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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23. 2022

우유찍먹!!!

글감과 주제와 글쓰기의 어떤 것


우연이었다. 우유에 빵을 찍었다. 하찮은 일상의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우유에 그 빵을 담그면서 나는 일종의 규칙을 떠올렸다. '이 빵은 우유에 적시면 안 된다'라는 생각. 나라를 구할 일도 아닌데 진지해진 순간, 시시한 규칙에 멈칫한 것이 우스웠다. 봉지 커피에 태워먹는 크래커라고 하면 대개 누구라도 어떤 것을 떠올릴 것이고, 우유에 찍어 먹는 것이라면 까맣고 동그란 샌드를 떠올릴게 분명하다. 아메리카노에는 사이드 메뉴로 무엇이고, 짜장에는 단무지라는 등의 조합. 누가 정하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입맛으로 전파한 국 룰. 민심에서 유행하던 것이 광고로 이어진 탓이기도 하다. 이런 하찮은 생각 때문에 나는 선을 넘은 기분으로 빵을 베어 물었다. 이미 적셔진 빵이 머금은 우유를 흘리지 않을 요량으로 손으로 떠받치며 말이다.


규칙을 위반한 결과는 멈칫거림과 달리 훌륭했다. 빵의 사이마다 스며든 우유가 부드러움을 우아하게까지 만들고 고소함이 화려하게 입안에 꽃 피었다. 이것을 어찌 글로 남길지 비교하려 빵을 담그지 않고 먹었다. 카스텔라를 닮은 빵은 그 풍미와 부드러움이 원래도 괜찮았지만, '찍먹'을 경험하니 퍽이나 퍽퍽하게 느껴졌다. 이미 빵을 제조할 때 이미 우유가 들어간 것을 우유에 찍어 먹는 것을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과 김치찌개에 김치 반찬은 기본이라는 정신과 닮은 듯하여 풋웃음이 났다.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 흥미로운 맛에 1분이 안 되는 찰나가 즐거웠다.


입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 흥미로운 맛에 1분이 안 되는 찰나가 즐거웠다.


우유에 적신 빵을 삼키자마자 글감과 글에 대한 관계를 쓰겠다고 노트북을 열었다. 일상의 편린이 글감으로 찾아올 때가 있다. 자주는 찾아야 하고 가끔은 그분이 찾아오시는 게 글감이란 것들의 성질이다. 내가 찾아내든 찾아오든, 글감을 거머쥘 때에는 그 속에 주제가 있거나 주제를 덧입혀야 한다. 혹은 '하고 싶은 말'에 글감을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찾아낸 글감이나 찾아온 글감은 매양 한 가지다. 그리 신선하거나 아주 평범한 범주 안에서 별스럽게 다르지 않다. 오늘 우유에 적신 빵 경험은 찾아온 글감으로 사유를 이어나가 무엇인가 하고 싶던 말과 이어야 했다. 오랜만에 당도한 선물을 쉬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유 찍먹'이라는 하찮은 순간포착에서 무엇을 말할까 몇 차례 고민을 했다.


사람은 일상의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 번뜩임을 느낀다. 그것은 감정이기도 하고 시선의 멈춤이기도 하다. 이상하거나 울컥하거나 짠한, 그런 평이하지 않은 찌름. 그 '순간'은 붙들어 쓴다면 생각을 담는 한 편의 글이 되고, 놓치면 아무것도 아닌 조각이 된다. 산문을 쓸 때, 운문을 쓸 때 이런 찰나는 무척 소중하다. 빵을 우유에 찍는 하찮지만 비 일상적 찔림에서 일전부터 허덕이는 일련의 감정을 파헤칠 수도 있고, 스스로 용기를 가지라 다짐을 찾아내기도 한다. 오래 지속된 지루함과 나태함이 일침을 맞기도 한다.


우리가 평소 하던 행동 중 '마땅하다'거나 '당연히 그래야 한다'라는 습관적 행동과 말과 생각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을 비트는 것, 그것은 쓰는 사람이라면 겪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뻔하게 나열하는 글, 일기에 머무는 글, 나에게 매몰되어 매일 비슷하게 생산하는 글에 체기를 느낀다면 습관을 비틀어 보아 글감을 만나면 어떨까. 우유에 김치라도 적셔보는 시도처럼 어리석어도 괜찮을 듯하다. 찾아오든 찾아내든 만나게 될 새로운 시선이 선물처럼 당도할 것이다. 마땅함을 '다름'의 길로 들어설 때 신선하고 새로운 글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은 누군가에게 글쓰기의 성장을 알려주려 쓰는 게 아니다. 쓰는 행위를 본질로 삼고 즐기다가 조금 멀리 강을 건너 다른 마을에서 헤매는 나에게 찌르는 일침이다. 누추한 일상을 시시한 글로 하찮게 쓰기만 해도 좋았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저 '쓰기'가 아닌, 쓰는 것으로 도달할 어떤 목표에 시선을 옮길 때가 많다. 쓰고만 있는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는 요즘. 쓰는 것으로 돈이 된다거나 쓰는 것이 다음 목표로 나아가는 도구라는 생각이 그리 나쁘지 않지만, 쓰는 기쁨을 앗아가는 일이라면 여기서 잠시 멈추고 싶다. 목표한 책, 투고, 출간 등의 이름을 위한 쓰기가 아닌, 그저 쓰는 즐거움의 행위. 그것을 향하던 둘러 가는 여행길에 지름길도 찾아보려는 시선을 정돈해야 한다. 책을 쓰지 않겠다기보다 즐기던 '쓰기'를 다시 주섬주섬 담아야겠다는 심정이다.


약을 먹기 위해 빈속을 달래려던 빵으로 글감을 삼아 쓰다 보니 여기에 다다랐다. 이른 아침 누가 나를 깨워서 말이다. 빵이 깨웠던지 우유가 깨웠던지, 건조해진 실내공기가 그랬는지 모르겠다. 찾아온 글감인지 찾아낸 글감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촉박한 하루하루에서 시시한 글감을 맞닥뜨리면 지나치지 않고 우유 빛깔 글로 엮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오늘 우아하던 빵이 남긴 인상이겠다. 즐거워서 쓰는 일이 목표와 엉켜 주객전도되지 않을 만큼만. '우유 찍먹' 참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촉박한 하루하루에서
시시한 글감을 맞닥뜨리면
지나치지 않고 우유 빛깔 글로 엮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오늘 경험에서 뽑은 '할 말' 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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