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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Jun 29. 2021

<사기>를 읽자

북방의 북소리 중원을 울리다 6

중국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인 문제가 되었다. 현재적이라는 말은 좋던 나쁘던 현재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고, 미래적이라는 말은 이런 영향이 앞으로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웃에 위치한 14억의 나라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중국'과 중국을 구분하자.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것이되 중국만의 것은 아니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 흔적을 공유하는 모두의 것이다. 하긴 이천 년 전 고대인의 글에 누가 소유를 주장할 수 있을까. 잘 읽고 잘 쓰는 사람이 그 주인이다.


<사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고대인의 숨결을 담았으나 과거의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사의 다양한 면모를 충실히 담아내었다. 하여 '사마천의 인생극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흥미진진한 여러 삶의 이야기를 주목해보자는 차원에서. 


한편 <사기>는 현재의 중국, 미래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중국을 이해하는 입구가 될 수도 있고, 중국을 분석•비판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중국이 새로운 얼굴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올 때 그 가면 너머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을 선물해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사기>를 읽자. 그러나 총 130편, 12 <본기>, 10 <표>, 8 <서>, 30 <세가>, 70 <열전>의 방대한 분량을 다 읽기란 버거운 일이다. 실제로 완역본은 무게와 부피만 하더라도 상당하다. 무턱대고 읽자니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찾기 힘들다. 조금은 지혜롭게 읽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전체를 완독하는 것이다. <사기>의 복잡한 구성 때문에 순서대로 줄창 읽다가는 지치기 십상이다. 따라서 맥을 잡고 일부를 읽은 뒤, 기회를 보아 완독하는 것을 권하는 편이다.


구마라지파는 번역문을 읽는 것이란 남이 씹어놓은 것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다. 본래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사기 본문을 원문으로 읽으면 보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사마천 문장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공력이 필요한 일이다.


책을 잘 차려진 성찬에 비유한다면, 강의는 시식평에 해당할 것이다. 아무리 귀가 즐겁고, 눈이 즐겁다 해도 직접 입으로 한입 베어 무는 것만 못하다. 그러니 꼭 직접 읽어보도록 하자. 


이를 위해 아래에 약간의 지도를 첨부한다. 넓고 방대한 <사기>의 세계를 탐방하는 몇 개의 주요 경로들이라 할 수 있다. 




1. 역사 흐름에 따라 읽기


<사기>는 춘추전국 시대로부터 진한 교체기를 이어 한무제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따라서 이 시기를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읽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1) 상고사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는 어쩔 수 없이 <본기>로만 만족해야 한다.


2) 주周의 창업

주나라 건국과 백이숙제의 이야기를 함께 읽으면 흥미롭다. <백이열전>과 <주본기>를 함께 읽자.


3) 패자의 시대

주나라의 몰락 이후 제후국의 힘이 강성해진다. 이 가운데 패자들을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이다. <관안열전>과 <제태공세가>의 환공 부분을 읽으면 제나라의 패자, 제환공의 이야기를 둘러볼 수 있다. 여기에 <진세가>의 진문공 <초세가>의 초장왕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다.


4) 오월吳越 전쟁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였다. 이 두 나라의 전쟁은 수많은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 우선 <오태백세가>에서 오왕 합려와 부차의 이야기를, <월왕구천세가>에서 구천의 이야기를 읽자. 그리고 그 주변에 있었던 인물 <손자오기열전>과 <오자서열전>을 함께 읽으면 좋다. 덧붙여 <자객열전>의 전제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다.


5) 진秦의 부상

훗날 통일하게 되는 까닭일까. 진나라에 대한 기록이 많다. <진본기>와 함께 <상군열전>을 읽자. 본격적으로 진이 강성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저리자감무열전>, <양후열전>, <범저채택열전>을 읽으면 통일 직전까지 진나라의 강성함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은 짝으로 읽어볼 만하다. 당시 진나라를 견제하려 한 육국의 태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 장평전쟁 

진과 조의 전쟁을 보기 위해서는 <염파인상여열전>과 <백기왕전열전>을 함께 읽자. 두 나라의 살벌한 전쟁 상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7) 한단을 구하라

전국사공자라 불리는 <맹상군열전>, <평원군열전>, <위공자열전>, <춘신군열전>을 보면 진이 조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을 때 여러 모로 활약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식객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도 볼 수 있는 부분.


8) 악의 VS 전단

<악의열전>과 <전단열전>을 함께 보는 것도 흥미롭다. 제나라를 침공한 악의, 그리고 기묘한 전법으로 전세를 뒤집어엎은 전단의 싸움을 볼 수 있다. 


9) 진의 통일과 몰락 

진의 통일 과정을 보기 위해서는 <여불위열전> - <진시황본기> - <이사열전>, <몽염열전> 순으로 보는 게 좋다. 진의 통일에서 몰락까지 볼 수 있다. 


10) 초한전쟁

항우와 유방의 전쟁은 <항우본기>와 <고조본기>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옆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는 없다. 여기에 <회음후열전>, <소상국세가>와 <유후세가>를 읽자. 힘이 남으면 <계포난포열전>, <위표팽월열전>, <경포열전>, <육생역고열전> 순서로 읽어보자.


11) 여씨천하

유방 사후 여태후의 활약상을 보자. 이어 문제의 즉위, 그를 둘러싼 이야기도 함께 볼 수 있다. <여태후본기>와 <효문본기>를 읽자. 이후는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12) 오초칠국의난

한 초기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오왕비열전>을 시작으로 <원앙조조열전>을 함께 읽자. 힘이 닿으면 <효경본기>를 함께 읽는 것도 좋다.


13) 흉노정벌

무제는 대규모 원정대를 꾸려 흉노를 공격한다. 이는 당시 매우 커다란 사건이었다. <흉노열전>, <이장군열전>, <위장군표기열전>을 읽어보자.


