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다 보니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천자문>이나 <사자소학>은 가르치지 않나요?" 아이들에게 <논어>, <맹자>, <사기> 따위를 가르치니 어렵지 않을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예로부터 <천자문>과 <사자소학>으로 한자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렇겠지요. 아마도 여기에는 <마법 천자문> 류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가르치는 데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문을 배우기에 좋은 책이 아닐뿐더러 나아가 해로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자문>은 네 글자씩 한 구절을 이루어 총 천 글자로 엮은 책입니다. 시작하는 부분은 누구나 알고 있죠. 한자를 모르는 아이들도 '하늘 천 따지' 따위는 알고 있습니다. 첫 구절은 좋습니다.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홍황宇宙洪荒, 우주는 넓고 크도다. 그러나 이어지는 문장부터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월영측日月盈昃, 해와 달이 차고 기운다는 이 말은 주역적 사고관을 설명하는데 종종 이야기되는 표현입니다. 과연 이 말을 배워야 할까? 전달하기 어려울뿐더러 쉬이 쓰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이어지는 문장에 오늘날 쓰이지 않는 글자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자인데, 쓰이지 않는 글자를 수고롭게 배울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익히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늘 천, 땅 지'하는 식으로 한자를 외우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학습 방식입니다. 명사로서 글자를 외는 데야 쓸모가 있겠지만 의미를 생각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인 학습에 그치고 맙니다. 한자를 낱글자로만 보고 글의 맥락과 쓰임을 생각하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낡은 방식이기도 합니다. '아우 제'라는 글자는 아는데, '아우'라는 말을 쓰지 않으니 글자의 음과 뜻을 외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자소학> 역시 네 글자로 한 구절을 엮은 책입니다. '소학'이라는 제목처럼 어린 학생을 위한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헌데 소학이라는 것이 본디 이래라저래라 하는 식으로 훈계하는 내용이 많아 글 전체의 내용이 크게 보아 잔소리뿐입니다. 예를 들어 구물잡담口勿雜談,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지 말며 수물잡희手勿雜戱, 장난치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로 가득합니다. 과거 집안에서 들었던 잔소리들이 대관절 어디서 나온 것인가 했는데, 바로 <사자소학>에서 나온 게 많더군요.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잔소리를 배운다는 것만큼 끔찍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음식수염飮食雖厭, 음식이 비록 싫더라도 여지필식與之必食, 주면 반드시 먹어라. 저도 아이에게 밥상을 차리면서 하는 잔소리입니다. 간단히 말해 '주는 대로 먹어라.'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글자를 가르치며 훈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효孝라는 낡은 윤리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입니다. '부생아신父生我身, 아버지가 나를 낳으시고 모국오신母鞠吾身 어머니가 나를 기르셨다'로 시작합니다. '국鞠'이라는 잘 쓰이지 않는 한자 이야기는 접어 둡시다. 아버지로 시작하는 것은 가부장적 윤리를 전하고 싶은 까닭이겠지요. 그래서 조금 고친 사자소학은 '부모생아父母生我, 부모께서 나를 낳으셨다'로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을 죄다 고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부모에 대한 끝없는 순종과 절대적 복종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편향된 윤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효'라는 낡은 굴레에 아이들을 얽매어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족이라는 평등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오래전에 폐기되어야 할 책이 아닐까요. 아니면 적어도 그냥 박물관이나 도서관에 학자들을 위해 모셔둘 뿐인 책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문 공부와 인성 교육을 연결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인성이라는 것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는 낡은 규범을 가리키는데 그칩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당당함, 제 목소리를 내는 자신감, 자신의 취향과 특색을 나타내는 개성 따위는 인성의 범주에 들어오지 못하지요. 인성이라는 것이 글을 읽어 기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아닌가요. 결국 책으로 인성을 기르겠다는 것은 게으른 부모와 무책임한 교사가 내놓는 뻔뻔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한문이라는 도구를 통해 고전의 넓은 바다를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옛사람의 삶의 모습을 엿보고 수 천 수 백 년간 인간들이 경험한 우당탕 어지러운 세상사를 보여주어야지요. 그것을 통해 조금은 다른 삶의 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말과 생각에 새겨진 옛사람의 흔적을 보다 잘 이해할 수도 있지요. 말과 생각엔 역사가 깃들여 있는 까닭입니다. 문해력이란 바로 과거와 오늘을 둘러보고, 말과 생각을 되짚어보는 데서 기르는 능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