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엄마]는 자기 계발서 읽고 부자 되기에 열정을 쏟는 많은 프로 새벽기상러와 깨어있는 주부모임과 조금 다르다. 시를 슬로리딩 하고 시에서 얻은 위로나 인사이트, 혹은 인생의 질문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글로 옮겨보는 모임이다. 글쓰기 중심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독하는 모임도 아니다. 작품의 깊이 가운데 들어가는 심화 독서토론 모임도 아니다.
시에 매료되고 시어에 매달려 온갖 힘든 마음을 추슬렀다. 시인이 시를 쓰고는 독자에게 해석을 종용하지 않는다. 시를 향유하는 몫은 독자에게 있다. 시인이 교과서 해설서처럼 정형화된 정답을 제시한다면, 우리는 시집을 들고 고시 공부하듯 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시에 대해 함구해야 한다는 팁이 존재하는 이유다. 감히 나에게 와닿는 시어나 구절과 시의 정서나 시적 화자에게 느끼는 동감을 마음껏 발설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시 앞에 보편적 기준을 내려놓고, 나의 읽고 이해함을 신뢰하기로 했다. 이 용기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1기에는 자신과의 용서, 이웃과의 화합을 위한 오은영 박사의 <화해>를 읽었다. 그리고 2기에 본격적으로 시를 읽기로 방향을 잡았다. <사라지는 윤곽들>를 선택했고 권덕행 시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다른 문인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시인 중 하나로, 실용적인 글을 쓰다 보니 시라는 장르로 전환이 어려워 잠시 시 쓰기를 멈추고 있을 때, 권덕행 시인과 함께 문인 모임을 하게 되었다. 합평을 하면서 서로의 시에 질문하는 시간은 고요하게 뜨거운 시간이었다. 이런 영광스러운 인맥으로 그녀가 최근 출간한 첫 시집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와 나눈 뜨거운 말들이 없었다면 이 시를 믿고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 마다 시에 대한 호불호가 다르다. 그리고 시 읽기를 즐기는 많지 않기 때문에(나의 인맥의 1%로 시를 접하지 않는 현실을 볼 때) 시인과 시집을 선택하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6주 동안 시집 한 권을 슬로리딩 하고 서로의 나눔과 질문을 나눴던 터라, 실제 시인과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과감한 결심을 했다. 권덕행 시인에게 사적인 부탁을 했고, 흔쾌한 허락을 받았다. 오로지 인맥 하나 믿고 베푸는 선물임을 나는 안다. 이번 만남이 얼마나 귀한지, 대개 개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찾아 북 토크를 갈 수 있다. 6주 동안 깊이 나누던 시를 쓴 살아있는 시인을 밀도 있게 만날 수 있는 경험은 나도 해보지 못했다.
오늘 11:30분 시인을 모시고 화상으로 만나는 시간을 많지 않은 멤버 모두 설렘으로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