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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09. 2022

'재능'이 되기까지

그 남자의 커피와 축구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두하면 꽤 그럴듯한 수준에 도달하고야 만다.]

그 남자는 잔재주가 없고 잔머리를 굴리지 못한다. 손해를 볼 양이라도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목표가 없으면 세밀하게 듣지 않고 대충 넘긴다. 말이 많지 않으며 필요할 때만 유머를 한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하거나 생각하지 못하는 그는 '척'하지 못하는 상남자다. 끼 부리지 못하며 믿는 대로 살려고 애쓴다. 결국 내 입장에서 볼 때, 잔 재미가 없으며 다정다감하지 않은 경상도 사나이다. '아는(애는)?" "밥 도(밥 차려줘)!)" "자자" 세 가지만 말한다는 전형성에 벗어나지 않는다.


축구사랑에 빠지자 '그냥 공이나 차면 되지 돈을 들여 뭐 하겠냐'라는 나의 반대를 물리치고 몇 년 동안 레슨을 받았다. 몸이 재빠른 이들과 달리 스스로 길들이고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몸에 밴 나쁜 습관을 완전히 빼고 기초로 다지기 위해서라고 레슨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한 시간 돈도 아깝고 효과도 없는 듯했지만, 지금은 매 경기 후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경기는 경기!) 의기양양하게 성과를 뽐낸다.

커피와 20년 차 막역지우가 된 남자는 시중에 알려진 아마추어 수준의 각종 커피 추출방법을 모두 경험했다. 모카포트 두 개를 집안에 들일 때는 그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다. 최근 용돈을 모아(혹은 비상금 인지도 모르지만 내 알 바 아니니) 가정용을 넘어선 도구를 장만했다. 합리적인 중고 가격이라서 함구하기로 했다.


그 남자가 내리는 커피의 산미는 침샘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뒷맛이 깔끔해 그 어떤 기름진 맛과 향이라도 말끔히 상쇄시킬 수준이었다. 작동법이 달라 지금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늘 도와달라는 소리를 앓는 소리처럼 들었지만, 곁에서 관찰하니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 남자의 취미는 커피 사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어 사람들이 즐겁게 향유하는 모습이 꽤나 좋은가 보다. 사람을 향한 그의 커피 취향은 날로 발전하고 있으매 분명하다.

그 남자가 축구와 커피에 몰입하는 오랜 세월, 그럭저럭이던 수준이 꽤나 괜찮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이 사실은 '흥미와 관심이 잘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결국 재능처럼 보일 수 있다'라는 일련의 과정을 방증한다. 열정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스스로 실력이 좋다거나 별로라 판단될 때, 사람들의 피드백이 좋거나 나쁠 때라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섣불리 결과를 따지지 않는 여유는 경쟁을 의식하지 않는 넉넉함에서 나오지 않을까? 무언가 잘하기 위해서는 결국 빵의 발효와 굽기처럼 시간이 필요하다. 성급하게 결과를 타진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포기하지 않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것일 게다.


꾸준함으로 자신을 돌보고 이웃과 함께 하려는 목표만 잃지 않는다면, 없던 재능도 만들어지거나, 잠자던 거인 같은 잠재력이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남자의 열의를 나에게 빗대 보았다. 그 처럼 나에게 부여하신 탤런트를 잘 일구는 게 내가 할 일이다. 재능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자주 반복하다 보니 글쓰기가 익숙해졌다. 깡그리 별로였던 처음보다 나아졌다.  열의가 있을 때 뜨거운 여세를 몰아 썼고, 다양한 이유로 열기가 식을 때도 관성의 힘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간혹 소기의 성과가 있어 포기하지 않았다. 내 책 한 권 쓰고 싶다던 마음에서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주겠다는 열망이 더해지니 힘이 달리든 넘치든 달릴 수밖에 없다. 이런 몰두가 결국 재능이라고 착각할 정도에는 이를 수 있으려나 꿈꿔본다.


그의 열의와 끈기를 닮아 오늘 하루 쏟아지는 글감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사소한 것들을 쌓는 것이 재능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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