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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05. 2022

구우일모, 사마천의 <사기> 이야기

고사성어로 만나는 <사기>

판결대로 사형을 당했다면
아홉 마리 소에서 터럭 하나 빠지는 정도에 불과했을 겁니다.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하찮은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절개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지도 않을 테고,
어리석게도 큰 죄를 지어 죽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사마천의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흉노匈奴'라고 들어보았는지요? 북방 유목민족이었는데, 중국 왕조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말을 타고 나타나 식량을 빼앗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또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지 이들을 꺾기란 매우 힘들었습니다. 먼 옛날 진시황 시절부터 흉노는 큰 근심거리였어요. 결국 성벽을 쌓아 이들을 막아보려 했답니다. 이렇게 진시황 시절부터 쌓은 성벽이 길게 늘어져 끝도 없이 긴 성벽이 되었지요. 이를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라고 하나요? 


성벽으로 막으려 했지만 흉노는 성벽을 넘어 끊임없이 침략해 왔습니다. 차라리 이들의 본거지를 습격하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엔 큰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유목민족이다 보니 본거지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게다가 전쟁을 벌이려면 매우 긴 거리를 이동해야 했습니다. 이를 실제로 시행하는 것은 나라 안이 안정되고 크게 힘을 기른 뒤 가능한 일이었어요. 


때는 한무제 시기였어요. 한무제漢武帝는 이름처럼 대단히 강한 황제였어요. 강력한 군대를 이끌어 영토를 넓히는 데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반도에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것도 이때의 이야기. 한무제는 북방 흉노족을 상대할 마음까지 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수의 병사를 북쪽으로 보냅니다. 많은 병사 가운데 살아온 것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큰 성공을 거둡니다. 한동안 흉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요. 


이때 활약한 곽거병이라는 소년 장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오늘의 주인공은 흉노족 정벌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마천이라는 인물입니다. 헌데 왜 흉노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느냐구요? 그것은 흉노족 정벌에 얽힌 한 사건이 사마천에게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의 아버지는 '태사太史'라는 자리에 있었어요. 태사는 하늘을 보며 별의 운행을 관측하고 나라의 역사 기록을 관리하는 등의 일을 맡았습니다.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지요. 사마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마천은 어려서 글을 익히며 관리가 될 준비를 했어요.


사마천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용문龍門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답니다. 이곳은 강물이 거세게 흐르는 곳인데 사람들은 물고기가 강물을 거슬러 힘차게 올라가면 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용이 되는 문이라는 뜻에서 '용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금도 재능있는 인물이 적절한 자리를 얻어 이름을 떨치는 것을 '등용문登龍門', 그러니까 '용문에 오르다'라고 해요. 


이런 곳에서 태어나서 그럴까요? 사마천의 아버지는 사마천이 큰 사람이 되도록 여러 도움을 주었습니다. 특히 어느 정도 나이가 먹자 여러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도록 했어요. 특히 역사에 관련된 곳을 두루 방문하도록 했습니다. 까마득히 먼 옛날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예요.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된 길이었습니다. 실제로 사마천은 꽤 고생했다고 해요.


사마천의 아버지는 사마천을 훌륭한 역사가로 기르고 싶었습니다. 직접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식견을 넓혀야 훌륭한 역사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책 속의 글자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 곳에서 생생하게 겪은 경험은 역사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마천은 훌륭한 역사가로서 준비를 마쳤어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아버지가 남긴 유언도 훌륭한 역사가가  되라는 것이었어요.


헌데 그에게 큰 불행이 닥칩니다. 한무제가 흉노족 정벌에 한창 마음을 쏟고 있던 상황에서 이릉이라는 장수의 패전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릉이라는 장수가 흉노와의 싸움에 져서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이었어요. 조정의 여러 인물이 이릉을 비난했습니다. 헌데 사마천은 혼자 이릉을 변호했어요. 비록 이릉이 패배했으나 너무 많은 적을 상대하느라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이것이 그만 황제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어요. 네놈이 황제를 놀리는 것이냐며 버럭 화를 내었지요. 이렇게 옥에 갇힌 사마천은 사형을 선고받아요. 사마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화를 불러오다니요. 게다가 사마천 자신은 이릉을 잘 알지도 못했어요. 친한 친구를 변호하다 화를 입은 것이라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다행히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엄청난 돈의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 사마천의 집은 그리 큰 부자가 아니었어요. 결국 사마천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궁형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대관절 궁형이란 무엇일까? 고대의 형벌은 보통 칼로 사람의 신체를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궁형은 그 가운데서도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이었어요. 


그의 친구들 가운데는 그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 것을 구차하게 목숨을 건지느냐며. 궁형은 그만큼 치욕스러운 형벌이었어요. 그러나 사마천은 묻습니다. 그냥 죽었다면 나았을까? 그렇게 죽음을 맞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까. 사형을 당했다면 도리어 하찮은 존재로 이 세상에서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을까.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가 빠지는 것처럼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사라질 수는 없다고 사마천은 항변합니다. 


그렇게 치욕을 견뎌낸 사마천은 <사기>라는 책을 완성해냅니다. <사기>는 사마천 당시까지 역사를 담은 매우 훌륭한 역사책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충실히 담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까지 함께 실었어요. 이 책은 분량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약 50만 자가 넘는다고 해요. 50만 자라니 잘 가늠이 되지 않지요? 오늘날 우리말로 번역하면 수천 페이지가 됩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분량이지요. 이것을 그 먼 옛날 한 글자씩 붓으로 썼다니 대단한 일입니다.


단순히 분량만 많다면 이 책이 지금도 사랑받지 못했을 거예요. 사마천은 훌륭한 역사가였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이야기 꾼이었습니다. 그가 쓴 글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후대 사람들을 사로잡았어요. 그가 남긴 다양한 이야기를 후대 사람들은 간단히 네 글자로 줄이곤 했습니다. 많은 고사성어古事成語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나왔어요. 


구우일모, 보잘 것 없는 존재를 거부한 사마천은 <사기>라는 멋진 책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사마천 <사기>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고사성어를 배울 예정이예요. 치욕 속에 써 내려간 글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간단히 줄인 고사성어를 지금도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를 단 네 글자로 줄여 말하지만 그 속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는 셈이예요. 옛 사람들이 건네준 압축 파일이라고 할까요? 앞으로 하나씩 풀어가봅시다. 



* 와파서당 :: 고사성어로 만나는 <사기> 1강 교안입니다. 

https://zziraci.com/wifi-seodang/simaqian


PDF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zziraci.com/wifi-seodang/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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