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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16. 2021

장자씨 헛소리도 잘 하시네 8

우화로 읽는 장자 - 대종사

하늘이 하는 일을 알고 사람이 하는 일을 알면 지극하지.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하늘을 따라 살아가. 사람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가꿔. 하늘이 준 수명을 다 살고 중간에 죽지 않는 것, 이것이 온전한 앎이야.  


그러나 걱정거리가 있어. 앎이란 대상이 있고 나서야 생기는 것. 그 대상이라는 것이 늘 일정하지 않지. 그럼 내가 하늘이 한 일이라고 한 것이 사람이 한 일이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 한 일이라고 한 것이 하늘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참된 사람이 있어야 참된 앎이 있어. 참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옛날 참된 사람은 작은 일이라고 거스르지 않았고, 성공을 자랑하지 않았고, 일을 꾸미지 않았어. 이런 사람은 잘못되어도 후회하지 않았고, 잘 되어도 제 것으로 여기지 않았지. 이런 사람은 높이 올라가도 떨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아. 이렇게 앎이 도에 이를 수 있는 거야. 




옛날의 참된 사람은 잠을 자도 꿈을 꾸지 않았고, 깨어서도 근심이 없었지. 맛난 것을 탐하지 않았고, 깊고 깊게 숨을 쉬었어. 참된 사람은 발꿈치까지 숨을 쉬지만 평범한 사람은 목구멍까지 숨을 쉬지. 


남에게 굽실거리는 사람은 마치 토하듯 말을 내뱉지. 깊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천성이 얕아. 옛날의 참된 사람은 삶을 기꺼워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싫어하지도 않았어. 태어남을 반기지도 않았고 죽음을 거스르지도 않았어.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날 뿐이지. 태어남을 잊지 않지만 죽음을 알려하지도 않았어. 삶을 받았으니 기뻐하고, 삶을 잃으면 돌아갈 뿐이야. 이런 것을 '마음으로 도를 망치지 않음'이라 해. 사람으로 하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사람, 이것이 바로 참된 사람이야. 


이런 사람은 그 마음이 한결같고, 그 모습은 고요하며, 낯빛이 훤하지. 마치 가을처럼 쓸쓸하면서도, 봄처럼 따뜻해. 기쁘고 성내는 감정이 자연스러워 다른 사람들과 마땅히 어울리면서도 그 끝을 알 수 없지.    


그러므로 성인은 병사를 이끌어 나라를 망하게 해도 인심을 잃지 않아. 만세토록 이로움을 베풀더라도 백성을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야.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소통함을 즐기면 성인이 아니야.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인자가 아니고, 하늘의 때를 따지면 현인이 아니고, 이로움과 해로움을 바라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며, 명성을 추구하여 자기를 잃으면 선비가 아니야. 자신을 잃고 참되지 않으면 남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지. 


호불해, 무광, 백이, 숙제, 기자, 서여, 기타, 신도적 ... 이들은 모두 남의 일을 하며, 남의 길을 따랐어. 자기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말이야. 




옛날의 참된 사람은 그 모습이 우뚝 솟아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모자라는 것 같지만 채우지 않아도 돼. 홀로 있으나 고집스럽지 않으니, 한가하도다! 텅 비어 있으나 화려하지 않으니 훌륭하구나! 기쁜 듯 즐거운 모양이구나! 어찌할 수 없으니 서두르는구나! 가득 차 내 표정이 빙그레 웃고, 한가하니 내 덕이 고요하도다. 널찍하여 마치 큰 것 같고, 당당하여 거칠 것이 없구나. 묵묵한 것이 마치 다물고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으나, 멍한 것이 할 말을 잊은 것 같기도 하지. 


형벌 내리는 것을 제 몸처럼, 예의를 따르는 것을 마치 날갯짓처럼, 지혜를 쓰는 것을 때에 따르듯이, 덕을 행하는 것을 순종하듯 해. 형벌을 내리는 것을 제 몸처럼 한다는 것은 담담히 죽임을 받아들임이야. 예의를 따르는 것을 날갯짓처럼 하니 세상에 다니지. 지혜를 쓰는 것을 때에 따르듯이 한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거야. 덕을 행하는 것을 순종하듯 한다는 것은 발이 있는 사람과 언덕에 이른다는 거야. 그런데 사람들은 참된 것을 힘써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좋아한다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야. 하나라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고,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입장이야. 하나라고 하면 하늘과 함께하고, 하나가 아니라고 하면 사람과 함께하지.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서로 다투지 않는 것, 이것이 참된 사람의 덕목이야. 


