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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18. 2018

0학년 소라-#2

어른을위한(초등현실동화)

빈자리

우리 집은 외할아버지 췌장암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빌려 빚을 많이 졌다고 한다.

 아빠가 버는 것으로 갚을 재간이 없어 엄마가 작년부터 일하러 나가셨다. 엄마의 퇴근은 현아가 짜증을 부리며 낮잠에서 깰 때 즈음이다. 어떤 날은 엄마가 급하게 나오는데 부장님이 일을 다시 주어서 10시가 다 되어 돌아온 날도 있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숙제를  못하고 먼저 잠이 들어 다음날  사물함앞에 1시간 서있기도 했다.


어린이 집에서 데리고 온 뒤 현아는 투덜거리다가 제 몸보다 큰 소파에 움푹 들어가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나도 힘들어 현아에게 퉁명스러웠던 게 조금 미안해졌다, 현아가 없다면 편할 것 같다가고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구겨지듯 잠든 동생의 몸을 펴서 눕혀주고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붙였다. 기대고 싶을 때 소파가 제격이다. 소파아래 웅크리고 등을 대면 따듯하게 데워지는 기분은 엄마가 빨리 퇴근해서 저녁을 준비할 때  기분과 비슷하다.


 밀린 숙제가 있어 테이블 위에 놓인 수학 익힘책을 펼쳤다. 읽던 문제를 읽고 또 읽는 습관이 생겼다. 도무지 머릿속에 글자가 들어오질 않았다. 요즘 글자를 보면 분명히 아는 글자인데도 반복해서 여러 번 읽게 된다. 친구들의 소리, 선생님의 표정이 항상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아 책을 펼쳐도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설명에 눈을 비비며 집중을 하려고 했지만 자꾸 잠이 왔다.

나도 모르게 꾸벅 졸다가 갑자기  선생님의 목소리가 확성기 소리처럼 삐익 거리며 크게 들렸다. 놀람과 동시에 눈을 떴다.  입술아래 침이 묻어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는데 친구들이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속담 책에 나오는 쥐구멍이라도 들어 간다는 말이 이때를 위한 말인 것 같다.


“재 또 걸렸어” “야, 우리 모둠 쟤 때문에 스티커 하나 잃겠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임소라, 이 문제 무슨 뜻인지 다시 설명해 볼래?”  “잘 모르겠어요.” 분명히 말을 하는데 목에서 걸려 튀어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대답을 안한다고 자꾸 물어보신다. 나는 분명 대답하고 있는데.

내가 머리를 긁적이니까 친구들은 와~하고 또 웃었다. 여기저기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수군대는 것 같았다. 또 사물함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남은 시간이 지나갔다.


며칠 전에도 선생님의 지적에 짝꿍이 뒤를 보며 나를 멍청하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그 단어였다. 엄마에게 말했지만 엄마는 잘못 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1학년이 그렇게 고약한 말을 모를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친구들이 선생님 한테 혼나고 돌아서면서 선생님을 놀리는 표정을 짓는것도 모른다. 선생님도 엄마랑 똑같이  친구들이 얼마나 고약한 말을 하는지 모르신다. 만날 나만 혼나는데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어지럽기만 하다.


딴생각하니까 졸음이 온다고 정신차리라고 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 겨우 대답하고 앉았지만 짝꿍이 나때문에 혼났다고 눈을 흘겼다. 학교만 다니지 않을 수 있다면 학원은 100개라도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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