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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오만원.

오늘은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하러 가는 날이다. 1차 때보다 더 아프다는 후기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염려와는 달리 게눈 감추듯 너무나 순식간에 접종을 마치고 아내와 나는 아프면 안 된다며 오늘은 자~~~ 알 먹자고 다짐한다.

 

조금 이른 점심시간 11시, 우리는 동네 국수 맛집으로 향했다. 뭔가 얼큰한 면이 땡겼다. 

가게에 도착하니 사장님께서 전면 통창의 가림막을 올리고 계셨다. 우리가 첫 손님이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들어서자마자 QR 찍고 손 소독하고 칼국수 2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얼른 먹고 싶다. 기다리는 동안 핸드폰으로 기사도 보고 sns도 하고 게임도 켰다가…… 초조하다. 왜 이리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의 음악이 뚝뚝 끊어진다. 유독 블루투스나 와이파이가 말썽을 일으키는 날이 있다. 별것 아닌데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거슬리는 일이다. 어라! 인터넷도 왜 이래? 연결이 안 된다. LTE도 잡히지 않는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겠군….ㅠㅠ

 

다행히 금세 칼국수가 나왔다. 오늘따라 푸짐해 보인다. 적당하게 뿌연 감칠맛이 눈으로 느껴지는 모락모락 국물과 그 안에서 유혹하듯이 숨어있는 탱글한 면과 야채들…… 그 위에 살포시 흩뿌려져 있는 김가루와 깨소금~~ 오~~ 영롱하다. 온전히 흡수하여 나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주겠다. 아직 젓가락질에 조금 힘이 들어가지 않지만 식욕이란 그딴 장애 따윈 가뿐하게 극복하게 해 준다. 오롯이 나의 머리에는 잘 먹어야 한다는 일념뿐이다. 아직 왼쪽 입이 마비 증상이 있어서 면치기는 못하지만 오른쪽 입안에서 느껴지는 면의 탱글함이 춤을 춘다. 그다음 들이키는 얼큰한 국물에 김혜자 선생님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래~이 맛이야~.”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내를 보니 역시 칼국수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마치 약육강식 야생의 세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마냥 흡입하고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저 먹을 뿐. 이 칼국수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덜 아플 것이다.

 

그릇의 바닥과 만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격렬한 사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뿌듯함과 포만감이 몰려온다. 이제 집에 가서 타이레놀 2알을 먹고 잠의 세계로 빠지면 완벽하겠다. 그리고 일어나서 또 맛있는 거 먹어야지~ 즐거운 생각을 하는 동안 아내가 계산을 하러 갔다. 

 

뭔가 당황하신 사장님. 카드를 여러 번 넣었다가 긁었다가 하며 우리들의 눈치를 보신다. 결제가 안된다. 카드가 잘못된 것인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인터넷이 문제였다. 아까 끊어졌던 인터넷이 아직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핸드폰으로 확인을 해보았지만 역시 연결되지 않는다. 아내가 계좌이체를 하려고 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었다. 근처 atm기계에도 가보았지만 불통이었다. 결국 내가 가게에 남아있고 그사이 아내가 은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미안해하시는 사장님께 괜찮다고 사장님께서 잘못하신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다. 몇 분이 지나고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은행도 난리여서 집에서 현금을 가지고 가는 중이라고 한다. 오는 도중에 우연히 kt기사님과 만났는데 지금 전국적으로 안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전화도 잘 안돼서 확인차 전화를 해봤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끊어진다. 내가 다시 전화를 해보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얼마 후 아내가 현금을 가지고 도착을 했다. 사장님께서는 연거푸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신다. 하지만 더 문제는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배달 주문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오늘 점심장사는 접어야겠다며 탄식을 하셨다. 아…… 너무 안타까웠다.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우리의 대화를 들으시더니 혀를 끌끌 차시며 안타까워하셨다. 그사이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은 여유롭게 현금으로 결제를 하셨다. 다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분들이다. 5만 원 정도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오늘도 소소한 깨달음을 얻고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오후에 사촌동생과 만나기로 했는데 전화가 잘 안돼서 그 조그만 두발을 동동거린다. 사거리에서 겨우 통화가 되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일을 보고 온다는 사촌동생도 뭔가 문제가 생겼나 보다. 우리 동네로 오기로 했는데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40분쯤 지나고 복구가 된 것 같다. 다행이다. 우리 집은 인터넷 TV라서 아무것도 못 볼뻔했다. 아내는 사촌동생과 다시 약속을 정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집 앞의 추어탕집 앞에 고성이 오간다. 차를 빼야 하는데 전화가 안돼서 화가 많이 났나 보다. 영문도 모르던 차주와 가게 사장님과 화가 난 손님 세 명이서 난리다.

잠시 통신망에 문제가 생겼는데도 온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뉴스에 전국적으로 통신망이 이상이 생겨 피해를 봤다는 소식이 뜬다. 기술의 발전도 좋고 편리해지는 것도 좋지만 하나의 수단으로 통합이 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의 사태만 봐도 고작 1시간 정도였지만 여기저기서 작은 문제들이 생겼다. 

 

아내와 오늘의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예전의 카드 사건이 생각났다. 결혼 전 연애할 때 아내 생일이 되어서 내가 비싼 맛집에서 거하게 쏘겠다며 데리고 갔었다. 한상 푸짐하게 먹고 내가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한도 초과가 되어서 아내가 계산했던 일이 생각났다.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에 자기돈으로 거하게 먹었다며 아직도 나를 놀리곤 한다.

 

그때도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오늘도 소소한 깨달음을 되새겨 본다. 

 

5만 원 정도 현금을 가지고 다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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