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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30. 2021

쓰다가 "밥 하러 가는 기분"

워킹맘의 글쓰기 분투-자책감 해소법

"작가님의 글쓰기 루틴은 무엇인가요?"


내 입에 맞는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를 정합니다. 그러면 아침에 눈을 뜰 때, 빨리 그곳에 가고 싶어 지죠. 그곳에 가서 쓰는 일을 하면 된답니다. 이게 저의 글쓰기 루틴이죠. 글쓰기는 어떤 장르이든 애를 써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글을 쓰기 전과 후에 좋아하는 것을 배치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저의 '쓰기 개똥철학'입니다.

이런 철학을 실천하다가 원고 마무리가 필요하면 며칠 작정을 하고 가족들 앞에 집필을 알리죠. 업무 외의 오전 시간과 저녁시간을 오롯이 혼자 카페에 나를 붙박습니다. 사골국 같은 라테 한잔과 함께요. 물론 출타하기 전 오늘 가족들이 먹을 양식을 굵직하게 두 개 정도 해놓고 나옵니다. 데워먹든, 식은 채 먹든 '너희들'의 자유니 까요. 여기에 남편은 예외입니다. 큰 아이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자식은 훈련시키고 아빠는 왜 훈련시키지 않았어?'라더군요. 맞습니다. 그릇이 어디 있는지, 수저가 어디 있는지, 오늘 미리 만들어 둔 요리가 어디 있는지 남편은 모를 것이라 설정하고 안쓰럽게 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안쓰럽지 않은데 남편에게는 그렇게 되더라고요. "'나'의 커리어를 위한 행보가 그를 내조하지 못한다"는 여성과 그들의 일을 낮잡아 보는 전근대적 사상의 찌꺼기에 아직도 절어있나 봅니다. 그런데 좀체 벗어지질 않아요. 가끔 너무 급한 교정, 업무 등이 있을 때면 "여보, 미안해. 빨리 못 들어가겠네"라고 톡을 보냅니다. 그게 미안한 일이 아닌데도 그럽디다. 애써 배려한다고 보낸 톡에 대답은 무척 생경합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왜 걱정이지?"라면서요. 괜히 걱정했다 마음을 쓸어내리는데 나중에 귀가하면 거나하게 아이들과 라면, 짜파**, 치킨, 배달음식으로 파티를 즐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지요. 어쩌면 나쁜 음식으로 채우는 게 싫고, 외식이 잦아지는 것도 싫은 게 저의 본심일 수도 있겠지요.  

남편의 최애 프로는 축구 다음으로 '나는 자연인이다'입니다. 시골로 돌아가 노년을 살겠다는 다짐은 왜 집집마다 남정네들의 단골 멘트요 짜 놓은듯한 꿈인지요. 시골을 지향하는 남편과 도회지에서 커리어를 더 펼치겠다는 저와의 동상이몽이 분명해지자 남편이 결단을 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요리해야 한다" 아주 기특하고 고마운 문제 해결법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한 뒤로 계속 줄기차게 라면이 주 메뉴입니다. 반조리식품을 즐기는 게 차라리 낫지요. 사 와서 지지고 볶으면 되는 가공된 재료가 얼마나 많은지요. 남편의 결심은 이후로 계속 요지부동 결심만 앙상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스스로 요리하기 시작하겠지요.(남편이 시어머님과 외출할 때, 시아버님이 밥때가 되기만 하면 들어오라고 성화 셔서 많이 느꼈나 봅니다. 아버님이 반면교사 셨다는....)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나름 진하게 교육받으며 자란 저는, 전근대적인 옷을 벗지 못하기를 여러 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고방식을 일순간 뜯어고칠 수 없으니 삶을 재 정돈하기로 했습니다. 아침밥은 무조건 차려주자. "아침밥을 무조건 제대로 차려주자"가 아닌 게 다행입니다. 아침을 간소하든 거나하든 매일 차려주는 것이지요. (남편이 다이어트로 반년 이상 아침을 거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편했지만, 다시 그런 날은 오지 않더라고요.) 남편이 혼자 차려먹을 수도 있겠지만 아침은 제 손으로 차려주고 싶더라고요. '그 사람의 하루 힘의 근간이 내가 차려주는 밥상이면 좋겠다'라는 자기애적 사고가 발동한 것도 비밀은 아니지요. 그러자 알 수 없는 미안함이 가라앉더라고요. 아침을 차리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제 속에 글 쓰는 일이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할수록 자책감이 쌓였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글을 쓰는 일의 유익이 가족 모두의 것임을 깨달으면서 저의 걸끄러움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손에는 펜을 한 손에는 식칼을 빼들고 나아갑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죠'



카페에서 며칠 원고를 채우려던 저는 결국 마지막 날 남편의 톡을 보고 냉큼 가방을 쌌더랬지요.

