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소상공인 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돌아온다. 1년은 저리로 2년 차부터 변동금리 적용 상환조건으로 대출했다. 1년이 후딱 지났다. 작년 이맘때 1년이면 원리금이 무서울까 큰소리를 쳤다. 1년이 채 되기도 전 2월 중순부터 공방 문을 닫았다. 3월도 텅 비어 휴강 상태다. 월세도 낼 수 없는데 원리금 상환이라니. 앞이 캄캄하다.
이 사태가 쉬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남편은 코로나 지원자금을 알려줬다. 본인 직접 제출이라 길을 나섰다. 운전석에 앉았는데 큰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살갑게 통화하는 동서지간은 아니다. 쿨하고 목표지향적인 게 닮은 형님의 전화는 예사롭지 못하다는 징조다. 집안 행사 외엔 좀체 통화로 수다를 떨지 않는데 오늘은 달랐다. 형님이니 나나 수다라도 떨어야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았다.
형님은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한다. 그것도 두 개나. 그리고 학군 좋은 위치에 아파트를 월세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아주버님이 사무실 하나를 운영하신다. 4군데의 월세에 큰 덩어리가 대출이자 때문에 눈앞이 노란 형님이셨다. 허탈하고 허망하고 당혹감이 심해져 너스레를 한참 떨었다. 농이라곤 모르는 동서 간에 웃을 일이 많았다. 사람이 허해지면 실소가 나오는 법. 평소 심각하던 일이 유머처럼 느껴졌다. 서로 심각하던 일들을 투척하며 빵빵 터졌다.
오후 볕으로 달달한 이 공간을 잃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사춘기 자녀를 둬서 평소 공감대가 많았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적 위기를 대체할 길 없으니 중2병 이야기로 심각했는데 오늘은 아이들 이야기도 웃긴 정도였다. 부부싸움은 이야기 축에도 속하지 않을 소재였다. 심각하니 허탈감에 웃다가 한숨짓기를 몇 번 했고 한 시간이 후딱 갔다.
"형님, 1년 지나면 대출금 다 갚을 줄 알았는데, 웬걸요. 이번 달부터 죽었습니다. 월세를 어찌어찌 두 달 미뤄뒀는데 상환금액은 또 어쩝니까? 생활비를 카드로 쓰는 것도 한 두 달이지 이후는 신용불량으로 막히겠죠. 에효 그저 웃지요"
자영업자는 일 년 농사 잘 짓다가도 천재지변이나 재난, 혹은 나라의 경제동향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이런 반복적 현실을 미리 예견했더라면 석 달치 운영자금을 모아두었어야 했다. 자영업자 월평균 소득은 생각보다 현저히 낮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뉴스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 월급보다 적은 돈을 가져가는 사장님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국가적 위기 앞에서 다른 사장님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동서, 정부 재난대처 자금 풀렸다고 갔더니 줄이 100미터더라. 그리고 지금 신청해도 대상자가 될지 안 될지 몰라. 더 문제는 신청자가 하도 많아 몇 달 후 적용이 된다는 데 그전에 굶어 죽게 생겼는데 무슨 대출이야. 난 포기했어" 형님은 업을 포기한 것이 아닌데 포기하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 지기 전 1월 말에 대출을 갈아타려 은행에 들렀다. 각종 서류를 구비해 방문했고 서는 접수되었지만 일주일 후 결과는 단 1원도 대출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지원 대출자금도 별 차이가 없다. 코로나로 피해 여부가 증명되야하는데 작년 이맘때 공방을 시작할 때라 수입이 0이었다. 지원 재단이 대출을 결절할 리 만무하다.
"여보, 대출은 강 건너갔어. 가봐야 소용없겠어. 코로나로 수입격차를 증명하는데 격차가 있어야 말이지. 그리고 몇 달 전 수익도 그리 많지 않았고, 세금도 많이 안 나왔으니 수입이 안 잡히면 뭘로 대출해주겠어. 너무 고전적인 대안이 하나 있는데,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없어"
그나저나 울 형님네가 감당해야 할 4군데 월세는 어쩌는지 내 고민에 다른 고민 한 덩어리를 추가했다. 코딱지만 한 공방 하나에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