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친데...

글쓰기 클리닉 3강

by 기픈옹달

<미쳐야 미친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제목은 본래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입니다. 광狂, 미친 것처럼 어디에 빠져야 급及, 어느 경지에 오른다는 뜻이지요.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김득신이라는 인물은 <사기열전>의 <백이전>을 11만번이나 읽었답니다. 이런 괴짜가 정말 있나 싶지만 오늘도 비슷한 사람이 여럿있습니다.


미쳐야 미친다.jpg 불광불급不狂不及


<김생민의 영수증>이라고 요즘 뜨는 TV프로를 아는지요? 알뜰살뜰 덜쓰고 저축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방송입죠.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는 표어만큼 방송의 묘미는 김생민의 철저한 소비패턴 분석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실용주의적 접근이 통하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바로 팬질이지요. HOT 팬인 박지선이 패널로 나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하늘 아래 똑같은 공연은 없다’ 암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박지선은 카세트 테잎도 두 개를 샀답니다. 듣는 것과 보관하는 것. 당연히 비닐도 뜯지 말고 보관해야 합니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된 이 말은 ‘오덕후’와 ‘덕후’를 지나 이제는 ‘덕질’이라는 말이 되었습니다. 말이 바뀌면서 의미도 바뀐 거 같아요. 본래 오타쿠는 어느 대상에 심취한 소수의 사람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반면 덕질은 어딘가에 빠져있는 사람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극소수의 무리를 구분짓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어디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말이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독서광이라는 말을 썼다면 지금은 ‘문자덕후’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어요. 인문덕후라는 말도 있답니다.


덕질에는 세대도 없습니다. TV를 틀면 나오는 게임 광고 가운데 태반은 중년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이야말로 덕질의 본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악과 춤, 대중문화의 흐름에 누구보다 빠르고, 어디에든 쉽게 빠질 수 있는 시절이니 말이지요. 그렇지 않더라도 무엇에든 사로잡히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자의든 타의든 청소년의 삶은 덕질의 일상이라 부를만합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매우 좋은 글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과제를 내어주고 걱정이 있었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아무런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글이면 어떻게 하나. 한편 덕질의 세계에 통용되는 언어가 글쓰기와는 좀 멀기에 그것을 글로 엮어내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과제를 받아보니 예상과 크게 달랐어요. 생각보다 무거운 글이 많았어요. 진지한 글이라고 해야 할까요? 글쓰기라는 형식이 가진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가능하면 가볍고 발랄하게 글을 쓰면 좋겠어요. 부담감은 솔직함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솔직함이 가진 미덕, 내 말을 풀어내는 자연스러움이 빠진 글은 그만큼 생명력이 덜할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거하게 약을 빨고 쓴 것 같은 글을 좋아합니다. 어디에 취해 있는 글을 좋아해요. 펄떡거리는 심장이 드러나는 글이 좋습니다. 제 고유의 냄새와 숨결, 촉감이 담긴 그런 글을 좋아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벼워져야 해요. 검열하지 않고 써야 합니다. 남의 눈과 평가를 접어두고 써야 해요. 제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 써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얼마간의 용기가 필요하기도 해요. 아니, 만용이라도 있어야 자신을 여러 사람에게 드러내고 글로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거듭 바랍니다. 과감하기를!

41968.gif 狂, 과감하게!


한편 저 말, 불광불급不狂不及을 거꾸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불급불광不及不狂, 어디엔가 이르지 못하면(不及) 그 무엇에도 사로잡힐 수 없을 거예요(不狂).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헛돌고, 글쓰기 시간이 답답하고, 서성이는 말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마치고, 그 쓴 글을 고치고 우리 과정을 마치면 좀 달라질 겁니다. 끝에 이르면, 우리가 나누었던 말들이 다른 의미를 가질 거예요. 그러니 끝장 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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