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나만의 핑거스냅.

나는 양손잡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왼손잡이였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왼손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들이 있었다. 왼손잡이는 재수가 없다거나 왼손은 응가 뒤처리를 하는 손이다, 등등…… 그래서 부모님이 왼손을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왼손을 쓰면 똑똑해진다고 고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애매하게 젓가락질만 왼손으로 하는 양손잡이가 되었다. 

 

어벤저스라는 영화에는 타노스라는 빌런이 나온다. 그의 목적은 우주의 생명체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어 균형 잡힌 우주를 만들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왼손에 인피니티 건틀릿을 끼고 5개의 보석을 장착하여 어마 무시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결국 핑거스냅으로 목적을 달성하여 우주의 절반의 생명체를 먼지로 만들어 버린다. 

 

나의 뇌 속의 혈관덩어리가 신경다발을 압박하면서 나의 왼손에도 타노스의 핑거스냅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왼손이 가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련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가끔 왼손으로 잡고 있던 물건을 사라지게 만든다. 

뇌수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아직 다니고 있을 때였다. 점심시간에 나를 포함한 몇몇 직원들은 회의실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함께 나눠 먹었다. 힘겨운 오전 업무를 끝내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로 향한다. 점심시간은 학창 시절이나 사회에서나 설렘이 있다. 먹고살아야 하는 동물들의 당연한 반응인가? 아무튼 회의실에서 각자의 도시락을 펼쳐놓는다. 아침에 싸온 도시락이기에 아무래도 밥이 포슬포슬하기보단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다. 하지만 분명히 맛있을 것이다. 난 밥을 숟가락보다 젓가락을 사용해서 먹는다. 첫술을 뜨기 위해 왼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밥에 푹 찌른다. 순간 능력이 발현되며 밥이 사라졌다. 덩어리진 밥은 순식간에 회의실 한쪽 벽으로 순간 이동했다. 젓가락과 함께…… 착한 나의 동료들은 십시일반 밥 한 숟가락씩을 모아 나의 빈 밥통에 모아준다. 이것이 동료애인가~

 

공방에서 클레이아트 작업을 할 때도 조심해야 한다. 도구들이 날카롭기 때문에 왼손은 절대 도구를 만지지 않는다. 가끔 작품을 찌르거나 내 손을 찌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그랬지……. '왼손은 거들뿐!’ 모든 세밀한 작업은 오른손으로 하고 왼손은 그저 거치대 역할만 해야 한다. 그마저도 가끔 힘 조절이 되지 않아서 뭉개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왼손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있다. 나의 오른쪽 몸 전체는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신경통증으로 인해 감각이 둔하다. 뜨겁고 차가운 것을 세밀하게 느끼지 못한다. 엄청 뜨거워야 통증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종종 화상을 입기도 한다. 온도를 체크하는 일들은 왼손으로 해야 한다. 

한 번은 카페에서 아내가 열이 나는 것 같다고 코로나 아니냐며 이마를 들이밀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오른손으로 아내의 이마와 나의 이마를 체크했다. 아무 차이도 느껴지지 않아서 몇 번을 번갈아 가며 체크해보지만 아무 차이도 느껴지지 않는다. 뭐지? 하고 생각했다가 아차 하며 왼손으로 다시 체크해주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웃픈 일이다.

병원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처음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 왼손으로 느끼는 세상을 잊지 못한다. 살랑거리는 바람과 햇빛의 따뜻함을 오로지 왼손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감각이 한쪽으로 집중이 되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유독 감동적이었다. 육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는 듯했다.

 

왼손은 힘 조절을 못하고 오른손은 감각을 잘 느끼지 못한다. 어찌 보면 기능을 하나씩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양손이 같은 기능들을 잃어버렸다면 아마 더욱 절망했을 것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지금의 현실을 100%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다. 너무 한 순간에 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다. 뭐 어쩌겠는가~그럴 때마다 다독거리면서 살아야지~ 너무 심각해지지만 말자. 살다 보면 바닥에 내리 꽂히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바닥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되었건 살아야 하니깐! 오늘도 나는 바닥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귀신은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