삶과 죽음은 운명이지. 늘 낮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야. 사람에게는 어찌할 수 없는 게 있어. 이것이 모든 존재의 구체적인 상황이야. 저 사람들은 하늘을 아버지로 여기면서 스스로 하늘을 섬기기도 해. 하늘보다 더 높은 것은 어떨까. 사람들은 군주가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고 스스로 그를 위해 목숨을 던지기도 해. 하물며 군주보다 참된 것은 어떨까. 


샘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함께 진흙 속에 있어. 서로 숨을 내쉬고, 거품을 내뿜으면서 적셔주지. 항과 호수 속에서 서로를 잊고 있던 것만 못한 거야. 그러니 요임금을 숭상하고 걸임금을 비난하는 것은 양쪽을 다 잊고 도에 어울리는 것만 못한 거야. 




커다란 땅덩이는 형체를 주어 나를 살아가게 하지.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케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도록 해. 그러므로 자신의 태어남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도 좋다고 해야 하는 거야. 


배를 골짜기에 감추어 두고, 그물을 못에 감추어두고는 든든하다 하지. 그렇지만 한밤중에 힘센 자가 그것을 짊어지고 달아나도 잠자는 자는 알지 못해. 작은 것은 큰 데에 감추어 두는 것이 당연하지. 그래도 빠져나갈 구석이 있어. 천하를 천하에 숨겨두면 어떨까. 그러면 빠져나갈 구석이 없지. 이것이 만물의 커다란 본모습이야. 


사람의 모양을 가졌다는 것으로도 기뻐하잖아. 그렇지만 사람의 모양이란 것은 갖가지로 변해 끝이 없어. 그 즐거움을 다 헤아릴 수 없지 않겠어? 그러므로 성인은 사물이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데에 노닐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일찍 죽음도 오래 삶도 좋고, 태어남도 죽음도 좋다고 해. 사람들은 이것을 본받으려 하지. 그런데 하물며 만물을 얽어매고 있는 것, 모든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어떨까. 




도라는 것은 참되고 믿을 만 해. 그렇지만 움직임도 형체도 없지. 전해줄 수 있지만 받을 수는 없고 가질 수는 있어도 내보일 수는 없어. 스스로 바탕이 되고, 스스로 뿌리가 되지. 천지가 아직 있기 전에도 오래전부터 스스로 본디 존재하고 있었어. 귀신이나 하느님을 신묘하게 만들고. 하늘과 땅을 만들었지. 태극보다 먼저 있지만 높다고 하지 않고, 이 세상 밑에 있으면서도 깊다고 하지 않고,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지만 낡았다고 하지 않고, 까마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늙었다 하지 않지. 


시위씨는 도를 얻어 천지를 손에 들고 다녔어. 복희씨는 도를 얻어 만물을 낳는 기운을 부렸지. 유두(북극성)은 도를 얻어 영원히 어긋나지 않았고, 해와 달은 도를 얻어 늘 꺼지지 않았어. 감배는 도를 얻어 곤륜상에 들어갔고, 풍이는 도를 얻어 황하에 노닐었고, 견오는 도를 얻어 태산에 살았어. 황제는 도를 얻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고, 전욱은 도를 얻어 현궁에 살았어. 우강은 도를 얻어 북극에 서 있었고, 서왕모는 도를 얻어 소광산에 자리를 잡았어. 태어남도 죽음도 몰랐지. 팽조는 도를 얻어 위로는 유우(순임금) 때에 시작해, 아래로는 오패 때까지 살았어 부열은 도를 얻어 무정을 도와 천하에 이름을 떨쳤지. 동유성을 타고 기미성에 올라타 여러 별들과 어울렸다지. 




남백자규가 여우에게 물었어. "그대는 나이가 많은데 어째 얼굴은 아이와도 같은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나는 도를 들었지." 남백자규가 물었어. "도를 배울 수 있습니까?" "아! 어떻게 그러겠나. 그대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네. 복량의라는 이는 성인의 자질은 있었으나 성인의 도는 없었지. 나는 성인을 도를 가지고 있으나 성인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해. 내가 그를 가르칠까 했는데, 과연 성인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성인의 도를 가지고, 성인의 자질을 가진 자에게 일러주는 것은 쉬웠다오. 묵묵히 사흘을 가르쳤지. 그랬더니 천하를 잊을 수 있더군. 천하를 잊었으니 또 칠일을 가르치자 사물을 잊을 수 있더군. 또다시 구일을 가르치자 삶을 잊을 수 있더군. 삶을 잊자 환히 깨닫게 되었지. 환히 깨닫게 되자 홀로 있음을 깨우칠 수 있었지. 홀로 있음을 깨우치자 옛날과 지금을 따지지 않을 수 있었고. 옛날과 지금을 따지지 않자 죽음도 삶도 없는 데에 들어갔어.


