비자는 수주대토守株待兎, 나무뿌리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은 토끼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연히 죽은 토끼를 보고는 매일 토끼를 잡겠다며 기다린 어리석은 사람이 송나라 사람이었다. 맹자는 알묘조장揠苗助長, 빨리 자라게 한다며 싹을 다 뽑아놓은 어리석은 농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역시 송나라 사람이었다.
장자의 송나라 사람은 그나마 좀 소박하다. 대대로 솜 빠는 일을 하는 바람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백금을 주고 이 기술을 산다. 그는 영 엉뚱한 곳에서 이 기술을 활용한다. 바로 수전水戰. 한 겨울 수전을 벌이는 가운데 손이 트지 않는 약 덕분에 오나라 군대는 월나라를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한쪽에 쓸모없는 것이 어찌 다른 쪽에서도 쓸모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쓸모없다는 것은 쓸 방법을 모르는 사람의 푸념을 뿐이다.
어찌 그렇게 쓸데없이 허무맹랑한 말을 늘어놓는가? 혜시의 지적에 장자의 일갈이 흥미롭다. 당신처럼 꽉 막힌 사람에게나 쓸모없는 것이겠지! 쓸모없기는 맹자도 마찬가지. 만약 혜시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맹자는 무어라 답했을까. 아마 크게 탄식하지 않았을지. 천하에 도가 사라지니 성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자가 없구나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