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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Oct 11. 2022

삼불여, 한고조 유방 이야기

와파서당 초한전쟁

決勝於千里之外 吾不如子房
鎮國家撫百姓 吾不如蕭何
連百萬之軍戰必勝 吾不如韓信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자방(장량)만 못하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살피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백만의 군대를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사기 : 고조본기>


초나라의 이름난 장군 가문이었던 항우에 비해 유방은 변변치 않은 출신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였다고 해요. 땀 흘리며 일하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협객俠客, 칼을 차고 다니며 자유분방하게 지내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정신 좀 차리라며 잔소리를 했지만 유방은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답니다.


그런 그가 진시황의 수레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사나이라면 저래야 하는데...' 그의 말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허풍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유방이 사는 고을에 큰 부자 여공이 이사를 왔습니다. 여공을 맞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어요. 잔치 입구에서는 축하금을 받았습니다. 축하금에 따라 다른 자리에 앉을 수 있었어요. 유방은 가진 돈도 없으면서 1만 냥을 적어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윗자리에 앉아 잔치를 즐겼어요. 뻔뻔하게도 말이지요. 헌데 그를 곁에서 만난 여공의 마음을  사고 말았습니다. 결국 여공은 유방을 자신의 사위로 삼았습니다. 


유방은 허풍선이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끄는 기묘한 재주가 있었어요. 그를 꼬집어 비판했던 소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소하는 여공이 유방을 마음 들어하자 여공에게 이렇게 말한 인물이었어요. '그는 큰 소리를 치지만 늘 말뿐입니다.' 유방을 실속 없는 인물이라 비판하는 그였지만 그도 결국 유방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립니다. 나중에 유방의 소중한 신하가 되어요. 


유방도 마냥 놀며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가족이 생겼고 작게라도 일을 해야 했어요. 작은 관직을 얻었는데 죄인을 호송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헌데 자꾸 몇몇이 도망가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할 때에는 숫자가 별로 남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방은 죄인들을 모아 두고 말합니다. '모두 달아나라. 나도 달아나겠다.' 죄인을 풀어주고 자신도 몸을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헌데 도리어 죄인들이 유방을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삼겠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유방은 도적떼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진시황이 죽고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유방도 군사를 일으킵니다. 그는 가까운 항량의 군대를 찾아갑니다. 항량 밑에서 항우와 함께 전쟁에 나가 활약합니다. 자신과 출신도 다르고 성격도 영 딴판이지만, 항우 역시 유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항우와 유방은 형제처럼 전쟁터에서 활약했다고 해요. 훗날 항우가 거록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유방도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유방이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먼저 정복하면서 항우와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항우는 유방이 자신보다 앞서 진나라 수도를 점령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유방 따위가 자신보다 앞서다니! 그러나 이때 이미 유방은 항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어요. 항우는 영웅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면서 유방에게는 일부러 서쪽 구석진 땅을 주었습니다. 유방의 나라, '한漢'은 바로 이 구석진 지역의 이름이었어요.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싸움, 초한전쟁의 전쟁의 승리자는 유방이었어요. 당시에도 유방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항우를 꺾고 새로운 통일 제국의 첫 번째 황제가 되어요. 유방의 한나라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나라였습니다. 초한전쟁의 결과가 달랐다면 이후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어째서 유방이 이길 수 있었을까. 항우가 너무 자만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유방이 엄청난 운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일까요. 저마다 내놓는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당시에도 이를 두고 여러 말들이 많았어요. 유방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통일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일입니다. 유방은 신하들과 성대한 잔치를 벌입니다. 술자리에 흥이 오를 무렵 유방이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항우와의 싸움에서 내가 승리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대들은 솔직히 이야기해보라."


저마다 여러 이야기를 내놓았지만 모두 유방의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유방의 생각은 이랬답니다. "군대 안에서 계책을 세우고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자방(장량)만 못하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살피며 병사와 양식을 끊이지 않게 보내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오. 백만의 군대를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이겨 승리를 차지하는 것은, 내가 한신만 못하오. 나에게는 이 세 영웅이 있었기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소." 


유방은 정확히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한 개인의 능력으로 치면 유방은 그렇게 빼어난 인물이 아니었어요. 꾀를 잘 내는 사람도 아니었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전쟁터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어느 분야에서도 1등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는 최고의 실력자들이 있었어요. 꾀를 내는 데는 장량, 꼼꼼한 일처리는 소하, 전쟁을 벌이는 데는 한신이 제일이었습니다. 


유방의 이 말에서 삼불여三不如라는 말이 나왔어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세 가지 못난 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못난 점이 있을 때 보통 사람은 이를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유방의 방법은 달랐어요. 그는 장량, 소하, 한신의 빼어난 점을 인정합니다. 대신 자신에게 다른 능력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어요. 바로 사람을 쓸 줄 아는 능력입니다. 유방에게는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요. 


한나라의 첫 번째 황제, 한고조 유방은 그렇게 항우라는 당대 최고의 인물을 상대해 승리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 와파서당 : 고사성어로 읽는 ‘초한전쟁' 교안입니다. 전체 교안은 아래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zziracilab/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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