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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Sep 28. 2022

구사일생, 홍문연 이야기

와파서당 초한전쟁

項王曰壯士賜之卮酒則與斗卮酒
噲拜謝起立而飲之(...) 
項王曰壯士能復飲乎
樊噲曰臣死且不避卮酒安足辭
항왕(항우)이 말했다. "장사로구나! 그에게 술을 내리라."
번쾌에게 한 동이의 술을 주었다. 번쾌가 절하며 감사를 표하고 선채로 술을 마셨다.
(...) 항왕이 말했다. "장사로구나! 더 마실 수 있는가?"
번쾌가 말했다.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거늘, 어찌 술을 마다하겠습니까?"
<사기 : 항우본기>


장기라는 보드 게임을 알고 있나요? 장기는 먼 옛날 두 나라의 전쟁을 보드 게임으로 옮겨놓은 것이랍니다. 장기판을 보면 붉은색 편과 푸른색 편으로 나누어 있어요. 중간에 커다란 말, 임금을 잡으면 승리합니다. 붉은색은 한漢, 푸른색은 초楚라고 쓰여 있어요. 바로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인 셈이지요.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그 주인공입니다. 


유방은 항우와 겨룰 정도의 인물로, 그와 비슷한 면이 있었어요. 항우가 진시황 행차를 보며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유방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도 멀리서 진시황의 수레를 보며 황제 자리를 탐하는 말을 했습니다. "아! 사나이라면 저래야 하는데..." 황제 자리를 빼앗을 수 있겠다는 항우와는 조금 다른 태도입니다.


항우가 빼어난 능력을 가진 장수였다면 유방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재주가 있는 인물이었어요. 그는 어디 가나 인기가 많은 인물이었답니다.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는데 그가 가는 술집은 유방 때문에 늘 사람이 많아 북적거렸다고 해요. 덕분에 유방은 늘 공짜로 술을 마셨어요. 돈이 없어 외상으로 술을 마셨는데, 외상값을 받기보다 유방 때문에 늘어난 손님이 더 많아서 그랬답니다. 


진시황이 세상을 떠나고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유방도 군대를 이끌고 나섭니다. 자신의 고향, 패현에서 군대를 일으켜 처음에 그는 패공沛公이라 불리었어요. 유방은 일찌감치 항량 밑에 들어가 항우와 함께 힘을 합쳐 전쟁터에 나섰습니다. 영 성격이 다른 인물이었지만 항우와 유방은 마치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고 해요. 역사 기록에 따르면 유방이 항우보다 나이는 더 많았다고 해요. 그러나 항우가 지위는 더 높았어요. 둘은 좀 특이한 관계였을 거예요.


항우가 거록에서 크게 승리하고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항우도 일개 장수에 불과했습니다. 초나라 임금이 있었으니까요. 초나라 임금은 항우의 힘이 지나치게 커 지는 것을 걱정했어요. 이에 여러 장수를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관중을 차지하는 자를 관중의 임금으로 삼겠다." 그러면서 항우를 일부러 어려운 전쟁터로 보냅니다. 대신 유방을 유리한 전쟁터로 보냈어요.


관중은 진나라의 수도가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진나라 수도를 먼저 차지하는 자에게 옛 진나라 땅을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초나라 임금의 예상대로 항우가 진나라 군대와 전쟁을 벌이고 애쓰는 틈을 타 유방의 군대가 먼저 진나라 수도 함양을 차지했습니다. 호해에 이어 진나라 임금이 된 자영은 흰 옷을 입고 유방에게 항복합니다. 환관 조고는 어떻게 되었느냐구요? 자영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어요.


커다란 진나라 궁궐을 보고 유방은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아름다운 미녀들과 진귀한 보물들을 보고는 모두 자기 차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궁궐에 들어가 매일 잔치를 벌이며 즐겼다고 해요. 그러나 유방 아래에는 좋은 신하들이 있었어요. 그런 유방을 보고는 이세황제처럼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합니다. 결국 유방을 강제로 궁궐에서 끌어냅니다.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면 훌륭한 임금이 될 수 없겠지요.


유방의 실수는 또 있었어요. 궁궐의 보물들을 독차지하겠다며 군사를 보내 관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뒤늦게 진나라 수도에 도착한 항우는 관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화를 냅니다. 자신보다 한 발 앞서 유방이 수도를 차지한 것도 분한데, 감히 자신을 막아서다니! 항우는 관문을 깨뜨리고 진나라 수도로 진격합니다. 이번에는 유방과 맞서 싸울 생각이었습니다.


항우의 군대가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방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어요. 항우는 유방보다 훨씬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천하무적의 항우니 맞서 싸워서는 도무지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유방의 꾀주머니였던 모사인 장량이 계책을 냅니다. 항우에게 사과하러 가기로 해요. 


그렇게 홍문에서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 연회의 이름을 홍문연이라 해요. 유방이 항우에게 사과하는 자리였지만, 항우의 모사 범증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기회를 보아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몇 번이나 항우에게 말했지만 항우는 듣지 않습니다. 결국 한 장수를 몰래 보내 유방을 죽이라 명합니다. 장수가 나와 잔치에 어울리게 칼춤을 추겠다며 칼을 들고 나섭니다. 틈을 보아 유방을 죽이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낌새를 알아채고 그를 막아선 사람이 있었어요. 그도 칼춤을 추겠다며 나섭니다. 한 사람은 유방을 노리고, 한 사람은 유방을 지키는 상황.


이 소식을 듣고 유방의 신하 번쾌가 항우와 유방의 술자리에 갑자기 들이닥칩니다. 유방의 목숨이 간당간당하다는 소문을 듣고 무기를 들고 잔치에 난입했어요. 호위병을 쓰러뜨리고 갑자기 들어온 인물에게 항우는 시선을 빼앗깁니다. 그의 용기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항우가 이렇게 말합니다. "장사로구나! 그에게 술을 내리라." 번쾌는 선 채로 한 동이의 술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항우가 고기를 내리자 방패 위에 고기를 얹고는 칼로 썰어 먹었다 해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자 한 까닭입니다. 


이를 본 항우가 이렇게 말합니다. "장사로구나! 더 마실 수 있는가?" 번쾌의 대답.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거늘, 어찌 술을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면서 항우의 부당함을 따집니다. 함께 한편이 되어 싸우던 사람에게 너무 한 것 아니냐고. 게다가 유방이 진나라 수도를 공격한 것은 초나라 임금의 명령 때문이었다 말합니다. 번쾌의 말에 항우는 묵묵히 듣기만 했어요. 항우도 유방을 몰래 죽이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았나 봅니다. 


결국 유방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 유방은 이후 힘을 키워 항우와 맞섭니다. 이 둘이 서로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나누도록 합시다. 사면초가와 패왕별희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와파서당 : 고사성어로 읽는 ‘초한전쟁' 교안입니다. 전체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zziracilab/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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