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평생학습관에서 5강에 걸쳐 장자를 강의합니다.
기존에 <장자를 만나는 네 가지 길> 원고를 수정 보완할 예정입니다.
ZOOM을 통한 비대면 강의로 진행합니다.
아래 상세한 강의 내용을 붙입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아니면 무엇을 알 것인가?
주나라의 몰락은 훗날 춘추전국이라 불리는 혼란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맞아 공자와 장자는 전혀 다른 삶의 길을 추구합니다. 공자가 과거에 대한 동경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장자는 바로 지금에 주목합니다. 깨우침의 철학자 장자, 그리고 배움의 구도자 공자를 만나봅시다.
난세의 삶, 사생취의捨生取義와 무용지용無用之用
장자와 맹자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그만큼 전혀 다른 이상을 품었기 때문 아닐까요. 맹자의 뜨거운 열정과 장자의 냉소적인 현실 인식은 난세를 사는 두 가지 삶의 길을 보여줍니다. 맹자는 장자를 손가락질하며 비웃겠지만, 장자도 맹자를 비웃을 것입니다.
삶을 가꾸는 길, 포정해우庖丁解牛와 천장지구天長地久
노자와 장자는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함께 묶여 이야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좀 다른 관점에서 이 둘의 차이점에 주목하려 합니다. 양생養生, 삶을 가꾸는 법에 대해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될까요. 삶이냐 죽음이냐, 그렇지 않다면?
장천마지莊天馬地, 하늘에는 장자가 땅에는 사마천이
장자와 사마천은 모두 빼어난 이야기꾼입니다. 장자의 우화를 이야기했고 사마천은 역사를 썼습니다. 이 둘이 다른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훗날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글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와 글쓰기를 생각해봅시다.
방황과 소요, 꿈에서 깨어나니 혼돈이더라
장자는 안주를 거부하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마치 미꾸라지와 같아서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잽싸게 도망가 버리기도 합니다. 부정의 부정을 가르치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새로운 대답으로 우리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이제 혼돈渾沌을 만나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