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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04. 2019

치료하는 독서수업

그만 말해!

"선생님 우리 엄마도 ~~"

"저는 어제 아빠가~~"

"우리 할아버지 집에 개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는 수업 중에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읽다가도 혹은 낱말놀이를 하다가도 관련된 이야기가 생각나면 말을 하지 않으면 못견뎌 한다. 온몸을 비틀고 자기 목소리에 내가 응답할 때까지 선생님, 선생님을 외쳐댄다. 그 소리가 거슬리고 진행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 하고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아이의 헛헛함이 염려되어 될수 이있으면 다 들어준다. 그래서 공개수업 평가에 학부모들의 피드백중 이런 내용이 많다. 아이들의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고 대답해주시는 모습에 감동먹었다는 내용이다. 학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방과후에서 많은 말을 풀어낸다. 교과내용을 배우는 교실 환경보다는 방과후 수업이 편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집에 뭐~있어요라던가 어제 외식을 했는데 어디를 갔다는 뜬금없는 이야기는 수업 핵심 내용과 관련이 적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끊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들의 얼굴은 정말 실망이 가득하다. 소수의 아이들에게 더 밀도 있게 소통하고 싶지만 방과후 교실 환경은 그렇지 않다. 20명이 정원이며 10명이상이 구성원으로 참여할 때는 북적거리는 통에 아이들의 발표기회를 더 주고싶어도 시간이 부족하다.


가끔 가정사에 힘든 사건을 웃으며 말하는 아이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동의를 받아 그 얼굴 근처에 다가간다. (요즘은 아이들은 신체접촉도 불쾌해 하기 쉬워 필히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다가가 '웃으며 말한 사건에 대해 어떤 기분이었냐'고 물어보면 웃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해지고 침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무릎 꿇어 그 옆에 눈높이를 맞추게 된다.  슬픔을  밝음 뒤에 감추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이를 발견하면 먹먹해진다.  다른 친구들이 화장실을 간 틈에 그런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본다. 부모님의 잦은 싸움. 공부에 대한 엄마의 과한 압박, 학원스케줄이 너무 많이 매일 밖에서 간식으로 때우는데 빨리 집에가고싶다는 말말말, 동생만 예뻐하고 자기는 신경도 안 쓴다는 말을 할 때는 제법 심각해진다. 반에서 괴롭히는친구이야기, 여자친구 세명이 친한데 서로서로 삐치고 화해하며 맘상하는 이야기, 선생님께 혼난 이야기 등등등. 가벼운 사건에서 무거운 일까지 아이들은 투명하게 열어보인다. 아직 불투명한 유리뒤에 감정을 숨기는 기술을 연마하지 않아서인가 보다. 아이들의 투명한 유리에 묻은 얼룩을 닦아주고 싶다.과연 독서 논술 수업으로 가능할까?


아이들도 자기들 세상에서 나름 많이 힘들다. 이야기를 발설할 때 감정의 수위가 내려간다. 혹은 상대의 입장도 이해하게 된다.내가 할 역할은 공감을 많이 해주고, 상대방이 그 때 어떤 표정이었냐, 어떤 말을 하더냐, 엄마는 요즘 힘들어 보이지 않냐는 질문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기가 억울하거나 슬픈감정에서 고개를 든다. 상대방의 입장이 깨달아지는 순간이다. 초등학교 2학년만 되어도 타인의 감정 수월하게 예측한다.


"오늘 가서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내일 그 친구와 다시 놀꺼야?" 이런 질문만 하면된다. 아이는 눈을 굴린다.

"선생님은 이렇게 용기내서 말해볼꺼 같은데? 엄마랑 눈을 맞추고 엄마, 나 지금 진지한데~라고 말해봐! 선생님도 딸이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 하자고 하면 정신이 번쩍들고 주의깊게 들어준다니까. 네 엄마는 네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있다니까. 용기를 내봐"


짧은 쉬는 시간, 아이들을 보낸 후 남은 아이와 가지는  몇 분 간의  소통이다. 아이들은 동기부여 하는 내용을 이해하면  눈을 반짝인다. 엄마에게 말하면 혼이 나지 않을까 두려워 하며 참고 있던  아이가 힘든 이야기 꼭 할꺼라고 씩씩하게 보조 가방을 돌리며 나갈 때면 내 마음이 시원하다.


이렇게 아이들의 힘든 마음을 알아채고 이야기를 나누면 허비되기보다 유익이 더 많다. 내 아이가 나와 갈등에서 어떤 기분일지, 어제 다투어 속상한 친구에 대해 어떤 기분일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가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기억하며 아이와 대화한다.

아이는 어느새 밝아지고, 내일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보겠다고 결심한다. 내아이는 많이 자랐다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들어줄 이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아이의 불만이나 슬픔을 들어주면 수위는 내려가고 아이눈은 어느새 다시 반짝거린다. 눈물이 웃음으로 바뀐다.


공감 하나가 가져다 주는 선물을 학교와 가정에서 누리고 있다.
아이들이 가벼워지는 시간,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 보여 주는 시간
내 시선이 바뀌는 순간, 내 아이에게 다가가는 소통
주는 것보다 받는 게 많은
나는,  방과후 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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