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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28. 2022

역사를 읽는 힘

와파서당 책과 글 <사기>

사람이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사마천 -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까마득히 먼 옛날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입니다. 먼 옛날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역사를 기록한 인물이었어요. 그가 쓴 책의 이름은 <사기史記>입니다. 헌데 책 제목이 좀 신기합니다. 역사책인데 책 제목이 '역사(史) 기록(記)'이라네요. 쉽게 말하면 역사책의 제목이 '역사'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대관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본디 이 책의 이름은 달랐다고 해요. 사마천의 직위, 태사공이라는 이름을 따 <태사공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사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훗날 사람들이 이렇게 부른 것은 사마천의 <사기>야 말로 역사를 잘 기록한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은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어요.


사실 이 책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답니다. 책을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 일상에 지금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완벽完璧'이라는 말이 그래요. '완벽'이란 무슨 뜻인가요? 흠 없다, 부족하지 않다, 충분하다, 훌륭하다 등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헌데 한자를 보면 그런 뜻과는 좀 달라요. '완完'은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한편 '벽璧'은 옥돌을 이야기해요. 


'화씨'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산속에서 옥돌을 발견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이 옥돌을 임금에게 바쳤어요. 헌데 임금은 이 옥돌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임금을 속였다는 죄를 씌워서 말이지요. 화씨는 억울한 마음에 다음 임금에게 다시 그 옥돌을 바쳤습니다. 임금은 전문가를 불러 이 옥돌을 다듬도록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신묘한 빛을 내는 아름다운 옥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아무리 훌륭한 재주를 지녔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 옥을 화씨의 옥돌, '화씨벽'이라 불렀습니다.


시간이 흘러 화씨벽이 조나라 임금의 손에 들어왔어요. 옛사람들은 옥을 매우 귀한 보석이라 생각했답니다. 신묘한 힘이 숨겨져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당연히 임금은 매우 기뻐했고 주위 사람들에게 널리 자랑했습니다. 아뿔싸! 이웃 진나라 임금의 귀에 그 소식이 전해졌다고 해요. 진나라 왕은 사신을 보내 화씨벽을 요구합니다. 성 몇 개를 떼어 줄 테니 화씨벽과 바꾸자며.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그깟 옥이 귀하면 얼마나 귀할까. 성 몇 개를  받고 화씨벽을 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화씨벽을 받아 챙기고 약속대로 성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조나라 임금은 고민이었습니다. 진나라 왕에게 넘기자니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주지 않자니 이를 핑계로 진나라 왕이 전쟁을 벌일까 걱정이었어요. 당시 진나라는 매우 강력한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인상여라는 신하가 나섭니다. 그는 직접 화씨벽을 가지고 진나라 왕을 만나러 가겠다고 해요. 진나라 왕이 약속을 어기고 성을 주지 않는다면 화씨벽을 온전히 가지고 돌아오겠다며. 진나라 왕을 만나보니 소문대로 그는 매우 탐욕스런 인물이었답니다. 도무지 성을 줄 생각이 보이지 않았어요. 인상여는 꾀를 내어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냅니다.


이 이야기, 인상여가 화씨벽을 온전히 조나라로 가져온 이야기가 '완벽'이 되었습니다. 인상여의 이 이야기를 네 글자로 줄여 '완벽귀조完璧歸趙'라고 해요. '화씨벽(璧)을 온전히(完) 조나라(趙)로 가져왔다(歸)'는 뜻입니다. 이 네 글자를 줄여서 '완벽'이라는 말이 되었어요. 이 이야기는 <사기> 속에 <염파인상여열전>에 실려 있답니다. 


이렇게 옛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표현을 '고사성어故事成語'라고 해요. 보통 네 글자로 이루어져 있어 '사자성어四字成語'라고도 합니다. 이 밖에도 옛 이야기에서 만들어진 말은 꽤 많답니다. 예를 들어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을 들어보았는지요? 이 말은 매우 곤란한 상황을 뜻하는 말입니다. 헌데 이 말 역시 글자를 보면 그런 뜻이 보이지 않아요. '사면四面'은 네 방향, 그러니까 주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가楚歌'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이예요. '사면초가'를 뜻 그대로 풀이하면 주위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말이 만들어졌을까요? 


이번에는 장기판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장기판을 본 적이 있나요? 푸른색 말과 붉은색 말을 놓고 겨루는 일종의 보드 게임입니다. 말 위에 한자로 이름이 새겨져 있어 어려워 보이지만 체스와 비슷한 놀이예요. 중앙의 왕 역할을 하는 말을 잡으면 이깁니다. 그래서 왕 역할을 하는 장기말은 유달리 큽니다. 큼지막하게 한자로 '초楚'와 '한漢'이라 쓰여 있어요. 그러니까 장기는 먼 옛날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을 장기판으로 옮긴 놀이입니다.


이 싸움의 끝 이야기예요. 초나라 임금 항우가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당해버렸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어요. 항우는 싸움터에 나서면 늘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싸움에 나서면 한나라 군의 포위 따위를 뚫는 건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지요. 헌데 밤에 사방에서 익숙한 노래 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항우의 고향 초나라 사람의 노래였어요. 그날 항우는 크게 좌절합니다. 어떻게 된 걸까. 초나라 사람들이 이미 다 한나라 편이 된 것일까? 


그렇게 마음이 꺾인 항우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결국 한나라가 승리합니다. 한나라는 이후 오래도록 화려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한漢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이 한나라의 이름을 따서 한자漢字, 한나라의 문자라는 뜻의 말이 만들어졌어요. 만약 항우의 초나라가 이겼다면 초나라의 글자라는 뜻에서  초자楚字라고 했으려나요? 이렇게 말과 글에는 역사가 새겨져 있답니다. 


이 항우의 이야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이야기에서 '사면초가'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꽁꽁 포위된 항우처럼 어려운 상황을 뜻하는 말로 사용했답니다. 이 역시 사마천의 <사기> 속에 <항우본기>에 실려 있어요. 


이처럼 역사歷史는 그저 과거의 일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는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그리고 그가 쓴 역사를 읽으며 사람들은 다양하나 표현을 만들었습니다. 그 표현을 쓰는 이상 2,000년 후를 사는 우리가 비록 사마천의 <사기>를 읽지 않았다 해도, 그 책을 읽고 사랑한 사람들에게 빚지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많은 말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헌데 한번 질문해 볼 일입니다. 오늘날 만들어지는 말은 얼마나 오래갈까요? 사마천은 누구나 죽지만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이 있고, 깃털보다 가벼운 죽음이 있답니다. 말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말도 태어나고 죽습니다. 어떤 말은 천년을 넘게 살 것이고, 어떤 말은 깃털처럼 날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예요. 역사를 읽는 것은 천년을 넘게 살아남은 이야기들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꽤 멋진 일 아닌가요? 


(사실 사마천의 <사기> 속에는 너무나 재미난 이야기가 많답니다. 완벽귀조의 인상여 이야기, 사면초가의 항우 이야기도 많은 내용을 간략히 줄였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사기>를 직접 읽어봅시다. 사마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




와파서당 책과 글 2강 교안입니다. 


PDF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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