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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20. 2022

<대학>, 배움에 들어가는 문

올라서당 고전명문선 1강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대학은 공자가 남긴 글로, 처음 학문을 하는 자들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 옛 사람이 학문을 하는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책이 있기 때문이니, <논어>나 <맹자>도 이 다음이다. 
배우는 자들은 반드시 이 글을 따라 배워야 한다.
그러면 크게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子程子曰
大學孔氏之遺書 而初學入德之門也
於今可見古人爲學次第者
獨賴此篇之存 而論孟次之
學者必由是而學焉 則庶乎其不差矣


"수평비행부터 시작하자"


대학 입시 면접 때 받은 질문.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갈매기의 꿈>이라 답했다. 지금은 대부분의 내용을 잊었지만 저 표현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수평비행이 대체 무엇인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라는 점. 그래,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옛 글을 읽을 때 무엇을 처음으로 읽는 게 좋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옛사람이 만들어놓은 체계를 따르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그래서 주희[朱熹 1130-1200]의 말을 따라 <대학大學>에서 시작한다. 주희는 정자程子[程頤, 1033~1107]의 주장을 따라 <대학大學>을 '처음 학문을 하는 자들이 덕에 들어가는 문[初學入德之門也]'이라 말한다. 여기서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대학>은 '초학初學', 그러니까 처음 학문을 하는 자들을 위한 책이라는 점. 그리고 그때의 학문이란 ‘입덕入德’, 덕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는 점이다. 


'덕德'이 무엇인지 접어두더라도 말이 재미있다. 오늘날 '입덕'이란 덕후질에 빠지는 것을 뜻하는 말 아닌가? 덕후, 곧 무엇에 푹 빠진다 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시대가 되었다. '덕후'란 일본어 '오타쿠'를 줄인 말인데, 본디 오타쿠란 하위문화에 빠진 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어느 분야든 푹 빠진 사람이면 '덕후'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만화, 아니메, 미소녀 따위에만 덕후가 있는 건 아니란 말씀. 밀덕(밀리터리 덕후), 역덕(역사 덕후)가 있고 철덕(철도? 아니, 철학 덕후)이 있으니 한문 덕후가 있어 안 될 것 없지 않나? 하여, 세 번째 뜻으로 삼아도 되겠다. '입덕지문入德之門', <대학>으로 입덕의 문을 열자.


주희는 12세기, 중국 남송시대의 인물이다. 당시 송나라는 북쪽에서 발흥한 금나라에게 수도 개봉을 빼앗기고 남쪽 임안으로 수도를 옮긴 상황이었다. 옛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끓고 있던 그 시대, 주희는 옛 글로 눈을 돌린다. 그가 주목한 것은 유가의 시조, 공자[孔子 BCE 479~551]의 글이었다. 그렇게 먼 옛날로 돌아간 것은 한나라나 당나라 시대를 암흑의 시대로 보았던 까닭이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과거를 통째로 부정해야 했다. 다시 공자로! 서구의 종교 개혁자들이 성서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했다면 주희는 다시 공자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때 그가 돌아가고자 한 공자는 기원전 5세기의 공자일 수 없다. 춘추전국시대의 공자가 어떤 모습이었든 간에, 그로부터 천 년도 더 지난 주희 시대 공자는 성인聖人의 초상肖像이 되어 있었다. 성인聖人,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공자는 모든 이의 모범이 되었다. 이를 따라 성인이 되는 것. 이것이 주희가 생각한 학문[學]의 요체였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덕德'이란 성인이 되는 길 그 자체를 말한다. 결국 ‘초학初學’, 학문을 시작함이란 다르게 말해 입덕入德, 성인의 길에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주희는 <대학>이 시작이라 보았다. <논어>나 <맹자>도 그 다음이다.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순으로 읽어야 한다. <대학>을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학문의 순서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주희는 <대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학문의 순서를 또렷하게 밝혀두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가 그것이다. 사실 이 네 가지 이전의 단계도 있다.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이 여덟가지를 팔조목八條目이라 한다. 


팔조목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른 지면에서 다루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순서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하긴 시작이 있어야 끝이 있다. 이렇게 <대학>은 입구에서 전체 학문의 대략을 보여주는 책이다. 일종의 로드맵이라고 할까? 격물, 치지 ... 어쩌구 저쩌구 하더라도 결국 최종 목표는 '평천하平天下'란다. 천하를 평안케, 그러니까 온누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대학>, 나아가 학문의 최종 목표란다. 뭔가 멋있는 것 같으면서도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그러나 꿈이 커야 그 절반이라도 되지않는가? 德力充滿 世界征服!!


학문에 순서가 뭐 중요하다며 딴죽을 걸었던 이들도 있다는 점을 짚어두자.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으며 순서도 과정도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배움이란 축적이 아니며, 도약이라는 관점. 이들은 단박에 깨닫는 것을 주장했다. 찰나의 경험이 인간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믿음. 하여 원효대사 해골물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튼 <대학>은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나아가자 말한다. 그 순서를 철저히 따라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나름 차근차근 좇아가 보자. 실제로 <대학> 본문은 한문 공부에 적잖이 도움을 준다. 차근차근 꾹꾹 씹어먹어 볼만한 요소들이 여럿 있는 까닭이다.




* 올라서당 - 고전명문선 1강 교안입니다.

https://zziraci.com/onl-seodang/ 


* 교안에는 한자 쓰기 및 문법 풀이가 함께 있습니다. 교안이 필요하신 분은 댓글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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