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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19. 2021

장자익 : 소요유 4

번역해보자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넘겨주려 했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여전히 등불을 켜고 있다면 쓸 데 없이 밝히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때맞춰 비가 내리고 있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다면 쓸데없이 물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선생께서 제위에 오르시면 천하가 다스려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 부끄럽기만 합니다. 천하를 다스려주십시오." 


허유가 대답했지. "그대가 천하를 다스려 천하가 이미 평안한데 날더러 그대 자리를 대신하라 한다? 나 보고 명성을 추구하라는 말이군. 명성은 본질의 껍데기에 불과한데 껍데기가 되랴? 뱁새는 둥지를 짓는데 가지 하나면 충분하고, 두더지는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가 부르면 그만이지. 돌아가 그대의 일을 하시게. 천하를 다스린다느니 하는 일은 나에게 아무 쓸모가 없어. 요리사가 요리를 제대로 못하더라도, 무당이 조리대를 넘어가 그를 대신하지는 않는 법이야."


堯讓天下於許由曰。日月出矣。而爝火不息。其於光也不亦難乎。時雨降矣。而猶浸灌。其於澤也不亦勞乎。夫子立而天下治。而我猶尸之。吾自視缺然。請致天下。許由曰。子治天下。天下既已治也。而我猶代子。吾將為名乎。名者實之賓也。吾將為賓乎。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飲河。不過滿腹。歸休乎君。予無所用天下為。庖人雖不治庖。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 予無所用天下為。: "저는 천하를 맡는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김학주) "나는 천하같이 큰 물건을 쓸 데가 없습니다."(전호근) 


허유 : 영천潁川 양파陽坡 사람. 자는 무중武仲. 기산에 은거하였다.

許由潁川陽城人。字武仲。隱於箕山。爝炬火也。鷦鷯小鳥也。偃鼠鼢鼠也。說文鼢鼠一曰偃鼠。

* 炬火(거화) : 횃불


【郭注】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야 천하를 다스려지게끔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다스리지 않음으로 천하를 다스렸지, 다스림으로 천하를 다스렸던 것이 아니다. 지금 허유는 이미 천하가 다스려지고 있으므로 대신할 것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사실 요임금으로부터 천하가 다스려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천하를 다스려..."라고 말하였다.

다스림은 다스리지 않음에서, 행함은 '행하지 않음, 무위無為'에서 나온다. 요임금만으로 충분한데 어찌 허유를 필요로 하겠는가? 만약 산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무위無為라 할 수 있다면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은 출세의 길과는 영 상관이 없을 것이다. 출세하고자 하는 이들이 '억지 행위(有為)'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런 까닭이다. 제 자신을 내세우는 자는 사물과 대립하지만, 사물에 순응하는 자는 사물과 대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요임금은 천하와 대립하지 않았고, 허유는 후직后稷, 계契와 어울렸다. 어떻게 그러한가? 사물에 잠긴다는 것은 여러 사물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심히 사물과 뒤섞여 어울리며 감응한다. 마치 매여있지 않은 배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면서 멈추지 않는다. 어디든 백성과 함께 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천하의 군주 노릇을 한다. 이렇게 군주 노릇을 하면 하늘과 같이 높아 군주의 덕을 제대로 갖춘다. 만약 도도하게 혼자 높은 산 위에 올라 제 일에만 몰두하는 식이라면 이는 참으로 세속의 별 볼 일 없는 개인, '이름뿐인 신하(外臣)'에 불과할 것이다. 이름뿐인 신하로 '실질적인 군주의 자리(内主)'를 대신한다면 군주의 이름은 있어도 실재 군주의 일을 감당하지는 못한다.

뱁새는 가지에 머물고, 두더지가 배를 채우는 것은 본성마다 정해진 것이 있다는 뜻이다. 정해진 것에 만족한다면 천하의 재물이 넉넉할 것이다. 돌아가라고 말한 것은 요임금의 자리나 허유의 자리 모두 쓸모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임금은 천하를 다스렸는데, 확 트인 마음은 거칠 것이 없어 천하 사람들이 기꺼이 그를 추대하더라도 싫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요리사나 무당이나 각자 맡은 일을 편안하게 여기고, 날짐승이나 들짐승이나 각각 제 본성에 만족하며, 요임금이나 허유나 각각 자기 자리에 느긋하다면 이것이 천하의 지극한 본질이다. 각기 그 본질을 따르면 또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스스로 체득할 뿐이다. 그러므로 요임금과 허유가 하는 일이 영 다르지만 똑같이 자유로이 노닐었다. 

夫能令天下治。不治天下者也。故堯以不治治之。非治之而治者也。今許由方明既治則無所代之。而治實由堯。故有子治之言。夫治之由於不治。為之出乎無為也。取於堯而足。豈借之許由哉。若謂拱黙山林之中。而後得稱無為者。此老莊之談所以見棄於當塗。當塗者自必於有為之域而不反也。夫自任者對物。而順物者與物無對。故堯無對於天下。而許由與稷契為匹矣。何以言其然耶。夫與物冥者。羣物之所不能離也。是以無心玄應。唯感之從。汎乎若不繫之舟。東西之非已也。故無行而不與百姓共者。亦無往而不為天下君矣。以此為君。若天之髙。實君之德也。若獨兀然立乎髙山之頂。守一家之偏。尚此故俗中之一物。而為堯之外臣耳。若以外臣代乎内主。斯有為君之名。而無任君之實也。鷦鷯一枝。偃鼠滿腹。言性各有極。茍足其極。則餘天下之財也。歸休二句。均之無用。而堯獨有之。明夫懷豁者無方。故天下樂推而不厭也。庖人尸祝。各安其所司。鳥獸萬物。各足於所受。帝堯許由。各静其所遇。此乃天下之至實也。各得其實。又何所為乎哉。自得而已矣。故堯許天地雖異。其於逍遙一也

* 當塗: 執掌大權,身居要津。《韓非子.五蠹》:「行貨賂而襲當塗者則求得,求得則私安。」《文選.揚雄.解嘲》:「當塗者升青雲,失路者委溝渠。」縣名。參見「當塗縣」條。




곽상은 붕새나 뱁새나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크고 작음조차 하나의 판단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제 분수에 맞는 제 자리를 찾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곽상은 안과 밖, 세속과 탈속의 구분을 없앤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런 구분은 한쪽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다. 크고 작음의 이야기는 작은 존재가 큰 것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고, 내외의 구분을 없다고 한 것은 구중궁궐 안에서도 자유를 추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곽상의 해석처럼 장자는 현실에 안주하며 만족할 것을, 세상일에 초연히 자유할 것을 이야기했을까?

장자 본문을 옮기는 것보다 곽상의 주석을 옮기는 것이 더 어렵다. 참고할 번역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수고롭게 이 짓을 하는 것은 그가 장자 해석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역시나 장자를 강독하면서 곽상의 주석까지 강독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렇게 옮겨두어 보았자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하는 것은, 하나의 훈련이기도 하고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장자 본문을 번역하며 꼼꼼하게 모든 의미를 다 살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예를 들어, 매미와 쓰르라미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가죽나무와 느릅나무는 어떻고. 

상당히 느슨한 번역을 지향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더 자유롭게 장자의 말을 재구성해야겠다. 장자의 저세상 토크를 오늘 말로 옮기려면 좀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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