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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Sep 12. 2022

왕후장상녕유종호, 진승의 반란 이야기

와파서당 초한전쟁

今亡亦死舉大計亦死
等死 死國可乎
且壯士不死即已 死即舉大名耳
王侯將相寧有種乎


지금 도망가도 죽고, 큰 일을 꾸며 반란을 일으켜도 죽는다. 
똑같이 죽는다면, 나라를 세우다 죽어도 괜찮지 않은가?
(…) 또 장사라면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다면 크게 명성을 떨쳐야만 한다. 
왕이나 제후, 장군이나 재상이 어찌 타고난 것이더냐?
<사기 : 진섭세가>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 상황에 따라, 집안의 환경에 따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슬픈 말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경제적 배경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니까요. 능력 있는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통사회는 우리가 보기에 대단히 불공평한 사회였어요. 타고난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임금의 자식이기 때문이었죠.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바로 진승이라는 인물이 외친 말이 유명합니다. '왕후장상녕유종호王侯將相寧有種乎'!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왕후장상, 즉 왕이나 제후, 장군, 재상에 어찌 씨[種]가 있겠느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마치 씨앗이 그 열매를 맺는 것처럼 왕후장상의 신분도 그런 것이냐는 물음입니다. 진승의 말속에는 자신도 왕후장상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자 그의 막내아들 호해가 이세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환관 조고는 호가호위狐假虎威, 마치 호랑이를 등에 업고 위세를 떨치는 여우 마냥 권력을 마구 휘둘렀습니다. 이세황제는 아버지 진시황을 위한 커다란 무덤을 짓고, 또 자신을 위한 커다란 궁궐을 지었어요. 막강한 권력에 걸맞은 커다란 무덤과 커다란 궁궐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까닭입니다. 이세황제의 궁궐 이름은 아방궁阿房宮이었어요. 매우 크고 화려했다는 이 궁궐은 이후 전쟁 중에 불타버립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후대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집이나 궁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아방궁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했답니다. 


지금이야 건설사기 집을 짓고 도로를 놓지만 전통 사회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나라에서 궁궐을 짓고 성을 쌓는 일이 있으면 백성들을 동원했어요. 백성의 노동력을 사용하여 그렇게 큰 무덤을 만들고, 화려한 궁궐을 지었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의 수고는 더할 수밖에요. 게다가 진나라의 매우 엄했습니다. 만약 꾀를 내어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은 죽이기까지 했어요.


진승은 평범한 일반 백성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남의 밭을 가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는 잠깐 쉬면서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만약 성공해서 부귀해지면 서로 잊지 말기로 하세.' 그러나 주위 사람들을 코웃음을 치며 이렇게 받아칠 뿐이었어요. '너나 나나 모두 머슴 노릇하고 있는데 부귀라니 얼토당토 않은 소리 하고 있구먼.' 이때 진승이 한 말이 꽤 유명합니다. '뱁새가 어찌 황새의 뜻을 알까!' 스스로를 황새에 빗대어 큰 뜻을 품고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따져보면 진승을 비웃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어요. 흙수저보다 더 못한 상황에서, 남의 밭일을 하는 주제에 부귀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허튼소리처럼 들렸을까요. 그렇지 않아도 일하느라 힘든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으니 더욱 짜증이 날 수밖에요. 그러나 진승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남들보다 더 멀리 보고 있었어요. 언젠가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바람이 불 때 황새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이세황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커다란 공사를 벌이며 백성들을 동원할 때 진승도 뽑혔습니다. 수백 명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만 큰 비가 내려 길이 막혀버린 게 아니겠어요. 당시 진나라 법에서는 도착할 기한을 어기면 모두 목을 베었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때 진승이 하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지금 도망가도 죽고, 큰 일을 꾸며 반란을 일으켜도 죽는다. 똑같이 죽는다면, 나라를 세우다 죽어도 괜찮지 않은가?”


진승은 백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기로 합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백성을 모아놓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장사라면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죽는다면 크게 명성을 떨쳐야만 한다. 왕이나 제후, 장군이나 재상이 어찌 타고난 것이더냐?” 어차피 죽게 될 목숨, 왕후장상의 꿈을 좇아 죽는 게 어떠냐는 말입니다. '왕후장상녕유종호’라는 유명한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어요. 


그렇게 진승은 반란을 일으킵니다. 처음에는 수백 명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이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나중에는 수 만 명이 되고 나중에는 나라를 세우기에 이릅니다. 그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 장초張楚, 결국 진승은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진나라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천하의 지배자는 오직 황제 한 사람인데 스스로 왕이 된다니요. 진나라 군대가 그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진승을 따르는 백성이 워낙 많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진승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일어납니다. 그 가운데는 훗날 초패왕이 되는 항우, 한고조가 되는 유방도 있었어요.


안타깝게도 진승의 나라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황새와 같은 꿈에 비해 그가 가진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훗날 끝없이 반복되었어요. 언제든 진승과 같은 불만을 가진 이들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은 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왕후장상녕유종호!' 왕이나 제후, 장군이나 재상이 어찌 타고난 것이더냐?




* 와파서당 : 고사성어로 읽는 ‘초한전쟁' 교안입니다. 전체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zziracilab/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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