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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4. 2020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해

4강 장자와 사마천 #6

* 용산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장자와 사마천 이 둘의 공통점을 찾자면, 둘 모두 빼어난 이야기꾼이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들은 천년을 넘어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마천은 구체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반면 장자는 우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한다는 점이다. 하여 누군가는 장천마지莊天馬地, 하늘에는 장자가 있고 땅에는 사마천이 있다고 하였다. 장자의 우화는 우리를 드넓은 하늘로 이끌고, 사마천의 글쓰기는 우리를 개별 인간의 삶으로 파고들게 만든다.


후대의 문학가들이 이 둘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상력의 보물창고였으며, 참고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들이 들어있는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했다. 장자와 사마천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속담으로 사자성어로 지금까지 간추려 전해지고 있다. 


당랑거철과 조삼모사, 호접지몽 등은 매우 유명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달팽이 뿔 위에 싸운 이야기는 어떤가. 모두 <장자>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사면초가와 발산개새, 다다익선과 토사구팽, 더 거슬러 올라가면 관포지교와 와신상담, 완벽귀조와 물경지교까지. 어찌 보면 사자성어에서만 보면 <사기>의 압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가 선물한 상상의 세계는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016년 중국에서 <나의 붉은 고래>라는 애니메이션을 개봉했다. 중국어 원제는 '대어해당大鱼海棠', 여기서 말하는 고래, 즉 큰 물고기란 <장자: 소요유>에서 나온 곤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은 하늘로 날아오른 커다란 물고기를 소개하며 <장자>의 첫 구절은 인용하고 있다.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


본 강의의 일차적인 목적, 장자를 비롯하여 그와 견주어볼 만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지만 마지막으로 강의를 마무리하며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장자>를 빌어 만든 애니메이션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서사력의 부재를 이야기했다. 기술적으로는 꽤 빼어난 수준을 보였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즉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하나의 중요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이 시사하는 바를 너무 간과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차용하여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서유기대성귀래西遊記之大聖歸來>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유기>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이다.


<서유기대성귀래>가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은 제천대성, 즉 손오공이 활개 치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때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이름으로 천궁天宮을 호령하던 손오공이 다시 각성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알고 있던 손오공 이야기 밖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 '귀래歸來'라는 제목처럼 이는 중국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2008-2010년 사이에 중국이 G2로 부상한 이후 중국의 영향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2015년 손오공의 귀환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제국으로 다시 부상하는 중국의 자기 모습을 서술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이 작품 이후 제작진이 만든 2019년 <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 이 제목을 우리말로 바로 옮기면 마동魔童, 즉 악마 '나타哪吒'가 세상에 태어났다 정도가 될 것이다. 나타는 <봉신연의>를 비롯해 중국 신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그는 <서유기>에도 등장하는데 손오공을 맞서 꽤 고전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신화의 주인공 나타를 문제 있는 악동으로 그려낸다. 마귀라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나태를 주인공을 내세워 조금은 다른 영웅 이야기를 전한다. 마동 나타는 주변국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중국 자신을 묘사한 하나의 우화는 아니었을까?


2019년 중국 링바오靈寶라는 소도시에서 <나타지마동강세>를 보았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았는데, 화려한 화면에 넋을 잃고 말았다. 3D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지는 화면에 넋을 잃으면서 기술력으로는 이제 흠잡을 데가 없게 되었구나 생각하곤 했다. 이 애니메이션이 국내에 수입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내부에서는 크게 인기를 끌었다. 


제작사는 이 흥행을 바탕으로 후속작을 제작했는데, 제목은 <강자아姜子牙>, 즉 주나라의 건국 영웅 강태공 여상의 이야기를 애니매이션화한 작품이다.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작품은 2020년 춘지에春節, 우리로 따지면 음력설에 개봉을 계획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2월 중에 청소년들과 중국 여행을 하면서 난징에서 가장 큰 극장에서 이 작품을 함께 감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개봉은 미뤄졌고, 계획했던 여행도 취소되었다.


인터넷을 보면 '코로나 19'를 '우한폐렴'이라 지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 전염병이 중국 책임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중국에 대한 강한 혐오 의식이 깔려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혐오가 중국의 강대한 영향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을 뒤흔든 이 질병은 그만큼 중국이 끼치는 영향이 세계적이라는 반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영향력에 비해 이해가 많이 적다는 점이다. 저 큰 나라가 바로 이웃이며,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늘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망각한다. 그들의 자신의 옛 고전을 빌어 이야기를 전할 때 우리는 그것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을까? 중국은 이미 전통으로부터 자신을 설명할 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것은 또한 서구에 해석당해온 역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이야기'들을 남의 것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사기>가 중국 역사라 이야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기록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그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로마신화가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에는 주인이 없다. 가져다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사람들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열광할 때 나도 극장을 찾았다. 그 많은 히어로 영화에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너도나도 이야기하니 한 번은 보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영화의 마지막, '캡틴 아메리카'의 퇴장을 보면서 이제 헐리웃은 어디에서 이야기를 끌어올까 궁금했다. 그것은 단순히 '캡틴 아메리카'라는 한 캐릭터의 퇴장이 아니라,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미국 중심의 세계의 쇠퇴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사람들은 Made in USA에 열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야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혀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며, 재미를 주기도 하며, 주장과 생각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2020년 11월, 세상은 더없이 갑갑하고 우울하다. 이럴 때야 말로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때로는 터무니없는 우화가, 때로는 각양각색의 인간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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