삶을 버린 자는 죽지 않고, 삶고자 애쓰는 자는 살지 못하지. 모든 것을 보내고, 모든 것을 맞아들여.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세워지지. 이를 어지러이 얽힌 고요함이라 하지. 어지러이 얽힌 고요함이란 어지러이 얽힌 뒤에 구체화된다는 거야."


남백자규가 말했어. "그대는 대체 어떻게 도를 들었소?" "글자의 자식에게 들었지. 글자의 자식은 외워 익힘의 손자에게 들었고, 외워 익힘의 손자는 또렷이 봄에게 들었어. 또렷이 봄은 똑똑한 소리에게 들었고, 똑똑한 소리는 몸놀림에게 들었어. 몸놀림은 노랫말에게 들었고, 노랫말은 웅성거림에게 들었어. 웅성거림은 고요함에게 들었고, 고요함은 멍 때림에게 들었지."




자사, 자여, 자리, 자래 네 사람이 서로 이렇게 말했데. "누가 없음을 머리로, 태어남을 척추로, 죽음을 꽁무니로 삼을 수 있을까. (누가 없음, 태어남, 죽음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까.) 누가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것을 알까. 그를 벗으로 삼아야지." 네 사람은 서로 보며 싱긋 웃으며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었어. 이렇게 서로 벗이 되었지.


얼마 뒤 자여가 병에 걸려버렸네. 자사가 문병을 갔어. "위대한 조물자여! 너를 이렇게 쪼그라들게 만들었구나." 몸이 굽어 등이 툭 튀어나오고, 오장이 모두 위로 솟구쳤어. 턱이 배꼽에 닿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이 솟은 데다, 커다란 혹이 하늘로 쑥 튀어나왔어. 몸의 기운이 마구 뒤틀렸지만, 마음은 한가히 아무 일도 없었어. 비틀거리며 우물에 제 모습을 비춰보고 이렇게 말했지. "아! 조물자여! 나를 이렇게 쪼그라들게 만드는 구려."


자사가 말했어. "너는 그게 싫어?" "아니, 내가 어찌 싫겠어. 내 왼팔이 조금씩 변해서 닭이 된다고 해. 나는 그걸로 새벽을 알릴 거야. 내 오른팔이 조금씩 변해서 활이 된다고 해. 그러면 나는 그걸로 새를 잡아 구워먹여야지. 내 꽁무니가 조금씩 변해서 바퀴가 되고, 마음이 말이 된다고 해. 그러면 나는 그걸 타야지. 다른 수레가 필요 없겠지. 


때가 되어 태어났으니 순순히 죽어야지. 주어진 때를 편안히 여기고 순순히 따르면, 슬픔이니 즐거움이니 따위가 스며들지 않아. 이걸 옛사람들은 묶임에서 풀려남이라 했어. 그런데도 스스로 풀려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물에 묶여 있는 데가 있어서 그래. 한낱 사물이 하늘을 이기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내가 어찌 싫겠어."


얼마 뒤 자래가 병에 걸렸어. 숨을 헐떡이며 죽음을 앞두고 있었어. 아내와 자식이 곁에서 울고 있었지. 자리가 문명을 가서 말했어. "훠이! 저리 가시오. 죽음을 슬퍼하지 마오." 그는 문에 기대어 이렇게 말했어. "위대하도다! 조물자가 앞으로 너를 어떻게 할까? 너를 어디로 가게 할까? 너는 쥐의 간이 될까? 벌레의 다리가 될까?" 


자래가 말했어. "부모가 자식에게 말한다고 해. 어디로 가라 하든 말씀을 따라야지. 음양의 변화가 사람에게 하는 것은 부모보다 더하지. 저가 나의 죽음을 바라는데 내가 듣지 않으면 내가 망나니 짓을 한 것이지 저를 어떻게 탓할 수 있겠나. 커다란 땅덩이는 형체를 주어 나를 살아가게 하지.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안케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도록 해. 그러므로 자신의 태어남이 좋다고 하면 자신의 죽음도 좋다고 해야 하는 거야. 


