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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08. 2019

_________곶감 여덟개  (우유 알레르기에 대해)

초보시인 생활에세이

잘 말린 곶감을 선물 받았습니다. 포장지에 매끈히 쌓여 맛이 좋아 보였습니다. 냉장고에 두고 가끔 하나씩 꺼내 먹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의 계획은 지극히 나 중심적이었고 사소했습니다.


큰 아이가 입이 심심하다고 식재료만 듬성듬성한 냉장고를 자꾸 열었습니다. 한번 열면 50원 치 전기가 소비되니 용돈에서 까겠다고 겁박해도 도통 겁을 내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레이더망에 포장지에 네모반듯하게 쌓여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곱디고운 덩어리가 포착되었습니다. 하나를 꺼내 야무지게 씹더니 얼굴이 환해져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사춘기의 비판적인 눈빛이 살짝 녹아 부드러워졌습니다. 호랑이도 벌벌 떨게 했다던 곶감의 위력이 저런 것인가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30개들이 중 한 알이 빠져나갔음을 속으로 헤아렸습니다. 선물 받을 때 원형을 보존하는 게 목표인 사람처럼.


사실, 나는 곶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껍질을 깎아내고 말린 탓에 꾸덕꾸덕해진 표면이 부드럽지 않아 싫습니다. 겉과 달리 속살은 한없이 물컹한  표리부동에 질려 한 입 베물면 끝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귀한 곶감 선물은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소유욕일지도 모릅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중학교 입학 후 다이어트를 노래한 지 오래된 아이는 매일 한알씩 곶감을 빼먹었습니다. 구멍이 나기 어렵지, 쌀 포대에 그 작은 구멍 하나 생기면 쌀이 줄행랑치며 빠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좋아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소유자인 나는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안 먹는 걸 왜 신경 쓰냐는 자책을 하며 말이죠.


이미 곶감은 선물 받은 원형이 흐트러져 냉장고 문 안쪽 선반에 놓여있었습니다. 작은 아이도 나와 입맛이 같던 터라 곶감은 즐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니의 뒤늦게 홀릭된 간식에 곶감을 몇 번 입에 댔습니다. 곶감은 너무 달았나 봅니다. 둘째는 자신의 용돈을 담보 잡고 냉장고 문을 자주 여닫는 언니와 달리 곶감을 먹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경쟁자가 줄어든 것이었지요. 자식의 식욕저하를 기뻐하는 내가 생경했습니다.


방학을 맞아 아는 지인의 아이들이 방문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우유 알레르기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간식류에 우유가 함유되어 있음을 알게 해 준 아이였습니다. 우유 알레르기로 인한 두드러기로 응급실행 훈장을 많이도 소유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7세가 되어서는 냄새로 우유 함유 여부를 구별하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후각유류변별자격증이 있다면 1급이겠지요. 그래서 그 아이의 간식은 천연식품이 많았고, 과자 중에도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 몇 개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친구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뒤로 물러서서 다른 곳을 보곤 합니다. 과자 중 몇 가지만 먹을 수 있어 그 과자가 있는지 가장 먼저 살피고, 그 과자가 없을 때 무척 실망한 표정을 짓습니다. 셀 수없이 많은 과자 중 한 두 가지라니요. 마*쮸나 젤리류도 먹을 수 없는 종류가 더 많아 어릴 때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몇 달 전인 어느 날 방학 때 캠프를 한다고 모였습니다. 후원받은 간식을 펼치자 아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오전 간식타임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없었습니다. 뒤로 물러서서 마치 통달한 도인처럼 앉아있던 아이는 많이 속상했는지 엄마가 나타나자 바로 편의점으로 가자고 보챘습니다. 대체할 간식을 뭐라도 먹어야 마음이 풀릴 듯 눈물지었습니다.


얼마나 속상하고 참았을지 헤아리는 아이나 어른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가 사는 세상과 보통의 아이들의 세상은 많이 달랐습니다. 보통 아이들에게 기호인 것이 그 아이에게는 응급실로 실려가야 할 생사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물론 알레르기로 인한 선별적 식품 섭취는 장기적으로는 유익이 되겠지만, 눈앞에 차이를 경험하는 아이에게는 소외와 외로움이며 실망과 자기 원망의 문제가 될 수 있었겠지요.)


곶감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아이들이 놀러 온 날 유독 간식거리가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원래 과일을 즐겼습니다. 아이가 홍시나 곶감을 좋아한다고 할 때 웃었습니다. 그냥 먹는 정도인 줄 알았습니다. 일전에 친정어머니가 시골에서 말린 색이 너무 진해진 곶감도 잘 먹던 아이였습니다. 곶감을 먹을까 싶어 냉장고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용돈을 담보 잡히지도 않고, 월삯을 받으려는 임대업자처럼 곶감을 꺼내려 냉장고로 당당히 향했습니다. 그 모습이 우습고 짠했습니다. 아이는 바짝 마른 감씨와 감꼭지를 주방 쓰레기통에 차곡차곡 버렸습니다. 아이는 물을 자주 찾았고, 빈번하게 냉장고를 여닫았습니다.  


내 자식이 곶감을 한알씩 빼먹을 때 바짝 긴장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눈치채기도 전에 8알도 남지 않은 곶감 봉지는 냉장고 한편이 아닌 소파 손잡이 위에 떳떳하게 올려져 있었습니다. 괜찮았습니다. 큰아이가 빼 먹을땐 아까운 마음이었지만 이 아이가 먹는 것은 기뻤습니다. 일주일전 이 아이와 약속한 게 있었거든요. 곶감이 생기면 네꺼 꼭 챙겨놓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아이가 요괴 메카드(요즘 힙한 남아 장난감) 주인공을 흉내 내면서 오른손에 곶감을 들고 있었습니다. 나와 한 약속을 이행하고 있는 저의 기억력이 기특했습니다. 그때서야 내가 왜 곶감을 잘 보존하려고 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해 줄 아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지도 않으면서 줄어드는 것에 긴장하던 이유가 따로 있었습니다. 공연히 소유욕이라고 나 자신을 윽박질렀던 게 우스워졌습니다.


홍시 철이 되면 아이가 생각났었습니다. 곶감이 판매되는 겨울이면 아이가 생각났었습니다. 생각만 났지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했습니다. 나의 미안함에 비하면 냉장고 문은 백번 여닫아도 아깝잖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번을 여닫아도 좋으니 건강한 것을 먹고 씩씩하게 자라기를 바란다고, 여의봉을 흔들며 주인공 캐릭터를 곧잘 흉내 내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속삭여 보았습니다. 아주 소심하게요. 못들었을 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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