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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07. 2022

가을이면 '시'감상이지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나는 혼자 있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 특이한 기질을 가져서인지 관계지향적 성향이 다분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또래 여자 친구들과 다니길 꺼렸다. 다른 사람의 관심과 감정에 초집중해야 하고, 작은 심리적 변화를 읽어 맞춰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위아래 남자 형제를 둔 나로서,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들인 친구들이 아무리 끈끈한 관계라 해도 다 맞추기는 힘들었다.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게 불안해도 속이 편했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직관적으로 잘 읽긴 하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냥 대충 살고 싶고, 타인도 사소한 것에 애달파하며 연연하는 게 무척 불편했다. 학창 시절 내내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간절한 갈망이 바로 고독이었다.


고독을 갈망하는 간절함에도 나는 사람들과 노닥거리기를 즐겼다. 함께 희희낙락하며 떠들썩하게 시가지를 누비는 것을 즐겼다. 사춘기와 청년기의 치기 어린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혼자 고독 가운데 어찌 보내야 할지 몰랐고,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제대로 존재하는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의 간절한 갈망이 바로 여럿이 함께 연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천성 갈망의 분열을 하나로 소유한 채 젊은 시간을 통과했다. 전자의 갈망은 주도성이 강하며 자기 결정권에 민감한 면일 테고, 후자의 갈망은 주도적인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느끼며 나를 드러내고 싶은 야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은 영 엉뚱하게 다르지 않은 같은 노선의 어디쯤이다.


떨어지고 싶으면서도 가깝길 원하고 서로 참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끈끈하게 위하길 바라는 분열이 나에게만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양가 갈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고슴도치들의 관계성처럼, 떨어져야 상하지 않으면서 추위에 끌어안아야 사는 것처럼, 사람 관계는 영속적으로 멀어질 수 없는 끌어당김과, 완벽한 일치감을 누릴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시적 화자는 뜨거운 일치감으로 가까워지지만, 사람은 서로 동일할 수 없는 다름으로 포갤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며 "내 맘 같은 사람"이나 "입에 혀 같은 사람"이 존재할는지 질문하게 된다. 나와 성격과 외모까지 동일성을 가져 "붕어빵"이라는 소리를 듣는 자녀마저도 생각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아 큰 갈등을 겪는다.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서로 이해하고 수용하려 하면 스파크가 튄다. 다름의 최 극치를 달려 우주 양극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 한 이불을 덮고 반백 년을 사는 부부도 서로의 다름으로 주름살의 깊이만큼 오래도록 심각하게 싸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지 않는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족만큼은 선천성 사랑으로 똘똘 뭉쳐 어떤 모습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반대일 때가 많다. 가장 오래 서로의 치부를 관찰한 관계로 수용과 이해의 대척점에 서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반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가진 그리움, 그리고 자기중심으로 인한 밀어냄은 동전의 양면처럼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면서도 하나인 것이다. 시인은 화자를 통해 심장이 같은 위치인데 안으려 하면 서로 포개지지 않는 구체화된 상황을 포착해, 인간의 갈망과 거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어제의 나도 나와 가장 닮은 이의 의도를 다 알면서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상처를 주고 말았다. 자주 있는 일이라 이골이 났지만,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 나의 선천성 갈래길의 두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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