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와파서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Sep 29. 2022

이야기를 품은 산, 태산 이야기

와파서당 역사여행

태산이놉다하ᆞ되하ᆞ날아래뫼히로다
오르고ᄯ고오르면못오를理업건마나ᆞ간
사라ᆞ감이제아니오르고뫼흘놉다하나ᆞ니
: 양사언 (1517~1584)


까마득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지역을 구분했을까요? 아마도 별 방법이 없었을 거예요. 해가 뜨는 쪽, 해가 지는 쪽, 바다 가까운 곳, 산 가까운 곳 등등. 그러던 것이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이야기가 쌓이고 땅에도 이름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땅의 이름, 이것을 지명地名이라 해요. 여러분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나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이름은 해방촌解放村입니다. 좀 신기하지 않나요? 동네 이름에 '해방'이 붙는 것도 이상한데, 서울 한복판에 '촌'이라는 이름이 붙다니.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방 이후 사람들이 모여들며 살면서 만들어진 동네라고 해요. 그 이전에는 그저 산이었구요. 그렇게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마을에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수십 년째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옛스런 이름과 다르게 여러 맛집과 예쁜 카페로 유명한 곳입니다.


우리는 역사 이야기가 담긴 여러 곳을 둘러볼 예정이에요. 땅의 이름에 새겨진 역사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풍성하게 한문 표현을 익혀봅시다. 그리고 언제 기회가 된다면 직접 그 이야기가 담긴 곳에 가보아도 좋아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먼 곳은 아니니까요. 그 첫 시작으로 '태산泰山'을 소개합니다.


혹시 '걱정이 태산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걱정이 너무 많아 감당하기 힘들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태산'은 매우 크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기도 해요. 너무너무 숙제가 많다면? '숙제가 태산이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시인 가운데 양사언은 이 태산을 빌어 시를 짓기도 했어요. 바로 맨 앞에 소개한 시입니다. 


시에 쓰인 글자가 조금 낯설지요? 띄어쓰기도 되어있지 않고. 옛글의 모양이라 그래요. 오늘날 표현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산일 뿐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산만 높다 하나니" 양사언은 너무 크고 이루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모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합니다. 마치 아무리 높은 산도 하늘 아래 있는 것처럼. 그런데도 그냥 구경만 하면서 높다고 투정하는 사람이 있다네요. 


훌륭한 시입니다. 그러나 양사언은 태산에 가보지 못했어요. 조선시대에는 오늘날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직접 태산에 가 보았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궁금하기는 해요. 실제로 태산은 그렇게 까마득히 높은 산이 아닌 까닭입니다. 태산은 중국 산둥성에 있는 산으로 높이가 약 1,500미터 정도랍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높은 산에 비하면 그렇게 높지 않지요? 그런데 어쩌다 '태산'이라는 멋진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요?


우선은 태산 주위에 태산만큼 높은 산이 없답니다. 그래서 우뚝 솟은 태산은 높은 산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이 태산에 신이 산다고 생각했답니다. 저 높은 태산에는 하느님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태산 꼭대기 정상의 이름은 '옥황봉'이랍니다. 바로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살고 있는 산이라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옛사람들은 신을 만나기 위해 이 산에 올랐답니다. 중국의 첫 번째 황제 진시황도 이 산에 올랐어요. 황제를 다른 말로 천자天子라 합니다. 하늘의 명령을 받아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황제가 되어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몸소 이 산에 올랐어요. 그러나 하늘이 진시황을 받아주지 않았다나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며 진시황을 반기지 않았어요. 결국 진시황은 한 소나무 아래에서 비바람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나무가 고마워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 지금도 태산에 오르다 보면 그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답니다.


진시황만 이 산에 오른 것은 아니었어요. 진시황에 앞서 공자도 이 산에 올랐답니다. 공자는 무사히 이 산의 정상에 올랐나 보아요. 산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보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넓고 큰 들판이 훤히 보이니까요. 그래서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천하가 참 작구나." '천하天下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天] 아래[下]'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옮기면 '온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고작 2,000미터도 안 되는 산에 올라 세상이 작다고 했다니! 우주에서 지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깜짝 놀랐겠어요. 태산의 배가 넘는 높은 산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겠지요.                        


물론 우리는 공자보다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어요. 세계 각 곳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답니다. 그것뿐인가요? 우주 망원경은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의 우주 모습까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화성 사진을 보내주는 탐사 로봇은 어떤가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힘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나 봐요. 태산에 오르는 길은 너무 힘들고 고됩니다.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예요. 수많은 문을 지나고, 수많은 계단을 지나 숨을 헐떡거리며 태산에 오르면 정상 근처에 문 하나가 맞이합니다. 이 문의 이름은 '남천문南天門'. 남쪽으로 난 하늘 문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시나, 성에 들어갈 때에는 남쪽 문이 가장 큰 문입니다. 그렇게 하늘문을 지나면 천가天街, 하늘 거리가 있어요. 그 높은 산에 늘어선 거리를 보면 어안이 벙벙합니다. 언제 한번 직접 올라 구경해 보기를. 


참, 이 산의 입구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습니다. '등고필자登高必自 :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여기서부터' 우리말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높이 오르려면 낮은 데서 차근차근 올라가야 하는 법입니다. 땀을 흘리고, 고생하며 노력해야 높은 데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때 태산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니 큰 일을 꿈꾼다면 양사언의 말을 기억합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산일 뿐이로다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 [와파서당 : 역사여행] 교안입니다. 전체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zziracilab/12


매거진의 이전글 구사일생, 홍문연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