훌륭한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벼린다고 해. 이때 쇠붙이가 팔딱 뛰어오르며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꼭 막야와 같은 명검이 되어야 해! 훌륭한 대장장이는 해로운 쇠붙이라 생각하겠지. 한번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사람이 되어야지 사람이 되어야지 한다고 해. 조물자도 해로운 사람이라 생각할 거야. 천지는 커다란 화로와 같고 조화는 커다란 대장장이와 같지. 어떻게 되든 괜찮지 않겠어? 문득 잠이 들었다가도 퍼뜩 깨어나는 거야.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 세 사람이 서로 벗이 되었어. "누가 함께 하지 않으면서 함께 하고, 서로 돕지 않으면서 서로 도울 수 있을까? 누가 하늘로 올라가 구름 속을 누비며, 끝없이 노닐 수 있을까? 서로 삶을 잊으며, 다함이 없을 수 있을까." 세 사람은 서로 보고 씽긋 웃었지.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없었어. 이에 서로 벗이 되었지. 


별일 없이 시간이 흘렀는데, 자상호가 죽었어.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고 하기에, 공자는 자공을 보내어 돕도록 시켰어. 흥얼거리기도 하고, 거문고를 타기도 하면서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아! 자상호여! 아! 자상호여! 그대는 이미 참된 곳으로 돌아갔는데 우리는 여전히 사람으로 남아 있구먼. 허!" 


자공이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물었어. "감히 여쭙건대 시신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예입니까?"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씽긋 웃었지. "이 친구가 어찌 예를 알까?" 자공이 돌아와 공자에게 말했지. "저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수양하는 것도 없고, 몸뚱이를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시신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면서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던데요. 저들을 형용할 말이 없습니다. 저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가 말했어. "저들은 세속 바깥을 노니는 사람이다. 나는 세속에서 노니는 사람이고. 안과 밖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건데, 내가 너를 시켜 조문하게 했구나. 내 잘못이다. 저들은 또 조물자와 어울리며, 천지의 한 기운에 노닌다. 저들은 삶을 쓸데없는 혹 덩이처럼 여기고, 죽음을 고름이 터지는 것처럼 시원하게 여긴다. 


이런 자들은 삶과 죽음, 그 이전과 그 이후에 대해 알겠나. 다른 사물을 빌리지만 한 몸에 의탁하자. 감정을 잊고 감각에 매이지 않아. 몇 번을 살고 죽더라도 그 시작과 끝을 알지 못해. 멍하니 지저분한 세상의 바깥에서 방황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여유있게 지내지. 저들이 쓸데없이 세속의 예를 따르며, 뭇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보이겠는가?"


자공이 말했어.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디에 마음을 두고 계십니까?" "나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음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 너희와 함께 하겠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물고기는 물에서 함께 다니고, 사람은 도에서 함께 다니지. 함께 물에 다니게 하려면, 못을 파고 먹이를 주면 되지. 함께 도에 다니려면 일에 매이지 않고 삶이 안정되어야 해.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 '물고기는 강호에서 서로를 잊고 사람들은 도술에서 서로를 잊는다'" "


"기인畸人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기인은 사람에게는 기이하지만 하늘에게는 번듯한 사람이야. 이런 말이 있어. "하늘의 소인은 사람들에게는 군자요. 사람의 군자는 하늘에게 소인이로다.'"




안회가 공자(중니仲尼)에게 물었어. "맹손재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하고 울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슬퍼하지도 않았어요. 상례를 치르면서도 마음을 아파하지 않았답니다. 이런데도 상례를 잘 치렀다고 노나라에 이름을 떨쳤습니다. 행실이 이런데도 허투루 명성을 얻는 일이 있는지요. 제 생각에 이상하기만 합니다."


공자가 말했어. "맹손재가 잘한 거야. 제대로 아는 자보다 더 낫지. 간단히 상례를 치르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는 간단히 치른 것이야. 맹손재는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모르지. 태어나기 이전도 모르고, 죽음 뒤도 몰라. 변화를 따를 뿐이야. 그렇게 알 수 없는 변화를 기대리는 거야. 그렇게 하고서 변화해버리면, 변화하지 않았을 때를 어떻게 알겠어. 변화하지 않으면 어떻게 변화한 이후를 알겠어. 나와 너는 꿈을 꾸면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맹손재)는 겉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상하는 일은 없었어. 마치 집을 옮기는 것과 같아서 죽음에 마음 쓰지 않았지. 맹손재는 깨우친 자이지. 사람들이 곡하면 했어. 이것이야말로 마땅한 행동이지. 사람들은 '나'라고 하는데, 스스로 '나'라고 하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너는 꿈속에서 새가 되어 하늘 높이 오르기도 하고, 꿈속에서 물고기가 되어 못 속으로 사라지기도 해. 그렇지만 지금 말하는 것도 깨어나 말하는 것인지, 꿈을 꾸며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 나에게 꼭 맞는 것을 찾는 건 웃어넘기는 것만 못해. 웃어넘기는 것은 변화만 못해. 변화를 편하게 여기고 순순히 변화에 따르면 텅 빈 하늘과 하나가 되는데 까지 이르게 될 거야". 




