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의북소리 중원을 울리다 5
조금은 까다로운 이야기를 해보자.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커다란 나라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명확히 말하면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이 있을 뿐이다. 각각 다른 뿌리를 갖는 두 개의 중국이다.
과거에는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중공(중국공산당)'과 '자유중국'이라는 식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표현은 거의 사라졌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중국'이라 말하는 것은 거대한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일컫는다. 이제는 '중국'과 '대만' 두 나라가 있는 셈이다.
이 두 나라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이란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표현이란 말씀.
실제로 중국 역사를 보면 '중국'을 국호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사기>에서 만나는 여러 나라의 이름은 본디 각 지역의 명칭이었다. 설령 한 지역에서 출발한 나라가 중국 전체를 통일한다 하더라도 나라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진秦은 통일 이후 여러 변화를 추구했다. 황제의 호칭을 새로 만들었고 도량형과 문자 등을 통일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바꾸지는 않았다. 서쪽 변방 한漢에서 출발한 유방의 나라를 기억하자. 통일 이후에도 여전히 '한'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이런 전통은 계속 이어진다. 중국 역사에서 똑같은 이름의 나라가 그렇게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기>에 오吳나라가 있었는데, <삼국지>를 펼쳐도 오吳나라가 있다. 그것뿐인가. <사기>의 진晉나라는 한韓 조趙 위魏 세 나라로 나뉘었다고 하더니 <삼국지>를 펼치면 조조의 위魏나라가 통일하는가 싶더니 사마씨의 진晉 나라가 통일을 이룬다. 똑같은 이름의 나라로 머리가 복잡하다. 게다가 글자는 다른데 같은 이름의 나라(秦/晉, 漢/韓, 魏/衛 …)까지 생각하면 어질어질하다.
이런 복잡함 때문일까? 원元 이후에는 지역명에서 나라 이름을 택하는 전통을 버리고 상징적인 의미를 취한다. 명明, 청清이 모두 그렇다. 그렇지만 '중국'을 나라 이름을 선택한 적은 없었다.
본디 '중국'은 나라의 이름이 아닌 문명 세계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고대인들은 세계의 변방에 오랑캐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는 '사이四夷'로 각 방위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달랐다. 예를 들어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 따위가 그렇다. 이 말들은 각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표현이기도 하다. 동쪽의 활 잘 쏘는 이들, 서쪽의 창을 든 이들, 북쪽의 이리 떼, 남쪽의 벌레 떼. 각각의 표현을 보면 오랑캐란 사납도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더럽고 미개한 존재이기도 했다. 이들과 구분되는 문명세계, 바로 이곳이 '중국'이었다.
이런 중국의 천하관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무너진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도리어 변방의 미개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지난 19세기, 20세기 역사는 변방에서 중심으로 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21세기는 어떤가. 새롭게 튀어나온 중국몽中國夢이란 표현은 오늘날 중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말이다.
중국이 말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란 유라시아를 하나로 묶으려는 중국의 원대한 계획이다. 어느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이미 중국은 자신을 변방, 예를 들어 과거처럼 제3세계 국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처럼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넓은 역사에서 보면 오랜 과거가 부활한 셈이다. '중국'의 긴 역사에서 보면 19세기와 20세기는 작은 휴지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중국을 '제국'이라 하자. 조금은 느슨한 의미에서 중국을 '제국'이라 할 때, 이전의 다른 제국과는 다른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제국은 일시적인 번영의 시기를 구축한 뒤에 몰락하여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찢어졌다. 예를 들어 그리스를 보라. 그리스 철학이 유명하나 지금 그곳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로마를 상징하는 도시 ‘로마’는 어떤가? 우리가 그곳에서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낡은 유물뿐이다. 로마의 정신을 그곳에서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비록 수 차례 나라 이름을 바꾸었으나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한족漢族, 과연 그것을 통상적인 의미의 ‘민족/종족’이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들의 뿌리를 수천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 토를 달기는 힘들다. 아마도 그것은 수천 년간 사소한 변화만을 겪은 한자漢子 덕택인지도 모른다. 번체繁體가 간체簡體로 바뀌었다나 여전히 거기에는 옛 흔적이 남아있다. 근대적 문법이 도입되고, 구어체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고문古文을 읽는데 들이는 수고는 다른 언어에 비할 것이 못된다. 플라톤의 글이, 헤로도토스와, 오비디우스의 문장이 그들의 옛 고향의 말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중국인의 말에는, 거꾸로 이것은 ‘우리의 말’에도 해당하는 것인데, 일상의 말에도 옛글의 흔적이 완연히 남아있다.
따라서 오늘날 ‘미합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변하지 않는 무엇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국을 뜻하는 China가 진秦(qin)에서 나왔으며, 저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예를 들어 한족漢族라던가 한어漢語 따위가 한漢에서 나왔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르게 말하면 오늘의 중국이란 ‘진한秦漢’이라는 고대 제국에서 출발하여 그 모습을 갖추어왔다고 말할 수도 있다. 중국을 사유할 때 <사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다른 표현 화이華夷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화華는 중국을 다르게 일컫는 화하華夏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아무래도 중국의 고대 국가인 하夏에서 출발한 말로 보인다. 그 옛날 전설의 시대로부터 중화와 오랑캐를 나누었으나 하를 무너뜨린 은과 주는 이민족의 나라였다.
춘추전국은 주周의 천하를 두고 여러 나라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는 시대였다. 대부분은 주의 천자로부터 분봉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진秦과 초楚가 있다. 이 두 나라는 본디 주의 봉건체제와는 연관이 없었지만 나중에는 다른 제후국과 힘을 겨루며 천하를 다투었다. 그 가운데 서쪽 변경에 있던 나라인 진秦이 천하를 통일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한편 뒤를 이어 다시 천하를 지배한 유방은 초楚 출신이었으며, 그가 거점으로 삼은 - 혹은 그의 거점이 된 한漢 역시 중원中原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다.
이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비록 중국이라는 말이 중앙과 변경을 나누며, 그 중앙이 훨씬 높아서 변경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을 말해준다. 중앙은 늘 변경에게 침입당하는 곳이었고, 거꾸로 그 칩입을 통해 무한히 모양을 바꾸며 새롭게 구성되었던 곳이었다. <사기>는 '중국'이 구체화되는 초기의 과정을 보여주며, 또한 오늘날 중국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통찰력을 선물해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