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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15. 2022

가을이면 '시'읽기로소이다

김나영 <비유의 외곽>

비유의 외곽


                                             김나영


도색공들이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있다

비계보다 더 높은 곳에 생계가 있다 외줄은 언제나 거기서 내려온다

외줄에 비계를 세우고 허공을 발끝에 친친 감아 신고 목숨을 붓으로 사용하는 숙련공들

온몸을 구부려 색과 선을 덧입히는 저들의 곡예는 서커스도 예술도 아니다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수직의 허방에서

그들의 붓질은 놀이도 자유도 아닌, 동료의 얼굴에 묻은 페인트 자국을 마주 보며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먹는 식어가는 짜장면의 온기 같은 것

사방이 낭떠러지다 사방이 절벽이다 삶이 줄타기다 저들이 움직일 때마다 앞뒤 좌우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확장되는 외연들, 비유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가파른 사각지대에서 수당처럼 피어오르는 아찔한 페인트 향

헌 아파트가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도색공이 허공에서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건물 상단에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그려내는 장면을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보고만 있는데도 오금이 저렸다. 보통 사람보다 간이 크지 않고서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삶은 말로 표현하거나 그려내는 것보다 더 실제적이며 깊고 무겁고 어렵고 복잡하다. 다시 생각하니 실제 그 일을 수행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허공에 몸을 매단 것일 텐데 대단하다고 찬사를 보낼 일인가 싶다. 목숨을 담보 잡고 생업에 매진하는 직업군은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 실제 그들이 감내하는 것을 담아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차분해진다.


부모님은 손톱 언저리가 늘 갈라 터져 하얀 반창고를 붙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부모님의 손을 생각하면 하얀 반창고로 친친 감은 게 떠오를 정도다. 겨울에는 특히 더 심해졌고, 일요일에 정갈하게 차려입고 예배당에 가려할 때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는 넥타이를 매기 힘들었다. 실크나 부드러운 원단이 거친 손가락을 만나면 순식간에 '고'가 난다. 몇 가닥의 실이 뽑혀 버리는 넥타이가 많았다. 엄마에게는 스타킹이 고질적 문제였다. 얇은 스타킹에 엄마의 손이 닿으면 어김없이 고가 났다. 손에 로션을 여러 번 바르고 침을 발라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퍼가 달린 넥타이를 주로 사용했고, 나는 엄마의 스타킹을 신겨주곤 했다.


부모님은 새벽같이 도매시장으로 가서 신선한 청과물을 떼와서 파는 소매상으로 평생 사셨다. 목장갑에 고무장갑까지 끼고 일을 하지만, 마늘을 까거나 주문받은 대파를 까주려 할 때 맨손으로 하는 게 일도 빠르고 정확해서 장갑보다는 맨손을 선호하셨다. 겨울이면 배추를 절이고 시린 손을 온수에 담그면서 일을 하실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피부가 견디기 힘든 게 당연했다. 나는 부모님의 손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었다. 어떤 일을 어떤 강도로, 생계에 대한 중압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모님의 직업을 최대한 알리지 않으려 했었다. 불혹이 지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부모님에 대한 글이 빠지지 않았다. 쓰면서 많이 먹먹했고 쓴 글을 읽으며 울 때도 많았다. 부모님의 무게를 알지 못해 거침없이 했던 소리와 불온한 언사가 밟혔다. 부모님의 삶은 나의 글에 다 담을 수 없는 외연을 가졌다. 식은 밥이나 서걱대는 무를 베어 먹던 부모님의 모습은 아름다운 시어로 옮기거나 멋들어진 비유로 담을 수 없는 장르였다.


시인이 하고자 하는 말이 이런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낭떠러지와 절벽 같은 사방에 둘러싸여 줄타기하듯 산다는 비유처럼, 우리의 말과 글과 인식하는 것보다 실제 삶은 더 위중하고 묵직하고 복잡하다고 이해하고 싶다. 우리 부모님의 삶이 그러했고, 우리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이 된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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