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문제 - 루쉰과 펑유란의 모색 #2
우리실험자들http://experimentor.net/ 열린강좌 내용을 나눕니다.
총 4부분으로 나눌 예정입니다.
#1 중국을 사유하기 :: https://brunch.co.kr/@zziraci/70
#2 루쉰,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 :: https://brunch.co.kr/@zziraci/73
#3 펑유란, 철학의 시민권을 취하라 :: https://brunch.co.kr/@zziraci/74
#4 중국의 부상과 ‘중국’의 부활 :: https://brunch.co.kr/@zziraci/75
‘중국’이란 본디 가운데(中)에 있는 지역(國)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일차적으로는 물리적 위치가 중앙이라는 뜻이다. 중원中原이라는 넓은 공간이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한편 이를 둘러싼 공간은 오랑캐의 공간이었다. 사이四夷라는 사방 오랑캐들은 이 중심부의 변방, 혹은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차이는 문명의 척도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천하天下란 단순히 하늘 아래의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문명 세계를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문명 세계는 생각보다 그리 견고하지 못했다. 천하의 지배자는 수시로 바뀌었다. 그뿐인가, 여기에는 수많은 이질적 문화들이 녹아들었다. 오랑캐라고 손가락질하던 이들이 천하의 주인이 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의 주인공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그 누구도 ‘중국’의 지배자는 되지 못했다. 그 역시 ‘중국’의 일부일 뿐이었다. ‘중국’은 오히려 이민족이건 그 무엇이건 자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시대에 따라 ‘중국’은 팽창하기도 하고 수축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그 크기는 점점 커졌다.
문제는 새로운 곳에서 생겨났다. 낯선 서방의 세력이 바다를 건너왔다. 붙어 보았으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 차례 싸움이 벌어졌지만 일방적인 패배였다. 아편전쟁의 기억은 쓰라린 패배감을 심어주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이에 청조는 인재를 유럽에 보내 신식 해군 기술을 익히고자 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해군을 길렀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낯설지만, 당시 바다를 통해 서구의 힘을 경험한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몸부림이었다.
힘을 길렀으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1895년 청일전쟁은 ‘중국’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상대는 낯선 서양 오랑캐가 아니라 눈에 익은, 오랫동안 변방의 구석에 있던 오랑캐 가운데 오랑캐였다. 아편전쟁의 충격과 청일전쟁의 충격을 비교한다면 어떨까? 전자는 낯선 세계의 위협이었다면 후자는 익숙한 변방의 도전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결과적으로 20세기 말, 더 이상 낡은 체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루쉰은 1881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고문古文을 배웠다. 청조의 낡은 지식이 그나마 필요한 시기에 태어난 까닭이다. 그러나 중앙 관료였던 할아버지의 몰락, 아버지의 병환은 루쉰을 매우 어려운 삶으로 내몰았다. 할아버지는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에 가담한 이유로 자리에서 내쫓겼다. 아버지는 아편과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의도치 않게 할아버지, 아버지의 세계와 단절된 루쉰은 ‘서양 귀신’을 배운다며 낯선 길을 떠난다. 루쉰은 그의 어머니가 그저 울기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미 낡은 왕조의 몰락이 눈앞에 보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루쉰은 고향을 떠나 해군학교에 들어간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까닭에 그는 철도학교로 옮긴다. 이후 그는 일본에 넘어가 의학을 배운다. ‘해군-철도-의학’, 지금 보아서는 전혀 연결할 수 없는 셋이지만 당시 이 셋은 그리 멀지 않았다. 루쉰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 새로운 것을 배우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과거시험에서 통용되었던 낡은 지식은 더 이상 자리 잡을 곳이 없었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벌어졌다. 그는 새로운 학문을 배워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동참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떤 경험이 그의 생각을 뒤바꿔 놓았다. 당시 의학 수업 가운데는 해부도 따위를 슬라이드로 보여주곤 했다. 어느 날 루쉰은 슬라이드 속에서 러일전쟁의 포로로 잡힌 중국인을 만난다. 주변에 구경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인 무력한 모습은 젊은 루쉰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힘 없이 포로가 되어 있는 사람의 나약한 모습이 그를 흔들었고, 그저 보기만 하는 주변 구경꾼의 모습에 그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건강한 신체보다 건강한 정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는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문예활동에 투신하기로 마음먹는다.
