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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11. 2022

천 년의 꿈, 군자의 길

와파서당 책과 글 <사서>

학문을 한다면 마땅히 <논어>와 <맹자>가 우선이야. 
<논어>와 <맹자>를 익히면 육경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훤하지.
<근사록 : 치지>

여러분은 몇 권의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나요? 놀랍게도 아주 먼 옛날 제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는 교과서가 딱 세 권이었습니다.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커다란 책가방에 단지 책 세 권을 넣고 필통을 넣으면 얼마나 시끄럽게 달그락거리던지요. 그러던 것이 학년이 올라가자 갑자기 교과서 수가 늘었습니다. 


교과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과거 선비들의 교과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교육부가 있고, 나라에서 교육과정을 정합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형식은 아니었어요. 국민 모두가 학교를 가야 하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은 있었어요. 과거 시험을 보려면 모두 공부해야 하는 책. 교과서나 다름없겠지요.


간단히 네 권의 책이 있습니다. 이 네 권의 책을 한데 묶어 <사서四書>라고 해요. '사서'란 말 그대로 '네 권[四]의 책[書]'이라는 뜻입니다.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 이렇게 네 권입니다. 이 네 권은 본래 각기 따로 떨어져있었어요. 그러던 것이 주희朱熹라는 사람이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함께 엮이게 되었어요.


주희는 중국 남송南宋 시기 인물입니다. 우리 역사로 치면 고려시대 인물이예요. 송나라는 중국 역사에서도 꽤 화려한 나라였습니다. 다양한 즐길거리가 발달했고, 자유분방한 분위기여서 사람들이 밤새도록 놀고 그랬다고 해요. 불야성不夜城, 밤을 잊은 도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어요. 그러나 북방의 강한 나라에 밀려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수도가 북쪽인 시대를 북송, 수도가 남쪽인 시대를 남송이라 해요. 


주희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남쪽으로 밀려나 위태로운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선비들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주희는 옛글로 눈을 돌립니다. 무려 천 년도 넘은 옛글에 길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예요. 그렇게 만난 것이 <논어>, <맹자>, <대학>, <중용>입니다. 


<논어>는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예요. 공자는 이 책에서 배움에 대한 이야기를 여럿 남겼답니다. <맹자>는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 맹자가 제자와 당시의 임금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담은 책이예요. 맹자는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던 선비였어요. <대학>은 말 그대로 '큰 배움'에 대한 책입니다. 대인大人, 큰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중용>은 마음과 우주의 균형에 대한 책입니다. 


주희는 이 네 권의 책을 읽어야 바른 선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미 천 년도 넘은 옛날 책을 읽기란 쉽지 않았어요. 읽어도 도통 무슨 이야기인지 알쏭달쏭 모호하기도 하고, 옛글이라 당시에 사용하지 않는 글자나 표현도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주희는 각 책마다 해설을 붙입니다. 각 문장마다 세세하게 풀이를 달아 넣었어요.


<사서>에 주목한 것은 주희 당시에 선비들이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해요. 먼 옛날 한나라 때에는 다섯권의 경전을 공부했어요. 이를 오경五經이라 합니다. 그러던 것이 육경六經, 구경九經 나중에는 십삼경十三經으로 늘어나요. 공부해야 할 책이 너무 많으니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주희는 그렇게 너무 많은 책을 읽을 게 아니라 딱 네 권만 깊이 공부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주희가 처음 <사서>를 내놓았을 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주희가 전통을 망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어요. 오히려 배척당합니다. 그러나 점점 <사서>를 읽는 선비들이 늘어났어요. 주희의 글을 읽어보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던 까닭입니다. 결국 몇 백년 뒤 나라에서 <사서>를 과거시험의 기준으로 삼아요. 과거 시험을 보려면 이제 누구나 <사서>를 배워야 했습니다.


중국의 이웃나라 우리에게도 주희의 <사서>가 전해집니다. 우리나라의 선비들도 주희의 <사서>를 즐겨 읽었어요. 그중에는 주희의 뜻에 따라 선비로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어요. 고려 말에는 외적의 침입 등 나라가 매우 어지러운 상황이었는데, 선비들이 나서 나라를 새롭게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고려말 영웅으로 등장한 한 인물을 왕으로 세우고 새로운 나라를 만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이 그렇게 탄생합니다. 조선을 '선비의 나라'라고도 하는데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선비들이 나서서 만들고 이끈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희의 <사서>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탄생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연히 조선의 선비들도 이후 주희의 <사서>를 열심히 공부했어요. 달달 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우리가 아는 모든 조선의 선비들은 <사서>를 공부했어요. 빼어난 선비들은 <사서>에 자신의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나라를 이끌어가는 선비를 <사서>에서는 군자君子라고 해요. 큰 사람이라는 뜻에서 대인大人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먼 옛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어요. 글을 읽고 스스로 바른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며 나아가 세상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인물이 되라고. 주희는 <사서>를 연구하며 그런 군자의 정신을 다시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세운 선비들은 군자의 책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며 나라를 세웠어요. 우리가 잘 아는 과거시험은 그런 군자를 선발하는 시험이었답니다.


더 이상 나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사서>를 읽을 일도 없어요.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사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옛날 글이 좋아 읽는 경우도 있을 테고, 역사를 공부하거나 철학을 공부하기 때문에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군자의 길을 찾아보며 읽으면 어떨까요? 주희는 지금으로부터 약 8~900년, 거의 천 년 전 사람입니다. 주희가 천 년도 넘은 옛날, 먼 과거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은 것처럼 오늘 우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와파서당 책과 글 5강 교안입니다. 

https://zziraci.com/shuwen


PDF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zziraci.com/wifi-seodang/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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