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의 <동심설>
"무림에서는 노인과 아이를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이 있는데 코쟁이들은 그런 거 안배우냐?ㅋㅋㅋㅋ"
<백인 남자가 동양인 할머니 폭행.JPG>의 댓글 (에펨코리아)
이탁오의 <동심설>은 꽤 유명한 문장이다. 이탁오를 대표하는 글 가운데 하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탁오가 말하는 동심童心을 진심眞心으로 이해하건 본심本心으로 이해하건,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순수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간 본성本性에 대한 탐구 가운데 하나의 단편에 불과하다. 이탁오는 이와 대비하여 견문見聞, 도리道理(아마도 오늘날 표현으로는 규범으로 바꾸어도 될 듯) 등이 동심을 망치는 것으로 본다.
내면에 대한 강조, 외재적 학습 특히 서적과 문자에 대한 비판 등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탁오의 동심설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이탁오의 <분서>가 영 시큰둥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글들과 비교할 때 과연 치밀하고 독특한 주장을 담았는가, 새로운 것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별로 답할 것을 찾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를 읽어내는 상황이 바뀐 까닭이다. 과거의 불온서적이 현재의 독자에게 냉랭하게 느껴지듯, 그의 <분서> 역시 불타오르기엔 영 부족해 보인다. 발화점이 지나치게 높아진 까닭일까? 불쏘시개로 쓰는 것이 바뀐 까닭일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의 글에게서 불온성을 읽어내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쓸쓸함을 읽고 있다. 자기 구원에 매달려 길을 찾는 외로운 지식인의 표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궁금한 것은 왜 투신하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유가 지식인에서 벗어나 구도자로서 온전히 승려가 되지 못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니, 도리어 유가에도 자기 구원의 방식이 있다. 무엇이 못마땅했거나, 어떤 점이 부족했거나.
마루야마 마사오 - 시마다 겐지 - 미조구치 유조 등이 이탁오에 주목한 이유 다른 데서 이야기했으니 이를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을 테다. 한국의 학자들이 이탁오에 주목한 이유를 찾아보려면 또 다른 꼼꼼한 추적이 필요할 테다. 여기서는 그의 동심설이 주는 반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나는 그의 동심설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내용보다 '동심'을 제목으로 앞에 내걸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즉, '동심' 자체가 독자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때의 동심이란 이탁오가 이야기하는 본연성보다는 순수함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헤아려보면 동양철학, 나아가 동양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노쇠해있다. 동양의 이미지는 여전히 순수함, 순진함, 때 묻지 않음 등등에 그쳐 있다. 무릇 웰빙 자연을 이야기하려면 동양을 찾아야 한다. 문명에 때 묻지 않은 깨끗한 영혼은 동방에서 찾을 수 있을 테다. 한편 동양에 덧씌워진 노인의 이미지는 어떤가? 노쇠했으나 어떤 지혜를 품고 있는 현인의 초상. <노자>가 여전히 사랑받는 것은 순수한 현인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동양의 철학은 너무 과거에 있거나 너무 미래에 있다. 현재의 철학으로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순수한 그러나 무력한 철학이거나, 지혜로운 그러나 뻔한 철학이거나. 현재의 철학 다르게 말하면 청년의 철학이나 혹은 중년의 철학으로는 활용할 수 없는 것일까. 이탁오의 글을 청년의 철학, 현재의 문제를 드러내고 바꾸는 철학으로 활용할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중년의 철학, 그작그작 살아가는 일상의 분투를 위한 철학으로 활용할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탁오의 글은 이미 낡았거나 여전히 순진하다.
이렇게 투덜거리며 선현의 글을 읽는 것은 제 삶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일 테다. 동양 고전 전공자로서 장점은 꽤 다양한 연령대의 대중을 만난다는 점이다. 이번 주, 초등학생들에게 <삼국지>와 <사기> 등을 이야기했다. 한편 70대 노인복지센터에서 <논어>, <맹자> 따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의 청중은 너무 어리거나 너무 노쇠하다.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데도 동심설 따위는 잘 모르겠다. 그때의 동심과 오늘날의 동심이 다를 리는 없을 테고. 그러니 조금 솔직해져 보는 것이다. 투덜투덜. 이 아무 쓸데가 없는 일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