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Jan 22. 2019

______부부 대화의 사소한 비결

원하는 한 가지를 맞추는

남편이 전화가 왔다. 쩝쩝거리는 소리가 아주 달다. 누가 밥 먹을 때 달그락 거리는 게 싫다고 하던데, 그리고 쩝쩝거리는 소리에 진저리를 친다는데 나는 다르다. 달그락도 좋고 쩝쩝도 좋다. 나에게 도시락을 싸 달라는 말만 해주면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이 된다. 그렇게 즐겁게 싸준 도시락을 표가 나게 먹는 인증 행위 또한 사랑스럽다.


여권 신장으로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함부로 말하기 뭐한 세상에 살고 있다. 나는 여자의 일, 남자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남편이 내가 싸준 도시락을 맛나게 먹고 전화를 해서 티 나게 확인시켜주는 상황이 매우 흥미롭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수련회를 가면 이부자리를 펼쳐주고 배까지 이불을 덮어주던 나다. 친구들이 "네가 엄마냐, 자꾸 애 취급하지 마"라는 말이 기억이 난다. 심각한 친구들 표정에도 나는 싱글벙글했다. 정신이 멀쩡했는데 말이지. 나의 엄마 역할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만큼 강하게 내 무의식을 흔들어 행동하게 했다. 타인의 평가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은 자신이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한다는 말이 있다. 백배 공감한다. 엄마로부터 충분한 모성을 채우고 싶던 어린시절, 엄마처럼 누군가를 극진히 돌보고 싶었다. 아니, 엄마란 그렇게 극진히 돌봐주는 존재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첫애를 극진히 돌보았다.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키웠다면 말 다했을 만큼이다. 오냐오냐 한 것이 아니라, 수다와 질문과 대답에 지치지 않고 스텐바이 하던 엄마였다. 아이와 소통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게 엄마라고 스스로 생각해서 실천한 것이다. 내 인생을 거쳐간 사람 중 좋든 싫든 나의 모성 흉내를 당한 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시상식 수상소감 스타일로)


이제 아이들은 내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자, 눈을 돌려 남편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오래 맞추며 살아와서 더 요구할 것도 더 섭섭할 것도 많지 않다.(없다는 것이 아님을 꼭 말하고 싶다. 내 글을 남편이 구독 중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아직도 말해줘야 섭섭함을 눈치채는 그 감각은 어느 별에서 온 건지 의문투성이의 사람이지만)


남편은 축구에 심취했다. 중년이 되어 국가대표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망언을 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유일한 요구는 하나다. 축구경기에 응원을 오라는 요구다. 별로 신통찮게 반응했더니 자신의  골인 점수에 과격한 리액션을 해주길 바란다. 못 이기는 척 칭찬일색이었더니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아했다. 유치한 것을 알면서도 입꼬리가 하늘로 향하는 표정이 우스웠다. 그저 축구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당신의 축구실력에 대해 거짓에 가까운 찬사를 해주면 일주일이 싱글벙글했다. 남편의 요구는 이것 하나였다.


나의 요구는 이것 하나다. 남편이 내게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하면 얼굴이 펴진다. 다이아도 필요 없다.(받은 적이 없어 그 기분을 모른다. 누가 내게 그 기분 좀 알려주면 좋겠다.)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하고 나중에 싹 비운 도시락 가방을 가져다주는 것에 강한 기쁨을 발사한다. 틈만 나면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줄까 물어본다. 남편은 한 번 맛있다고 대답했다가 덫에 걸려든 사람처럼 귀찮아했다. 그렇게 좋으냐고 묻길래 나의 유일한 한 가지 요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은 가끔 도시락 싸기를 허락한다.(비굴하게 허락받을 정도로 도시락 싸기를 좋아한다.) 제발 도시락을 싸드리도록 허락을 해주십시오. 이 얼마나 여성인권강화 시대에 할 소린가. 그런데 그게 그리 좋으니 나의 엄마놀이 병은 어쩔 수 없다.


쩝쩝 거리는 소리는 나에게 들으라고 내는 소리다. 내가 무얼 기뻐하는지 아는 남자다. 내가 쉬운 것인지 노련한 것인지 많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지금껏 살아왔으니 이 정도 눈치도 없으면 사람이 아니지 않겠는가. 처음에는 몇 번 싸준 도시락을 쥐도 새도 모르게 구석에 뒀다가 벼락같은 호통과 눈물바다를 겪어 나름 노력을 했던 남자다.


남편은 일부러라도 인증 소리를 전한다. 사진까지 찍어 보내라는 요구는 너무 과하다 싶어 늘 참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겠다고 도시락 인증샷을 요구했더니 바로 답이 왔다. 넌더리 난 사람의 한 마디 "바쁘다".  정말 쿨가이 아닌가. 나쁜 상남자의 포스 뿜 뿜! 내가 도시락 싸주고 이런 냉대를 받다니. 그래도 내일 도시락 싸 달라고 말해줄 순 없겠나요~또 비굴해진다.


내가 흥미 없는 축구 레퍼토리를 참고 들으며 창의적 찬사를 쏟아부어주는 정성을 생각하면 남편은 괴로워도 내 도시락을 먹어준다. 심지어 쩝쩝 소리 내는 인증 전화까지 해주는 것.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이 별 탈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꿀팁이기도 하다.


사소한 상대의 기쁨 포인트

하나를 제대로 들어주기.

서로 만족시켜 주려고

한 발 물러서 주기


이 땅의 부부 사이좋아지기 쉽겠죠

작가의 이전글 ________부부의 페어플레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