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2부 발제문
솔직히 버겁다. 우선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중과제론'이 계속 읽기를 방해한다. 이도 저도 아닌 듯, 장점과 단점을 섞어놓은 듯, '정-반'을 다르게 말하는 듯, 근대 내부에서 근대의 달성과 초극의 양면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인지... 이해의 문제인지 아니면 동의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근대'를 문제 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이중과제론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 쓸데없는 거대 담론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자가 목표로 삼은 과제들도 버겁다. 중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하며, 동시에 이중과제론의 측면에서 민의 결집과 지치를 이야기한다. 게다가 나아가 실질민주에 대한 이야기까지. '국가 개입을 촉구하는 동시에 그런 개입 자체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는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통제에 대한 새로운 상상과 사유가 절실한 시점(237쪽)에 이르면 머리가 아득해진다. 40-50년대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소화하기도 버거운데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상상해야 한다니. 전자는 이해하고 후자는 논쟁해야 할 상황인데 둘 모두 버겁다. 정보가 많아 이해가 힘들고 논쟁에 뛰어들 기력이 없다.
너도 나도 현대사는 복잡하구나. 40-50년대의 다사다난한 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질어질하다. 이 땅의 현대사를 이해하기도 버거운데 이웃나라의 현대사를 읽으려니 진땀이 흐른다. 그래도 양국의 현대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새롭게 접근할 구석이 많다.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호소가 중국을 바꾸었고 한반도의 두 나라를 바꾸었다. 이 사건만 따로 떼어 이야기하더라도 한 세월일 터.
저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을 두고 '인민공화국'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공산주의 혁명의 결과로 볼 수 없다는 점. 저자가 주목하는 점에 따르면 신민주주주의 사회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쉽게 말해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의 탄생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비록 공산당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나 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는 뜻. 하긴 오성홍기에는 다섯 개의 별이 번쩍인다. 공산당을 상징하는 별이 가장 크지만.
저자는 신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공산당의 지도 아래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 노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정치 면에서는 공산당 지도하에 각 민주당파와 연합정권을 구성하는 인민민주통일전선, 곧 연합정부론이다. 경제 면에서는 생산력 발전을 핵심으로 하되 국영경제 부문의 주도하에 각종 부문이 병존하여 공동 발전하고 공과 사를 모두 고려하며 노동과 자본에 모두 이익이 되면서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돕는 것 곧 혼합경제론이다.(197-198쪽)' 너무 좋은 이야기만 써 놓은 건 아닐까.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신민주주의'라면 마오의 논의를 쉬이 떠올리지만 그것은 신민주주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든 점. 이것은 하나의 가능성이다.
저자의 논의대로 1949년 성립되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운명은 매우 유동적이었다. 공산당은 국민당의 전철을, 멀리 이자성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있었고 미-제국주의의 위협은 변천變天, 국가의 전복을 가져올 우려도 있었다. 신민주주의적 여러 '실험'에도 불구하고 곧 사회주의 총노선으로 전환된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외부적 요인도 있으나 내부적 요인도 있다. 저자는 공산당의 역량이 성장한 데서 그 이유를 찾는다. 15년간의 신민주주의 사회가 필요 없이 바로 사회주의 사회 단계로 갈 수 있겠다 싶은 역량이 쌓였다. 중국 공산당의 다양한 운동, 시도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경험, 봉쇄정책으로 인한 곤경으로 사회주의 노선으로 서둘러 갈아타게 되었다는 것. 우리가 중공에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없는 것은 '57년 체제(236쪽)' 이후를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예컨대 문혁의 상흔이라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신민주주의 시기의 유산에 주목한다. 혼합경제의 유산은 개혁개방 이후에 효과를 보았다, 운동의 경험은 아마 1989년에 다시 이야기되지 않을까.
역사는 현재에 복무하는 학문이다. 현재를 설명하거나 현재를 변혁하거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거의 경험은 그렇게 축적된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질까? 1919 5.4에서 발견되었던 '민'이 1949 신민주주의 공간에서 '인민'으로 구체화되었고, 1989 새로운 운동으로 등장했다면, 그다음은? '더 좋은 민주주의'를 중국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이 맞느냐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착짱죽짱, '더 좋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착한 짱깨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까. 1989 천안문에서 모두 죽었고, 아니 문혁과 신중국 성립, 국공내전을 거치면서 다 죽었으니까.
중국 현대사를 통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낯선 것은 중국에는 민주 따위가 없다는 짱개주의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더 좋은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의 논의를 살펴보면 제도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직선제 이상의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실질적 민주주의. 이를 위해 저자가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다양한 사회적 이익을 말하는 '직능 대표제', 제도를 뛰어넘는 '군중 운동'의 역동성이다. 아마도 각각은 직선제 의회정치의 한계와 제도적 행정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그러나 87의 후예들은 국가를 점유하는 동시에, 다양한 운동을 국가체제로 흡수해버렸다. 87의 주동자들은 '민주주의'보다 통치기구를 점유하는데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사회 운동을 한가닥 한 사람들이 한 자리씩 차지한,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시대가 열리자 늘공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검찰 출신의 대통령은 행정관료로서의 뚝심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좋아 빠르게 가'. 물리적 광장의 역동성에서 벗어나 보면 2030과 5070의 군중 운동의 결과가 오늘날 현재를 만들었다는 진단도 가능하다. 광화문의 노친내들은 늘 격정적이다. 후끈후끈. 펨코의 인셀들은 온라인 운동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과연 더 좋은 '민'주주의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현대사를 만든 세가지 사건>
2부 : 1949 당과 인민의 시대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