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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Feb 06. 2019

명절에 어떤 대화를 하나요?

TMI 가 다시 그리운 막내며느리.

남편은 삼남이녀 중 막내다. 삼남이녀라는 표현이 얼마나 남성 위주의 단어인가를 논하고 싶지만, 나는 그런 단어에 발끈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라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누님으로부터 아래 4명이니 2녀 3남이 맞는 말이라는 것만 밝히고 싶다. 미리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어머니에게는 살뜰한 딸 두 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뜰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얼쑤~지화자~같은  추임새를 잘하는 아들 세명이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해본다.

명절이면 삼 형제들 오롯이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처음 시집와서 가장 이해가 안 된 장면이 있다. 예전에 방송된 사극을 무한리필, 아니 무한 시청하는 장면이 가장 이해가 안 되었다. 허준, 이순신, 태조 왕건, 대조영 등은 장기 애청프로이다. 어깨가 태평양보다 넓은 삼 형제분과 어깨가 대서양처럼 넓으신 어머니, 두꺼운 가슴팍 너비도 닮은 네  사람은 뒤에서 누워 주무시는 가냘픈 시아버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볼륨을 높여 시청한다. 시청에만 그치면 조용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데 절대로 침묵이란 없다.


장면 장면에 덧붙이는 시대와 역사를 논하는 어머니의 호탕한 말씀이 있다. 사실, 흥선대원군의 오른팔이셨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자세하며 설득력이 있다. 어머니는 TMI의 전형이시나, 놀라울 정도로 진정성을 전하시는 능력이 있다. 삼 형제 모두 돌아가며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엮어 이야기를 나누니 건설적이어서 말릴 수도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어머니의 정보를 꺽을 만큼의 언변을 가지신 분들이란 사실이다. 10번도 더 본 것을 마치 처음 시청하듯 흥미진진한 네 분의 똑같은 표정이 낯설고 이해가 안 되었다. 이것뿐 아니다. 티브이 시청은 기본이고 다른 이야기 주제가 나오면 티브이를 끄고 이야기 삼매경이 시작된다. 그 주제가 매번 똑같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뿐이다. 그 주제 몇 가지를 말해보고 싶다.


일단  키 우는 이야기가 기본이다. 도심지에서도 외곽이 사시는 시부모님이시라 소를 키울 우사가 근처에 있다. 시부모님은 젊은 시절 가난해서 이뤄보지 못한 목가적 꿈을 말씀하시곤 하셨다. 남편이 유아시절 집안이 너무 가난했다. 소는커녕 전기불도 안 들어오는 시골이라 호롱불을 켜서 지냈다고 한다. 이웃집에 쌀을 빌려야 하거나 술을 좋아하시는 할머니의 외상술값을 갚기 위해 동리를 헤매야 하는 이야기는 동일 시대라고 믿을 수 없었다. 동일 시대에 우리 집은 내가 유아시기 도시로 나왔고 전기불 아래에서 레고 블록을 만지며 놀았다는. 놀랍게도 나와 남편은 동갑이다. 그런 가난한 시절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어 설 전날 새벽 2시까지도 달릴 때가 있다. 그 긴 시간을 소를 키우는 이야기에 전념할 수 있는 어머니와 삼 형제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벽이 맞도록 소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그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야기를 몇 년 하다가 결국 삼 형제는 돈을 모아 소 4마리를 사드렸고, 그 이후 소키 우는 이야기로 넘어갔다. 소 키우는 이야기는 이상만 가지던 두 분이 소에게 줄 마른 볏단을 구입하는 문제에서 소에게 줄 마른풀을 자르는 노동의 벅참과 겸해서 줘야 하는 소 사료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현 정부의 문제와 경제정책까지 논하며 달린다. 결국 아버님의 고달픔이 극에 달하고 소가 10리를 넘어서고 소값의 절대적 하락으로 아버님의 소키우는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아들들을 향한 원망과 함께. 소를 사드리고도 원망으로 끝날 줄 알았던 소 이야기는 염소 이야기로 넘어간다.


염소 9마리를 사서 키우는 이야기를 소 이야기와 병행하며 소 키우는 것보다 낫을 것이라는 시어머니의 혜안에 설득된 아들들은 또 돈을 모아 염서 9마리를 사드렸다. 소 주제가 내려가고 염소가 주제가 되면서 처음 일 년은 좋았다. 염소의 생산성, 새끼 낳는 이야기, 흑염소의 건강에 끼치는 유익 등 앉은자리에서 5~6시간은 그저 흘렀다.


문제는 일이 년이 더 지나가는 동안에 일어났다. 염소가 여름에 모기가 꾀어 병이 들거나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야기에 모기약을 사다 날랐다. 그러더니 가장 큰 문제에 봉착했다. 지인 위주로 염소를 판매하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인맥이 끊겨 염소 판매처를 구축하지 못한 데서 왔다. 그리고 이번 설에 몇 마리 안 남은 염소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더 이상 아무도 어떤 짐승을 키우면 돈이 된다더라, 어떤 가축이 키우기 쉽다더란 말을 나누지 않았고 어머니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큰 아주버님이 토종닭은 어떠시냐고 물었지만 예전과 같은 대화 주제가 되지 못했다. 어머니는 반응하지 않으셨다. 주 수입이 자식들의 용돈과 노령연금 등이신 두 분의 열정과 호기로움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가축 키우는 이야기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이번 설을 맞아, 두 분이 많이 노쇄하셨음을 느꼈고, 그와 동시에 어머니가 준비하는 음식의 양과 "이것도 구워라, 저것도 해보자"라는 말씀이 없으신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직 토종닭 이야기나, 거위를 키우는 이야기, 그 외에 다양한 가축 키우는 이야기에 관심이나 지식은 없지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새벽을 맞도록 어머님과 아버님의 건강과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 토종닭 키우는 게 그래그래 좋데요, 사 드릴 까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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