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디국 달인이 되기까지
우리동네 INTERVIEW #3
<고디국>
나이가 지긋하시어 협동조합의 대표로 일하신다는 이*희님은 소녀 같은 목소리와 진지한 태도로 처음 만난 필자를 반겨주셨다. 본인도 주최 측이 아니지만 자신의 일처럼 마을의 문화향상에 이바지하고 싶어 하셨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시며 가장 먼저 박수를 치고 가장 깊이 공감하셨다. 추억의 음식을 말하게 되면 친정어머니가 많이 나오건만 그녀는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고디국 아시죠? 그것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너무 서민적인 음식이라 누추하네요. 저는 대구 토박이고 부모님이 직물공장을 운영하셔서 바쁘셨습니다. 몇십 년 전 대구는 섬유의 도시로 부상하며 공장이 팽팽 돌아갔었죠. 그러다 보니 부모님의 얼굴을 볼 기회가 적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던 제가 밥을 했었어요. 어머니는 늘 국을 한 솥 끓여놓고 일하러 나가셨어요. 이렇게 서두가 긴 것은 제가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공장에서 일해 주시는 주방 아주머니가 챙겨주시는 반찬을 자주 먹었거든요.
그러다 결혼을 했어요. 시댁이 대구에서도 구석진 곳이라 발전이 안된 곳이었어요. 시댁이 도시 외곽에 있어 서 시골음식을 많이 먹게 되었어요. 어머니의 단골 메뉴는 고디국이었어요. 다슬기, 올갱이국 이름이 다양하던데 저는 고디국이라고 할게요. 처음에는 이상한 냄새에 꼬불거리며 말린 다슬기가 이상해 먹질 않았어요. 그런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먹게 되었죠.
문제는 시어머니가 일요일만 되면 교회를 가신다고 오라 했어요. 한 시간이나 걸려 시댁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가 볼에 담긴 삶은 고디(다슬기)를 가져오셔서 그걸 까라고 하셨죠. 저녁이 될 때까지 손가락 아프게 이쑤시개로 그걸 까요. 톡 찔러 도르르 돌리면 다슬기 알갱이가 나오는 거 아시죠? 끝이 초록색인 그걸 반나절 까서 드려요. 그러면 고디국을 한솥 끓일 때까지 집에를 못 가죠. 처음엔 그게 그리 편하진 않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시집와서 제일 먼저 어머니 부엌에 따라 들어가 음식 보조부터 했으니 처음엔 마음이 별로였는데 요즘 제가 한 달에 한번 고디국을 일부러 끓여먹는다니까요. 그리고 주변 지인들도 맛있다고 끓이는 날을 알아 챙겨달라 부탁하면 여간 자랑스럽지 않아요. 친정어머니에게 못 물려받았던 손맛을 시어머니에게 물려받기도 하나 봐요. 참고로 시어머니는 미*이라는 조미료를 쓰셨는데, 저는요 조미료 하나도 안 쓰고 그 맛을 낸다니까요. 조미료는 안써도 좋은 들깨가루만 넣으면 고디국은 성공이예요.
나아가 우리 먹거리에 대한 협동조합을 운영 중인데 제 고디국이 예약 기본에 끓이자마자 다 팔리는 효자상품이 되었답니다. 다 어머니 덕분이죠.
(그녀의 추억 인터뷰를 이야기로 재구성)
<고디국>
다슬기 속빼며 시집온 것 한숨짓다가
물려주신 국물 맛 이어지면
들깨가루처럼 구수한 감사가
꽃처럼 피어납니다.
-----(신애: 그녀의 추억을 시로 재구성)
*동네책방[책방 i] 프로젝트:추억의 음식 인터뷰 후 시를 써주는 작가로 참석했어요.
*현재 [꿈꾸는 글 공방] 대표
*공저시집 출간
*등단 시인
*에세이 출간 준비 중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신애'작가에게 있습니다.
*작가 이벤트*
여러분의 사연을 프로필 제안하기나 댓글로 보내주시면 시를 써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