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합을 맞춰 일상을 살아내는 중, 지인의 가정에 복잡다단한 일들이 생겼다. 사람은 오버된 인생의 무게를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다. 위로가 충분치 않을 지인을 만나보니 의외로 밝아 안도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고양이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고상하고 묘한 표정으로 소파 위에 앉아있었다. 온화하고 넉넉하게 집을 채우는 그림이 오래된 풍경 같았다. 지인이 안쓰럽게 여겼던 그 아이가 되려 사람을 채워주던 장면에 어떤 힘이 있는지 며칠 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퇴근하기 50분 전, 봄맞이 대청소에 열과 성을 다해서인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선생님에게 냉큼 다녀오겠다고 말했지만, 동네 유일한 그 가게는 이미 재료 소진으로 메뉴 주문이 불가했다. 때마침 재원생 한 명을 만났고, 떡볶이를 놓친 아쉬움을 아이에게 전했다. 평소 힘없이 "선생님,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죠?"라는 멘트를 하던 아이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이더러 아쉬움을 몇 번이나 말했고 다른 방법이 없을는지 물었다. 아이와 헤어진 후 간신히 허기를 채우고 일을 마무리했다. 퇴근한지 얼마 후 그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했다. "선생님, 애가 선생님 배가 너무 고플 테니 뭐라도 드셔야 한다고 해서 학원 밑에 왔는데, 계세요?"라는 게 요지였다.
경쟁 앞에서 누군가 제쳐야 살 수 있다는 전설을 믿는지, 우리는 고군분투로 팍팍하게 산다. 그런데 가끔 훅 치고 들어오는 장면에 환기를 하곤 한다. 학모와 통화로 저녁을 먹지 않았지만 속이 그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평소 아이의 힘없는 목소리나 피곤함이 안쓰러워 작은 간식을 쥐여주곤 했는데, 오늘 몇 곱절 큰 아이의 마음을 복리로 돌려받은 듯하다. 속 깊고 인정 어린 아이의 어깨가 넓어 보이는 순간, 서로 기댈 수 있는 존재여서 감사했다. 오늘 짜증스레 통화한 친정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 이번에는 내가 어깨가 되어줄 차례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