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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28. 2019

크리스마스에 쫄았던 이유

비교하면 흔들리는 부모의 교육철학

"동네 학원가 풍경을 사적으로 씁니다. 일반화할 수 없지만 다들 비슷할도 몰라요*

크리스마스가 무사히 지났다.  즐겁게 지나간 게 아니라 무사히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공방은 학원 빌딩 빼곡한 숲 사이에 끼어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말과 글 읽기, 쓰기가 중요하다지만 영, 수학에 밀려 "학원 시간이 안 맞아 공방 그만둬야겠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 공방이지 않는가. 교과목을 다루는 곳이 아니니 눈에 보이는 성과를 즉시 보여줄 수 없어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렵다. 교육의 근본이 우리의 말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부모님들의 지지와 공감으로 매일 힘을 얻지만 현실은 현실인 것을.


어린이날도 잘 지나갔었다. 큰 파티는 못했지만 소소한 선물로 위기를 넘겼다. 핼러윈에는 동네 아이들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망토를 걸치고 돌아다녀 미쿡에 온 것만 같았다. 빼빼로데이 같은 ~데이가 얼마나 많은지. 국경일도 명절도 아닌데 아이들이 더 기다리는 기념일이 많다.


엄마표의 소신을 유지하며 독서를 교육의 최고 가치로 믿고 아이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옆집 아이들 모두 영, 수학원 기본에 기타 사교육을 시키는 틈 사이 버티다가 입시학원을 고민하게 된다. 가끔 단원평가에 모르는 문제가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학원을 안 보내서 그렇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높아진 모두의 기준에 서서히 동의하게 된다.


엄마표로 자기 주도 학습을 시키던 엄마들은 초 4에 고비를 느끼고 5학년 겨울방학에는 자신의 선각자스럽던 행보를 후회하고 학원가를 서성인다. 학원을 보냈더니 집에서 씨름하던 갈등도 사라진다. 영어단어 암기부터 수학 심화 문제 숙제도 학원에서 해결한다. 숙제를 안 하면 페널티를 받기에 스스로 책상 앞에 앉기도 하는 아이를 보며 흐뭇해한다. '진작 보낼걸, 돈이 좋구나'라는 말을 학모 모임에서 내뱉게 된다. '진작 보내지 왜 이제 보냈냐고, 다른 아이들 선행에 따라가지 못할 수 있어'라는 주위의 걱정의 말을 듣게된다. 다른 아이들은 다음 학년, 그 다음 학년 교육과정을 몇바퀴 돌렸다는 말에 뒷골이 당긴다.


대부분 학원을 다니니, 더 어려운 것을 배운 아이가 유리할 것만 같다. 그러니 더 힘들어도 견디며 다녀야 하는 악순환. 그렇게 모두가 똑같은 목표를 향해 줄을 선다. 그러니 변별력이란 것이 필요하고 학습에 대한 기준은 높아진다. 사교육의 상향평준화, 학습량이나 학원 수강률이 공부의 질적 수준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통계를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다. 경쟁 때문에 더 어려운 문제를 내고 그것을 풀려면 더 알려진 학원으로 옮겨 몇년이나 이른 선행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화석화되고 있다.


 학부모가 사교육의 상향평준화라는 분위기에 아이를 맞추듯 학원가에도 그런일이 많다. 기념일에 어떤 선물로, 어떤 이벤트로, 어떤 파티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상향평준화가 일어난다. 동네 분위기라는 게 있어 작년에 히트를 친 이벤트를 다른 학원이 따라 한다. 그것을 예상한 히트친 학원은 가장 신상의 핫한 이벤트를 더 준비한다. 모두가 긴장하고 더 많이 더 신박하려 몰두한다. 당일이 되면 다른 학원들은 또다시 기함을 토한다. 돈도 많이 들뿐 아니라 준비기간도 일주일 이상 밤샘 작업을 해야 할 정도이니 따라갈 재간이 없다. 혼자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언감생심이다. 그저 내 수준에 맞게 크리스마스에 작은 간식류 봉지를 포장해 조촐하게 나눠준 게 전부여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얘들아, 우리 공방도 내년엔 너희들이 코인을 모아 마켓을 열까 사라고 할까? 4개월 전부 출석한 친구 선물 폭탄 할까? 입학식,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데이란 데이 다 지키고 어린이날부터 날이란 날을 다 지켜 파티도 해볼까"

주변 학원에서 각종 선물에 풍선에 손에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결과물을 들고 지나가는 아이들, 공방에 들른 아이들을 보고 소심해져서 진지하게 물었다.


"샘, 그러려면 돈 엄청 들어요. 괜찮겠어요? 전 괜찮아요. 샘 힘들어져요" 


초3인 아이가 진심으로 말했다. 공방이 선물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기특하고 고마웠다. 사실, ~데이나 ~날만 되면 그날의 유래나 어른들의 상술로 어떻게 이용하는지 말해주었었다. 그런 영향일까? 



아이들 몇몇과 의논했다. ~날, ~데이보다 어린이날과 한글날 정도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방학식날 각자 과자를 들고 와 간단한 게임 정도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에 소심해 얼었던 마음이 눈 녹듯 풀렸다. 2020년은 다른 학원이 무엇을 하든, 그 규모가 압도적이든 소심해지지 않고 의미 있는 날, 가치를 부여하는 날을 기념일로 정하고 쫄지않아볼 작정이다.


비교하게 되면 자신감을 잃고 스스로 정한 길을 잃기 쉽다. 부모가 옳다 생각한 길로 아이와 잘 가다가 주변과 비교하면 불안해진다. 아이만의 고유한 길이 존재할까 의심하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시도가 어리석어 보이기 시작한다.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부족함 투성이로 보인다. 싹트는 불안을 이겨낼 재간이 그 누구에게 있을까. 비교하지 않고 마음을 잃지 않는 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결단코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지켜야 한다. 연말에 결심하나 다이어리에 적어둔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장에 가지 말자" 

소신있게, 자신의 길을 꿋꿋히, 느리게!

 


나 만의 색깔을 유지하자

내가 아니면 안되는 것을 확고하게 구축하자
 

그런데 코인을 모으는 방법은 진부하지만 꽤나 먹히는 방식인 것 같아 새 학기부터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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