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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0. 2020

크고 괴이한 나무

2강 장자와 맹자 #6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앞에서 소개한 초광접여,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의 말을 다시 기억해보자. 그는 공자를 가리켜 어리석다고 이야기하며 이 쇠락한 시대에 아웅다웅 무엇을 해보겠다며 살아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산의 나무는 쓸모 있으므로 베어진다고.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옻나무는 사용할 수 있어서. 마치 등잔불이 자신을 불태우듯 그렇게 모두가 어리석다고. 그러면서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흥미롭게도 <장자>에는 나무와 나무꾼의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이는 장자가 '칠원' 옻나무 동산에서 일했던 이력이 있는 까닭일 테다. 나무는 나무꾼의 도끼에 언제든 베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날카로운 도끼질을 피할 수 없을까? 장자는 도끼질을 피한 나무를 몇몇 소개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소개한 먹줄과 직각자를 댈 수 없는 나무가 그렇다. 보다 상세한 우화 하나를 소개한다. 


장석이 제나라로 가다가 곡원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토지신 사당의 나무가 한그루 있었는데 어찌나 큰지 수천 마리 소를 덮을 정도였다. 굵기는 백 아름 정도였고, 높이는 까마득히 높아 산을 내려다볼 정도였다. 여든 자 정도 되는 데서 가지가 뻗어 있었는데 큰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굵은 것이 수십 개나 되었다. 장터처럼 주변에 구경꾼이 모여있었으나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한 제자가 이 나무를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뒤늦게 장석에게 달려와 물었다. "도끼를 잡아 들고 선생님을 쫓아다닌 뒤로 이렇게 대단한 재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지나쳐버리십니까?"

장석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아. 영 쓸모없는 나무야. 저런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가구를 만들면 곧 썩어버리고, 그릇을 만들면 곳 망가지고, 문을 만들며 진물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겨버리지. 저건 재목이 못 되는 나무야. 아무럴 쓸모가 없으니 저렇게 클 수 있었지."

집에 돌아오자 꿈에  그 나무가 나왔다. "네가 나를 어찌 평가하려느냐? 쓸모 있는 나무에 나를 비교한단 말이냐? 사과, 배, 귤 , 유자 따위는 열매가 익으면 잡아 뜯긴다. 가지가 부러지고 몸에 생채기가 생기지. 그 열매 맺는 능력이 제 삶을 괴롭히는 거다. 그래서 천명을 살지 못하고 도중에 죽어 버린다. 세상의 이치가 이렇다.

나는 쓸모없기를 오래도록 바랐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어 죽을 뻔했지. 네가 나를 쓸모없다고 하니 그게 나에게 큰 쓸모가 되었다. 내가 쓸모 있었다면 어찌 이렇게 클 수 있었을까. 너나 나나 모두 하찮은 존재이다. 서로 하찮다고 서로 헐뜯어 무엇하랴. 너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어찌 쓸모 없는 나무에 대해 알겠는가."


상상하기도 버거울 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다. 목수 장석은 이 나무를 그냥 지나친다. 볼 것도 없단다. 쓸모없기에 저렇게 커다랗게 자랄 수 있었다는 말. 거꾸로 말하면 쓸만한 나무는 모두 진작에 베어졌을 것이다. 예전에 금강소나무 숲을 소개하는 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소나무 가운데 으뜸이라 조선시대부터 나라에서 이 숲을 관리했단다. 나라에서 관리할 정도였다지만 크고 오랜 나무를 보기 힘들나다. 어느 정도 자라면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목상木商은 '쓸모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을 일러주었다.


장자는 자신의 시대를 온통 폭력으로 가득 찬 시대라 보았다. 그 유명한 당랑거철螳螂拒轍도 장자의 우화에서 나온 말이다. 제 아무리 곤충의 왕이라 하는 사마귀라도 수레바퀴 앞에서는 한갓 미물에 불과하다.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지 않고 앞발을 치켜들고 덤벼들었다가는 바퀴에 짓눌려 죽을 뿐이다. 장자가 보기에 인의를 말하는 사람도 비슷하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에 온몸으로 저항한들 그것이 먹히기나 하겠는가.


전국시대는 유세객들로 가득 찬 시대였다. 저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제주를 뽐내며 군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분주하게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 가운데는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달라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란 한 순간의 것에 불과했다. 앞에서 언급한 상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상앙의 권력이 커서 그 누구도 상앙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왕이 세상을 떠나고 새로운 왕이 왕위에 오르자 상앙은 하루아침에 반역을 기도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는 결국 거열형, 몸이 찢겨 죽었다고 한다.


이 우화의 주인공 장석은 아마도 당대에 여러 나라를 전전하던 유세객을 비유한 것일 테다. 전국시기 여러 나라 가운데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던 제나라가 그의 목적지였다. 그는 제나라로 가서 자신의 뜻을 이루었을까? 집에 돌아왔다 보니 아마 그렇게 되지는 못했나 보다. 그렇게 그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는데 이를 어떻게 여겼을까. 쓸모없음의 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커다란 나무는 말한다. 당신의 쓸모없음이 나에게 큰 쓸모가 되었다고. 이 발견은 매우 중요하다.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할 때 앞의 쓸모없음과 뒤의 쓸모가 이야기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쓸모'란 대체 누구에게 쓸모 있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능력이란 대부분 누군가에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 더군다나 그것이 나를 더 잘 쓰도록, 자르고, 다듬고, 토막 내어 유용하게 가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닌지. 장자는 그렇게 도구화되는 삶을 경계하고 있다.


세상에는 장석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쓸만한 재목, 인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물론 오늘날처럼 취업이 힘든 반백수, 절반이 백수인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반가울 뿐이다. 누군가 나를 써 주었으면. 오늘날 우리는 극심한 경쟁 속에 누구나 유용지용, 쓸모 있음을 쓸모를 추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다 해도 장자의 말이 영 쓸모없는 헛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장자처럼 살지는 못해도, 해괴한 기인으로 살 수는 없어도 그가 지적한 문제를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 모두가 그렇게 커다란 나무처럼, 스스로를 다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열매를 뺏기고, 가지를 뜯기며, 줄기를 베어지면서 뎅강뎅강 점점 작고 작게 잘리는 삶을 살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장자라는 크고 괴이한 나무가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그런 나무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은 다를 테니. 장자는 서로 크기를 빗대어 더 나은 삶을 주장하며 아웅다웅 다투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진짜 커다란 것을 모르면 적당한 것을 가지고도 크게 다투기 마련이다. 장석이 휩쓸고 간 산에서 자란 나무들은 저렇게 크고 괴이한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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