동료들과 함께 <신생>이라는 이름의 잡지를 펴내고자 하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만다. 이름과 달리 새로 태어나지 못한 이 잡지의 얄궂은 운명은 젊은 루쉰에게 화두를 던져주었다. 그래 정신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평범한 계몽주의자였다면 사람들을 교육시켜 정신을 바꾸고 삶을 바꾸어 새로운 시대를 열수 있다고 했겠지만 루쉰은 그러지 않았다. 거꾸로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여기에는 그가 경험했던 구경꾼 군중에 대한 불신이 있다. 힘없이 열강의 포로가 된 그 인물도 안타깝지만, 그를 둘러싼 군중들이 더 두렵다. 그뿐인가. 루쉰의 말을 빌리면 그 가운데 일부는 입맛을 다시며 누군가의 희생을 기다린다. 루쉰의 글에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구경하는 군중에 대한 경계가 여럿 등장한다. <약>과 같은 작품에서 군중은 희생을 노리는 늑대, 혹은 하이에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뿐이었다면 그는 군중을 믿지 못하는 꽉 막힌 지식분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믿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가 낡은 전통의 유산임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중간자적 존재임을 자각한 인물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낡은 시대의 것이 소멸해야 하듯, 그 자신의 삶도 소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 앞장서 깃발을 들 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이야기했던 어두 컴컴한 부분, 실존적 인식은 그에게 확신보다는 의심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분명하고 확실하다는 점을 일러주었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며, 절망을 감당하며, 현재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 결과 그는 당대의 여러 인물과는 다른 사상적인 결을 갖게 되었다. 그에게는 어떤 ‘주의’라고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있다고 한다면 ‘진보’와 ‘인간’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말자. 그가 ‘진보’라고 할 때, 그 ‘진보’란 어딘가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일컫지 않는다. 그는 다만 현재 그가 속한 세계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를 바꿔야 한다. 그것도 전복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을 진보라 보았다. 해체하며 나아가는 발걸음만이 남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구습은 물론 당대의 이상주의자들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한편 그는 ‘인간’에 적잖은 관심을 두었다. 물론 이때의 인간 역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인간과는 좀 다르다. 그는 생명의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야기한다. 인간도 이 세계를 채운 생명들의 일부로 존재한다. 좀 차이가 있다면 인간은 개별적으로 고유한 삶의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동일하지 않다. 각자 개별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이 개별적 존재를 증명하는 ‘개성’이야말로 인간의 중요한 특징이다. 개체의 삶을 방해하는 것, 개인의 생각과 개성을 억누르는 것과 그는 끊임없이 싸웠다.
1936년, 루쉰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루쉰의 삶을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이 그가 적절한 때에 세상을 떠났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죽음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의 싸움은 더욱 극심해졌다. 이 다툼의 중간에서 루쉰 역시 삶을 제대로 보전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나아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루쉰이 살아 있었다면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공산주의자들에게도 여전히 비판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었을까? 순진한 가정일 뿐이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루쉰이 아니었을 것이며, 만약 그랬다면 루쉰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술하듯 루쉰은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살았다. ‘중국’이라는 전통적인 천하세계의 붕괴를 맞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따져 묻는 시기였다. 공화주의자들은 새로운 국가를 꿈꾸었고,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게 중에는 낡은 왕조의 익숙한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루쉰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는 ‘중국’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렇다고 오늘 우리 눈앞에 서 있는 중국을 꿈꾼 것도 아니었다. 기묘하게도 그는 ‘중국’과 중국 사이를 살았으며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삶을 산 인물이 되었다.
그는 미래를 의심했고, 자신과 같은 지식인의 허위를 잘 알고 있었다. 민중의 폭력을 알았고, 희망의 한계를 알았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설사 그가 중국의 탄생을 목도했다 하더라도 중국의 일원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