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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27. 2020

워킹맘이 워킹맘을 안아주는

나는 자발적 워킹맘이다. 시간을 나눠쓰는 프리랜서에서 공간을 보유한 고정된 일로 전향했다. 프리랜서일 때는 워킹맘이라 나를 칭하는 것이 어색했다. 매인것 보다 자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방을 운영하는 지금은 자발적으로 공간에 매이도록 만들었다. 워킹맘이 되자 나의 아이들을 살필 여력이 없지만 다행히도 많이 자라 제 앞가림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방일을 엄두라도 냈을까. 나의 하루는 아이들을 코칭하고 가끔 찾아오는 학부모를 상담하거나 담소를 나누다보면 하루가 훌쩍, 오후 볕은 금세 꼴깍 넘어간다.



출처:픽사베이

'정시출근 불시 퇴근'의 워킹맘의 육아문제는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갑작스러운 스케줄 공백으로 늘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쓰럽다. 공방에는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여럿 다닌다. 1학년 꼬마 민찬이는 매일 독서와 글쓰기로 온다. 잘 짜인 생활습관이 코로나로 흐트러지자 아이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어 매번 두사람의 얼굴이 어두웠다. 게다가 이제 온라인 개학까지 하자 민찬이 엄마는 출근을 미뤘다. 미룰 수 있는 직업군이라 다행이었다.

출처:픽사베이

민찬이는 온라인 강의를 듣고 엄마와 점심을 먹고 급하게 공방에 온다. 오늘따라 민찬이의 낯빛이 좋지 않다. '피곤해요, 머리 아파요'라는 컨디션 난조를 호소한다.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힘들 때 실제 신체에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니 마음의 문제라 여겼다. 차라리 짜인 스케줄은 기대할 수 없어 포기하고 잘 따랐다. 온라인 개학을 하자 엄마와 오전 시간을 보내며 꾀나 행복했나 보다. 그 맛을 본 이상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것이다. 민찬이에게는 당연한 요구요 권리지만 민찬이 엄마는 더 양보할 수 없는 형편이니 가슴이 아릴 수밖에.


가장 편안한 자리에 앉게 하고 공방 트레이드마크 구피를 관찰하고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는다. 워낙 알차게 해내는 아이라 커리큘럼을 짜서 들이대지 않았다. 최적의 마음으로 즐겁게 책을 읽게 해 준다. 민찬 엄마의 부탁으로 자유롭게 시간을 누비다 다음 스케줄로 가도록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면 민찬이를 길 건너편 태권도장 앞까지 데려다준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는 태권도장을 향할 때 얼굴이 밝아진다. 그런데 오늘따라 우울이 엄습해 더 나아지지 않았다.

"가기 싫어요"

이대로가 다간 태권도장 앞에서 주저앉아 울 것만 같았다.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이에게 격려성 멘트를 했다. "우리 민찬이는 운동을 엄청 잘하지? 그래서 이렇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도 도장에 들어서면 땀을 흠뻑 흘릴 때까지 뛰어 논다고 들었는데, 대단해! 그런데 왜 가기 싫어?"


풀 죽은 민찬이는 갑자기 살아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관장님이 저만 힘든 거 줄넘기 400개 시켜요"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의 어깨에 벽돌 서너 개 더 얹어줄 말을 던졌다.

"관장님은 왜 민찬이에게 형아들 보다 어려운 걸 시킬까? 그리고 민찬이가 400개 못하는데 시키시면 안 되는 거지? "


대화의 맥락상 칭찬에 이은 말이기 때문에 남자아이의 하소연은 '그 힘든걸 내가 해내고 있어요'라는 자랑으로 해석해야 한다.


"맞아요. 관장님은 형아들보다 내가 띠가 높다고 400개 시켜요"


결국 내가 의도한 대답이 나왔다.

"민찬이는 관장님 보시기에 그 어려운 줄넘기 400개를 해낼 수 있는 아이로 보시는 거구나"

"아이참. 내가 '까만 띠'라 형들보다 높긴 해요"

"너는 400개 하고도 남는 사나이지만 오늘은 피곤하니까 30개로 낮춰달라고 해보면 어떨까?"

"아녜요. 그냥 하죠 뭐"


이미 민찬이는 어깨에 벽돌 두어 개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의도한 바를 이루어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오늘 민찬이 태권도장까지 안 간다면 퇴근할 수 없는 엄마 마음은 어떨까'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들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하기 싫던 마음에 질문 몇 가지면 새로운 동기를 얻어 움직이게 된다. '민찬아 엄마 오실 때까지 신나게 뛰어놀다 귀가하렴~~~'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태권도장에 잘 갔습니다" 문자를 보냈다. 해가 꼴깍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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