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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벽! 벽! 벽!

카페에 오시는 손님들 대부분 언제 오픈했냐는 질문들을 굉장히 많이 하신다. 2017년에 오픈했다고 말씀드리면 열에 열은 놀라신다. 왜 못 봤지?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래도 카페가 들어서기에는 너무 주택가이기도 하고 간판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 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궁금해하신다.

 

뇌수술 후에도 1년 정도는 회사를 다녔다.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무리가 되었는지 응급실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결국 재출혈이 되어 혼자서 걷지 못하게 되었다. 우선은 쉬면서 몸을 추스르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살아갈 궁리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내와 고민을 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아내와 내가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 음식장사는 체력적으로 너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아내도 성대 낭종 제거 수술로 인해 체력적으로 부담이 가는 일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방 카페다. 우리는 만들고 그리는 일들을 잘하고 좋아하니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서 준비해보자고 결정했다. 그리고 아내와 나는 바리스타 2급 교육을 받았다. 내가 과연 커피를 만드는 일이 가능할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도 자격증을 따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장소가 문제다. 내가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니 집과 카페가 한 곳에 있어야 한다. 고민 끝에 대출을 받고 전세금을 보태서 2층 규모의 주택을 알아보자고 결정했다. 1층은 용도변경을 해서 카페를 하고 2층은 가정집을 계획했다. 서울의 현실의 벽은 어마어마했다. 상권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재미있는 것은 외곽에 나와있는 매물들은 평당 가격이 싸지만 평수가 커서 그 돈이 그 돈이었다. 아내는 거의 1년 넘게 서울을 샅샅이 뒤졌다. 나를 보살피면서 하루 종일 부동산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지방에 내려가는 것도 생각했지만 병원이 서울에 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아내가 드디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매물을 발견했다. 지금 우리가 자리한 곳이다. 아쉬운 점은 위치가 카페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편에 큰 카페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었다. 여기마저 놓치면 답이 없었다. 하지만 매물의 상태가 건강하진 않았다. 우선 근저당 설정이 매매가보다 높은 상태였다. 집주인이 이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집주인에게 이 상황을 해결했다는 확인서를 요구했더니 도리어 화를 낸다. 부동산 중개인도 아내에게 유별나다는 듯이 대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라 하지 않았는가? 아내는 끈질기게 중개인과 집주인에게 요구했고 결국에는 대출금의 일부를 상환했다는 확인서를 받아냈다. 계약을 하는 날에도 집주인은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계속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사기꾼 같은 사람이었다. 이후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우리에게 연락이 오곤 했다. 그리고 온갖 독촉장 우편이 아직도 오고 있다. 아내의 확인이 없었다면 큰일이 생겼을 것이다. 눈뜨고 코 베이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글로 짧게 썼지만, 우리 부부가 느낀 현실의 벽은 예상보다 더 차갑고 가시가 돋아 있었다. 그리고 벽은 겹겹이 쌓여있다. 아마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 벽들을 마주해야겠지. 다음 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다면 대비라도 할 텐데 말이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하고 아주 두꺼운 벽이 가로막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내와 함께라면 어떤 벽이 와도 견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아내와 함께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하고 손님을 기다려 본다.

어서 오십시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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