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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Sep 05. 2022

지록위마, 탐욕스런 환관 조고 이야기

와파서당 초한전쟁

持鹿獻於二世 曰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右左右或默 或言馬以阿順趙高


(조고가) 사슴을 이세 황제에게 바치며 말했다. "말을 드립니다."
이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께서 실수한 게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 하다니?"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침묵하고, 어떤 사람들은 조고에게 아부하기 위해 말이라 말하였다. 
<사기 : 진시황본기>


여러분은 사슴과 말을 구분할 수 있나요? 하긴 실제로 사슴과 말을 본 적이 없으니 구별하기 힘들 것입니다. 둘 모두 초식동물인 데다 긴 네 다리로 빠르게 달리니 구분하기 힘듭니다. 사슴과 말을 구분하려면 전문 사육사를 모셔와야 할 것입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엉터리 소리라구요? 실제로 사슴과 말을 구분하지 못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진시황의 아들로 역사상 두 번째 황제가 된 이세황제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어째서 사슴과 말을 분간하지도 못했던 것일까. 궁궐 속에서 자라 사슴과 말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럴 리가요. 장수들은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갔고, 황제는 말이 끄는 수레를 탔습니다. 하긴 참 웃길 거예요. 뿔이 길게 난 사슴을 탄 장수나, 사슴이 끄는 수레를 탄 황제라니. 이 이야기를 위해서는 진시황의 죽음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진시황은 수도를 비우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일이 않았습니다. 천하를 통일했으나 아직 안정적으로 다스리는 상황은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직접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고 황제의 권력을 백성들에게 내보였습니다. 그는 늘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어요.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까닭입니다.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황제는 자신의 아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신하들은 여러 아들을 왕으로 삼아 곳곳을 맡아 다스리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혼자 그 넓은 땅을 다스리는 것이 힘들다면, 아들에게 일부를 떼어서 맡도록 해도 될 일입니다. 훗날 시황제가 죽으면 아들 가운데 황제의 자리를 잇지 않겠어요? 앞으로 황제가 되기에 앞서 왕이 되어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황제는 누구와도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황제가 될 태자太子를 정하지도 않았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시황제는 죽음을 피할 방법을 찾고자 애썼다고 해요.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신비한 약초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시황제는 이들의 말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고 해요. 멀리 사람을 보내 신비한 약초를 찾도록 명령하기도 했답니다. 허나 세상에 그런 방법이 있을리가요. 불로초不老草, 늙지 않게 하는 약초 따위는 사기꾼들의 불과했어요. 그러나 시황제는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시황제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힘들고 지쳤지만 신비한 약초만 찾으면 생기 넘치는 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 건강을 해치는 것도 몰랐어요. 수도를 떠나 돌아다니던 중, 시황제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됩니다. 죽음이 코앞에 이르러서야 시황제는 후계자를 둘 생각을 해요. 시황제는 맏아들 부소에게 나라를 맡기고자 합니다.


시황제의 죽음은 비밀로 부쳐졌습니다. 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새어나가면 자칫 크게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걱정한 까닭입니다. 황제의 죽음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 두 사람만 알 뿐이었어요. 이때 환관 조고가 꾀를 냅니다. 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부치고 막내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우기로 하자고 한 것입니다. 맏아들 부소가 황제가 되면 이사의 권력이 줄어들 염려가 있었거든요.


결국 이사와 조고는 황제의 유언을 고쳐 호해를 후계자로 내세웁니다. 부소에게는 자결을 명령합니다. 그렇게 이세황제는 막내아들 호해가 되었습니다. 조고가 호해를 내세운 것은 무엇보다 자신과 친했기 때문이에요. 호해가 황제라면 자신의 뜻에 따라 천하를 주무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어리석은 황제는 조고의 말이라면 뭐든 믿었습니다. 황제가 조고를 아끼는 모습을 보고는 신하들도 조고를 함부로 하지 못했어요. 결국 조고는 이사마저 모함하여 죽여버립니다. 조고 입장에서는 이사가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어요. 황제의 유언을 고쳤다는 은밀한 비밀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이사마저 죽여버리자 조고는 거리낄 것이 없었습니다. 황제는 허수아비였고, 신하들은 모두 자신의 눈치를 보는 상황. 조고는 커다란 꿈을 꿉니다. 스스로 황제가 되는 것은 어떨까?


혹시 모르니 시험해보기로 합니다.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 한 것입니다. 어리석은 황제였지만 사슴과 말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도 어리둥절할 수밖에요.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조고의 말에 맞장구를 치니 말입니다. 결국 황제는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환관 조고가 이세황제를 속인 이 사건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가 나왔어요. 풀이하면 '사슴을 두고 말이라 한다'는 뜻인데, 윗사람을 속여가며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환관 조고처럼 본래를 권력을 손에 쥐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데도 윗사람의 권력을 빌어 나라를 주무르는 사람을 꼬집는 말이 되었어요. 한편 그 아래에서 제대로 상황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임금을 비웃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어찌 먼 옛날 이세황제 시대에만 있었겠어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종종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탐욕스런 신하와 어리석은 임금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는 하나, 나라가 망하는 수밖에. 




* 와파서당 : 고사성어로 읽는 ‘초한전쟁' 교안입니다. 전체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zziracilab/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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