이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꼽자면, 4) 오월전쟁 / 9) 진의 통일과 몰락 / 10) 초한전쟁 을 꼽겠다.




2. 키워드로 읽어보기


1) 복수

‘복수’는 <사기열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이다.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자객열전>을 함께 읽어보자.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 몰락

사기는 거대한 인물의 몰락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상군열전>, <백기열전>, <회음후열전>을 함께 읽어보자. 원망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3) 고결함

자신의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인물들이 있다. <백이열전>, <염파인상여열전>과 <굴원가생열전>을 그리고 <계포난포열전>을 함께 읽어보자. 서로 다른 고결한 삶을 만나볼 수 있다. 이어서 <태사공자서>도 함께 읽으면 더욱 의미가 깊을 것이다. 


4) 유가儒家

초기 유가의 탄생과 발전을 보자. <공자세가>와 <중니제자열전>을 읽고 <맹자순경열전>과 <유림열전>을 읽자. 대략적인 흐름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5) 법가法家

법가야 말로 사기를 꿰뚫는 거대한 힘이다. <상군열전>, <노자한비열전>, <이사열전>을 읽어보면 이들의 놀라운 개혁정신을 만날 수 있다.


6) 기이한 이들

다양한 재주를 지닌 인물들이 있다. <편작창공열전>은 고대의 의술을, <영행열전>은 황제의 사랑을 받은 이를, <골계열전>은 웃긴 이들을 다룬다. <일자열전>과 <귀책열전>에는 점쟁이가 나온다. 


7) 협俠의 정신

<평원군열전>, <춘신군열전>, <자객열전>, <유협열전>을 읽으면 칼 한자루에 의리 하나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던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협의 정신이란!


8) 도필리刀筆吏

도필리란 쉽게 말해 관료, 요즘으로 치면 공무원이라고 할까. 이들은 춘추전국시대의 들끓는 인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순리열전>, <급정열전>, <혹리열전> 등을 읽으면 바로 앞의 협객들과는 대비되는 인간군을 만날 수 있다. 


9) 오랑캐

천하 세계 바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흉노열전>, <남월열전>, <동월열전>, <조선열전>, <서남이열전>, <대원열전>을 보면 당시 한나라가 외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알 수 있다.


10) 천하경제

<화식열전>은 그 자체로 매우 연구할 거리가 많은 글이다. 여기에 <평준서> 를 함께 읽으면 천하 물건의 흐름을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꼽자면, 1) 복수 / 3) 고결함 / 7) 협俠의 정신을 꼽겠다.




3. 골라 읽기


지금까지 특정한 주제에 따라 묶어 읽기를 제안했다면 그저 문장이 좋은 편을 골라 읽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렇게 엮어진 책도 있다. 그 유명한 <사기영선>! 정조가 고른 이 책은 아래 순서로 되어 있다. 제목은 <사기>에 수록된 것으로 바꾸었다. 


<항우본기>, <소상국세가>, <유후세가>, <백이열전>, <관안열전>, <오자서열전>, <소진열전>, <맹상군열전>,  <평원군열전>, <신릉군열전>, <범수채택열전>, <악의열전>, <굴원가생열전>, <장이진여열전>, <회음후열전>, <역생육고열전>, <조조원앙열전>, <오왕비열전>, <위기무안후열전>, <급정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자객열전>, <유협열전>, <골계열전>, <화식열전>, <태사공자서>


민음사 판의 역자 김원중도 22편을 뽑아 <사기선집>을 엮기도 했다. 총 4부로 나누었고 순서는 아래와 같다. 위와 비슷하나 그래도 소개한다.


1부 천하 제패를 향한 치열한 경쟁의 시대 
 <백이 열전>, <관안열전>, <노자한비열전>, <사마양저열전>,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월왕구천세가>, <상군열전>, <맹상군 열전>, <염파인상여열전>

2부 첫 통일 제국 진나라의 짧은 흥망
<여불위열전>, <자객열전>, <이사열전>, <진섭세가>

3부 항우와 유방의 초한 쟁패
<항우본기>, <고조본기>,<소상국세가>, <유후세가>, <회음후열전>

4부 사마천이 꿰뚫은 다양한 인간 삶
<골계열전>, <화식열전>, <태사공자서>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 양계초의 선택은 이렇다. 그가 뽑은 10대 명편이다.

<항우본기>, <위공자열전>, <염파인상여열전>, <노중련추양열전>, <회음후열전>, <위기무안후열전>, <이장군열전>, <흉노열전>, <화식열전>, <태사공자서>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꼽은 <사기> 10대 명편과 이에 대한 짧은 평이다. 

<진시황본기>: 황제를 자처한 인물. 제국의 창조와 몰락의 순간.

<항우본기>: 사면초가와 역발산기개세의 주인공. 비극적 영웅의 서사시

<고조본기>: 중국적 영웅의 표본. 굴하지 않는 정신 천하를 집어 삼키다.

<오자서열전>: 복수의 현장. 죽어서 원수를 갚지 못하고, 죽어서 몰락을 보지 못하다.

<위공자열전>: 의에 살고 죽었던 사람들. 신릉군 위무기를 사랑한 유방을 떠올리며 읽자.

<염파인상여열전>: 완벽과 문경지교, 그리고 조나라의 몰락 이야기. 

<굴원가생열전>: 흙탕물에 살아갈 수 없었던 인간. 그래서 돌을 끌어안고 죽음을 맞다.

<자객열전>: 칼을 손에 쥔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거꾸로 칼날이 된 삶들.

<흉노열전>: 명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중국’ 밖도 이리 풍성하다니.

<태사공자서>: 130편의 마침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나 또 하나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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