의이자가 허유를 만났어. 허유가 말했지. "요임금이 너에게 무얼 이야기하든?" 의이자가 답했어."요임금은 나에게 말하기를 너는 몸소 인의를 실천해야만 하고 시비를 명확하게 가려 말해야만 한다고 말했소." "너는 무얼하러 여기에 온 거야? 요임금이 이미 인의로 너에게 묵형을 가하고, 시비로 의형을 가했지. 네가 어떻게 훨훨 자유로이 변화 많은 길을 노닐 수 있겠어?" "그 변두리라도 노닐기를 바라오." "안돼. 눈먼 자와는 빼어난 미모를 함께 즐길 수 없고, 귀 어두운 자와는 알록달록 수놓은 광경을 함께 즐길 수 없어." "


"무장이 그 미모를 잊고, 거량이 그 무력을 잊고, 황제는 그 지혜를 잊었답니다. 모두 화로에서 벼려졌기 때문입죠. 그처럼 조물자가 묵형을 지워주고, 의형으로 잘린 코를 붙여주지 않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렇게 온전한 꼴로 선생을 따르게끔 하지 않을지요." "아! 그럴지도 모르겠네. 내 너에게 대략적인 것을 이야기해주지. 내 스승이여, 내 스승이여! 만물을 이루어 놓았으나 의롭다고 하지 않고, 만세토록 은덕을 내리나 어질다 하지 않는구나. 까마득한 옛날보다 오래되었어도 늙었다 하지 않고, 하늘로 덮고 땅으로 떠받치며 만물의 모양을 조각해놓았으나 빼어나다 하지 않네. 이것이 내가 노니는 곳이지."




안회가 공자에게 말했지. "제가 깨우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저는 인의를 잊었습니다." "괜찮기는 하나 아직 모자란 구석이 있다." 다른 날 다시 안회가 공자를 찾아갔지. "제가 깨우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저는 예악을 잊었습니다." "괜찮기는 하나 아직 모자란 구석이 있다."


다른 날 다시 안회가 공자를 찾아갔어. "제가 깨우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저는 좌망坐忘하였습니다." 공자가 깜짝 놀라 말했지. "좌망坐忘이라는 게 무엇이냐?" "몸뚱이를 버리고, 감각을 떨어내 버립니다. 몸과 지각에서 멀어져 도와 크게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좌망입니다." "도와 하나가 되면 좋아함도 없겠구나. 변화하니 일정함도 없겠구나. 참으로 빼어나구나. 나 역시 너의 뒤를 따르겠다."




자여와 자상은 친구였어. 장마로 비가 십여일이나 내렸지. 자여가 말했어. "자상이 고생하고 있겠구나. 밥을 가지고 가서 그에게 먹여야겠다." 자상 집에 이르니 노래하는 듯 우는 듯 소리가 들리더래. 거문고를 뜯으며 노래하길. "아버지일까? 어머니일까? 사람일까? 사람일까?" 노래를 감당치 못하고 서둘러 노래를 주어 삼키더래.


자여가 들어가 말했지. "그대가 노래하는 시가 어찌 그러한가?" "나를 이토록 어려운 처지에 이르게 한 것을 생각해보았는데 모르겠더군. 부모가 어찌 내 가난을 바라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줌이 없거늘 천지가 어찌 사사로이 내 가난을 바라겠는가? 이렇게 된 까닭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 없더군. 그런데도 이렇게 어려운 처지에 이르렀으니 운명 때문이겠지." 




* 매주 목요일 메일을 통해 장자 번역을 나눕니다. 메일링을 신청해주세요. https://zziraci.com/mailing


* 번역문은 원문과 함께 편집하여 차후 <장자씨 헛소리도 잘하시네(가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볼 예정입니다. 우화의 형식을 살려 대화체로 옮겼고, 딱딱한 직역보다는 가능한 의미가 통하도록 옮겼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사전구매 해주세요. https://zziraci.com/kuangrenzhua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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