"여보, 부대찌개가 먹고 싶은데?"

얼마 전 맛나게 부대찌개를 했더니 반했나봅니다. 십여분이 걸리는 거리를 5분도 안 걸려 귀가했습니다. 불운인 게, 때마침 글이 너무너무 술술 풀려 거치적거리는 게 하나도 없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순간, 밀 키트를 사서 끓여 잡수라거나 근처 부대찌개 전문점에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양념 범벅인 음식을 먹을 것을 상상하기 싫었고, 아이들도 식사를 놓친 상황이었던 게죠. 이놈의 '주부 정신'은 내 가족에게 맛난 것을 먹이고 싶고, 아빠가 있는 저녁밥상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은 일념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글쓰기에 뮤즈가 임한 것은 중요치 않았습니다.(1년에 분기별로 오기 어렵다는 뮤즈님이 오셨는데 말이죠) 그렇게 저는 주부라는 정체성을 발휘하러 글을 쓰다 말고 '밥'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자책 때문에 이제는 달리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한 끼, 뭐라고. 알아서 먹겠지.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내가 있어야 해?"라고, 작가의 정체성에 매몰되어 가족을 뒤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뮤즈가 임해서 쓰는 일에 매진하자'라는 생각 아래에 '불안'이 그리 크지 않았음을 눈치챘습니다. '뮤즈가 찾아오던 말던 나는 내일도 쓰고 그다음 날도 쓸 텐데, 오늘은 여기 까지는구나'라고 셔터를 순간 내릴 수 있는 강단이 생겼습니다. 몽글거리는 여러 감정에 자책이라는 재료가 없어진 게 큰 변화라면 변화인 것이지요.




'뮤즈가 찾아오던 말던, 나는 내일도 쓰고 그다음 날도 쓸 텐데,
오늘은 여기 까지는구나'라고 셔터를 순간 내릴 수 있는 강단이 생겼습니다.
몽글거리는 여러 감정에 자책이 없어진 게 큰 변화라면 변화인 것이지요.



워킹맘이라는 존재가 글도 쓰고 살림과 육아와 내조? 까지 동시에 끌고 가야 할 때, 가끔 처량하고 가끔 내편이 없다는 기분에 씁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책 때문에 글과 나머지 것의 균형을 잃으면 안 될 노릇입니다. 당당하게 쓰다가도 가족을 위해 식칼을 뽑아들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한 거 아닐까요? 이런 단단해진 마음이라면 느리지만 모두 안고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일, 가정, 글쓰기 세 가지 하기도 고된데, 상황마다 카멜레온처럼 그에 맞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투입하는 내가  스스로 기특해서 이 글을 씁니다. 저만 기특한 거 아니겠죠? 저처럼 숨어서, 대놓고 무명이지만 글로 자신을 표현하는 많은 워킹맘의 새벽을 응원하고 싶고, 미라클 모닝, 미라클 나이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누가 알아준답니까? 내가 나를 알아주는 게 가장 먼저이지요. 자책으로 얽혀 우왕좌왕하지 말고, "내가 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타인을 위한 것이구나"라고 대견한 자신을 칭찬하며 한 손에는 펜을 한 손에는 식칼을 빼들고 나아갑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말이죠' 지금 저 혼자 비장미를 뿜고 있는 거 아니죠? 같은 마음인 거죠?

 

내가 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타인을 위한 것이구나



당신이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책을 쓰면 좋겠습니다.
<나나책>프로젝트로 여럿이 쓰기를 성공했습니다.
성인 책 쓰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수강하신 팬이 찍어주셨다는...감사^^


평범한 일상에 일과 가정을 일구며,

벅차지만 쓰는 일을 지속하고 싶은 분들에게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칩니다.

"빳팅팅팅 팅팅구리구리 마수리"


*나나책:<나는 나를 사랑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의 별명이며, 필자가 처음 공저 쓰기 프로젝트 시작 시 네이밍 한 것입니다. 자기애적 제목이지만 많은 독자의 마음이 비슷함을 요즘 확인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dream_sinae(#최신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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